마르크스주의와 동아시아 역사
유럽중심주의와 민족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보편주의로
이 글은 오언 밀러가 기고한 영어 논문 ‘Marxism and East Asian history: from Eurocentrism and Nationalism to Marxist Universalism’을 번역한 것이다.
1. 서론
1 나는 이 같은 시도들이 대체로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제2인터내셔널과 스탈린주의의 기계적이고 단계론적인 도식에 충실했던 그 밖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학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2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자임하는 목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곧, 지배계급의 역사 서술에서 배제된 민초들의 역사를 재발견하는 것, 자본주의 사회와 계급사회 일반을 인간 사회의 특수한 형태로서 역사화하는 것, 사회 변혁 전략을 위한 경험적 자료를 축적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역사학의 가장 원대한 목표는 보편적 인류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다. 튼튼한 이론적 기초 위에서, 부르주아 역사 서술의 이분법과 관념론을 거부하면서 말이다. 이 원대한 목표의 실현은 아직 요원하다. 특히, 동아시아 역사를 마르크스주의적 인류사에 접목시키는 데서 어려움이 많다. 20세기에는 동아시아와 옛 소련의 역사학자들과 유럽의 일부 학자들이 중국·일본·한국의 역사를 마르크스주의적 이론 틀에 끼워 맞추려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3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는 유럽중심적이지 않은 인류사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미 그러한 작업에 필수적인 이론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전통 내에서(스탈린주의 시대에는 흔히 그 정치적 변두리에서) 개발됐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상호 결합되고 일관되게 적용되지 못했을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야말로 인류 역사와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를 갖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그러한 도구를 더 날카롭게 다듬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실적이 저조한 탓에 일각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이론이 스스로 약속한 보편적 인류사를 제시할 능력이 없다고 결론짓기도 했다.4 새롭게 떠오르는 ‘탈민족주의’와 뉴라이트 역사 서술은 갖가지 본질론을 거부한다면서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범주의 해체와 학문적 객관성을 내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종의 ‘국제주의적’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5 그러나 이르판 하비브가 인도의 서발턴 그룹과 관련해서 지적했듯이, 탈식민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초국적’ 식민주의 담론을 은폐하는 위장막으로 너무나 쉽게 악용된다. 6 그런가 하면 뉴라이트의 반反민족주의는 역대 남한 군사독재 정권들을 정당화하고 남한이 미국의 종속국 구실을 하는 것을 고무·찬양하기 위한 얄팍한 외피 이상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유럽중심주의, 민족주의, 기계적 단계론 등으로 왜곡된 마르크스주의 역사 서술로는 우파들의 이 같은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식민지 근대성, 동아시아 경제 발전, 보편적 인류사 등에 관한 논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려면 비非유럽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좀더 일관된 이론적 틀이 필요하다.
단지 하나의 사례로서 한국만 봐도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서술의 이 같은 쇄신이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약 20년 동안 좌파 민족주의 학자들이 유력했던 남한의 한국사학계는 지난 10년 동안 오른쪽으로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스탈린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의 명백한 문제점들을 비판하며 2000년대에 진행된 역풍은 한규한이 말한 “우파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반동적 이중주”를 불러 왔다.이 글에서 나는 먼저 유럽중심주의와 기존 마르크스주의 역사 서술의 문제점들을 살펴본 다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보편주의적인 인류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다음 절에서는 그러한 인류사를 서술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세 가지 이론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 발전 이론, 2) 사미르 아민 등이 개발한 전자본주의 중심부·주변부 이론과 공납제 생산양식론, 3) 안토니오 그람시가 최초로 고안했으나 최근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승·발전시킨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론과 수동 혁명론.
2. 유럽중심주의와 기존 마르크스주의 역사 서술의 문제점들
2.1 유럽중심주의와 역사
7 그렇다면 역사 서술에서 유럽중심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다음은 유럽중심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논의의 목적상 중요한 요소들을 추린 것이다.
보편적 인류사를 구축하는 데서 가장 큰 장애물은 현재 대세를 이루는 특수주의적 또는 예외주의적 담론들이며, 그 중에서도 유럽중심주의와 그것의 거울 이미지라 할 수 있는 유럽과 북미 외 지역의 민족주의다. 사실, 유럽중심주의는 아직도 거의 모든 역사 서술의 기본 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 저술의 대다수에도, 그리고 역사적 유럽중심주의와 제국주의에 비판적인 역사 저술의 대다수에도 해당하는 얘기다.8 그러나 어쨌든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기원은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되고 지난 5백 년 동안 유럽 왕정들이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가면서 세계사적 단절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첫째, 유럽중심주의의 물질적 기원은 자본주의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자본주의의 등장 자체가 ‘유럽적인’ 현상이었다는 뜻으로 오해하지 말자. 자본주의의 등장은 유럽보다 훨씬 더 광범한 유라시아(그리고 아프리카) 대륙 여러 지역의 상호작용에서 비롯했으니 말이다.둘째, 유럽중심주의는 이와 같은 진정한 기원을 유럽의 우월성 또는 예외성이라는 비역사적이고 본질론적인 신화로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로마 문명이 유럽 문명의 뿌리라거나, 민주주의·과학·이성주의 등이 유럽의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그러한 예다. 유럽중심주의의 비역사성을 보여 주는 또 한 가지 전형적인 관점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흥한 것과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모두 그 때 거기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예정된 일이었다는 듯이 보는 목적론적 경향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로 유럽 문명의 태생적 우수성을 내세우든 다른 무엇을 내세우든 간에 말이다.
식민 통치가 과거지사가 됐고 적어도 공공연한 인종차별은 금기시되는 오늘날에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역사에 관한 사유, 교육, 공적 담론을 지배하는 것은 유럽 역사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유럽 역사가 다른 곳의 역사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심지어 일부 비非유럽인들에게는 ‘진정한’ 역사가 없다는 생각이 깊이 각인돼 있다. 식민지 시대의 식민지 문명화론에서부터 미국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인권 이데올로기와 “세속적·계몽주의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거짓 보편주의’가 그동안 힘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유럽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9 왔지만, 그럼에도 아직 서슬 퍼렇게 살아 있다. 사실, 지난 1백50년 동안 세계 각국의 민족사가 형성된 틀도 대개 유럽중심주의였다. 사미르 아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런 탓에, 유럽중심적 사관은 비록 유럽 바깥에서 수행된 연구 덕분에 그 기초가 조금씩 허물어졌고, 세계 각 지역의 역사 발전 과정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약해져민족주의적이고 문화주의적인 방향으로 [역사학이] 퇴보하는 것도 유럽중심주의의 방법을 따른 결과다. 즉,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질”들이 역사의 진행 방향을, 더 정확히는 개별적이고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역사들의 진행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근본주의들은 유럽중심적 근본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이렇듯 유럽 역사 우월주의 또는 자유주의적인 유럽중심적 보편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역사들”이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근대 민족 국가들은 모두 저마다 본질론적·목적론적 역사 서사(내러티브)를 개발했다. 이처럼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족주의 역사 서술이 발달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 하나가 바로 남북한과 중국, 일본의 매우 유아론적唯我論的 역사학 방법이다.
2.2 유럽중심주의와 마르크스주의
11 반면 사미르 아민은 자신의 저서인 《유럽중심주의》에서 유럽중심주의 일반과 마르크스주의의 유럽중심적 버전들을 유물론적으로 분석하며 비유럽 세계를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 따르는 문제들을 훨씬 더 건설적인 방식으로 다뤘다. 아민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을 1백 퍼센트 수용하지 않더라도 유럽중심적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점에 관한 그의 분석이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2 우선, 마르크스 자신은 보편적 사회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을 당시의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단지 잠정적으로만 시도했다. 13 그러나 인류 역사 전반에 관한 지식이 대폭 확대된 20세기에도 대다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새로운 발견들을 토대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민이 지적했듯이 마르크스 이후의 마르크스주의는 “유럽의 사례만을 가지고 보편적 모델을 도출하려는 유혹에 굴복했다.” 14 그런 탓에 지난 한 세기 동안 대체로 유럽중심적인 마르크스주의가 우세했는데, 여기에는 또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하나는 ‘두 갈래 길’ 테제로서, 이에 따르면 유럽은 봉건제 생산양식을 통한 ‘정상적’ 또는 ‘진보적’ 역사 발전 경로를 따라간 반면, ‘동양’은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초超보편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역사 발전 5단계설’로서 1930년대 초에 스탈린주의의 정설로 자리잡았다. 이 이론은 모든 인간 사회가 반드시 다섯 개의 발전 단계(원시공산제 – 고대/노예제 사회 – 봉건제 – 자본주의 – 사회주의)를 거친다는 경직된 도식을 고집했다. 비록 이 두 가지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서술 문헌이 많이 생산되긴 했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을 역사에 적용하는 데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하기 시작했다.
유럽중심주의에 관한 다소 조야한 분석들이 있는데, 마르크스주의를 그저 또 하나의 인종차별적·유럽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그렇다.15 비록 아민이 불균등 발전론을 오늘날의 세계와 사회주의 전략에 적용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가 개발한 공납제 생산양식 이론은 매우 설득력 있는 것으로서 최근 들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게서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공납제 생산양식 이론은 아직 개선할 여지가 남아 있으며 내 생각에는 레온 트로츠키의 역사 이론과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3.2절에서 다룰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유럽중심성 문제를 놓고 아민이 내놓은 해결책은 자본주의의 탄생에 자신의 불균등 발전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다. 아민은 유럽의 봉건제가 전 세계적인 공납제 생산양식의 비교적 후진적이고 주변적인 한 형태였지만, 오히려 그러한 후진성 덕분에 유럽 봉건제는 “더 유연”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3. 보편적 역사유물론의 3대 핵심 이론
지금까지 서술한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서두에서 강조했듯이 이미 역사유물론에는 동아시아, 유럽, 그리고 그 밖의 ‘역사들’을 하나의 일관된 그림으로 엮어 내기 위한 중요한 이론적 재료들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아래에 소개할 세 가지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고 종합했을 때 그러한 작업이 가능해지리라고 생각한다.
3.1 불균등·결합 발전 이론 첫째 이론은 트로츠키가 러시아 역사와 혁명을 다룬 글에서 처음 내놓은 불균등·결합 발전론이다. 이 변증법적 역사 발전 이론이야말로 유럽중심주의나 기계적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보편적 역사유물론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트로츠키가 불균등·결합 발전론을 제안한 것은 제2인터내셔널 소속의 동료 마르크스주의자들(레닌과 플레하노프를 포함한)의 단계론을 비판하면서였다. 얄궂게도, 트로츠키가 옳았음을 명백히 입증해 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겨우 10년 뒤에 제2인터내셔널의 단계론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단계론이 다시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 정설로 채택됐다. 코민테른이 이러한 단계론을 1927년 중국 혁명에 적용한 결과는 동아시아 전체에 재앙이었을 뿐 아니라 러시아에도 재앙이었다.
17 여기서 불균등·결합 발전론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18 나는 다만 동아시아 역사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서술하는 데서 불균등·결합 발전론이 네 가지 유용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다.
트로츠키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기여라 할 수 있는 불균등·결합 발전론은 최근 들어 저스틴 로젠버그, 미셸 뢰비, 닐 데이비슨,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의 학자들에게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보편과 특수의 이분법을 뛰어넘기
19 트로츠키의 또 한 가지 핵심 논지는 불균등성이 “역사 발전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20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볼 때 역사유물론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자본주의뿐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하나의 전체로 본다는 점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조직된 방식으로 자연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인류 역사가 전개되는 궁극적인 틀로 작용하면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의 경계를 규정한다. 앨린슨과 아니바스도 역사에서 나타난 불균등성을 논하면서 이 점을 지적한다.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불균등·결합 발전 이론의 장점은 비非유럽 세계의 역사 서술을 집요하게 괴롭혀 온 진보/정체와 특수/보편의 이분법을 초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불균등·결합 발전은 변증법적 지양止揚, Aufhebung, 곧 기존 개념을 초월하는 동시에 통합하는 개념 재정립)의 고전적 사례다. 미셸 뢰비가 불균등·결합 발전론을 다룬 소논문에서 밝히듯이, 트로츠키의 관점은 개별 나라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제인 자본주의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전체성의 관점”이었다.[불균등성]은 전근대 역사 내내 수만 가지 양태로 나타났고, 세계 사회의 발전이라는 존재론적 전체(비록 아직 인과관계적으로 통합되지는 않았지만) 내에서도 내적 분화의 다양한 차원과 수준에서 수만 가지 양태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보편과 특수의 문제를 이와 비슷하게 변증법적으로 다뤘다.
어떤 요인들[‘규정’으로 옮길 수도 있다 — M21]은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반면 다른 요인들은 특정 시대에만 적용된다. … 일반적이거나 공통되지 않은 요소들은 생산 자체에 적용되는 요인들과는 구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 둘의 통일성 속에서도(그러한 통일은 주체인 인간과 객체인 자연의 동일성에 이미 함축돼 있다) 둘의 본질적 차이를 망각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트로츠키의 방법은 마르크스 방법의 핵심적인 측면 한 가지를 재차 강조한 것이었고, 그 결과 트로츠키는 불균등한 전체로서 변화·발전하는 역사라는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
● 역사를 필연에서 구출하기 불균등·결합 발전론의 또 한 가지 장점은 역사유물론에 거듭거듭 침투해 온 숙명론적 경향에 맞선 해독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열린’ 역사 서술이 가능해진다. 트로츠키가 불균등·결합 발전론을 제안한 원래 의도는 역사가 미리 정해진 단계를 따라 발전한다는 생각과, 사회주의자들의 실천도 그러한 단계를 따라가야 한다는 정치적 결론에 도전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맞서 불균등·결합 발전론은 ‘열린’ 역사학의 필요성을 새삼 확인해 준다. 어떤 경우에도 미래가 완전히 결정돼 있지는 않으며 언제나 인간의 행위와 우연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역사 말이다. 뢰비의 지적처럼 트로츠키는 “매 순간 선택을 제기하는 모순된 과정으로서 역사 발전을 풍부하게 변증법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불균등·결합 발전론의 이러한 측면은 트로츠키의 이론과 실천이 만나는 접점이기도 했다. 불균등성 이론과 그것에 근거한 연속혁명 전략이 만나는 접점 말이다.
● 결합 발전과 ‘후진성의 이점’
24 인류 사회는 함께 변동하지만 그 속도는 불균등한데, 이러한 불균등성으로 말미암아 ‘후진성의 이점’이 종종 나타난다. 25 달리 말해, 뒤처지는 사회는 앞서가는 사회와 접촉했을 때 후자가 거쳤던 발전 단계를 똑같이 거치지 않고 종종 몇 단계를 ‘건너 뛸’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역사는 끊임없는 ‘건너 뛰기’ 게임과도 같다.
인류 사회 전체를 강조하는 불균등·결합 발전론은 상이한 사회들의 발전 과정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가정하지만, 그와 동시에 ‘발전의 비동시성’에도 주목한다.26 이러한 내적 비동시성의 대표적 사례는 동일한 사회에 최첨단 기술과 노동 편제가 낡은 사회 형태와 생활양식과 공존하는 경우다. 이 같은 ‘결합’ 개념은 원래 트로츠키가 20세기 초의 러시아 사회를 이해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했지만, 동아시아 각국 역사(특히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된다. 27 트로츠키에게 ‘결합’은 러시아 사회의 상대적 불안정성과 휘발성 높은 계급 관계를 이해하는 열쇠였다. 그것은 또한 트로츠키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균등·결합 발전론은 단지 발전의 시공간적 불균등성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단일한 사회구성체 안에서, 또는 개별적이지만 상호 연결된 일단의 사회구성체 군群 안에서 상이한 발전 수준들이 결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불균등 발전과 자본주의 이전 역사
28 불균등하고도 결합된 발전이라는 이론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이를테면 어떤 중추적 문명 사회 주변에 형성된 예비 계급사회들의 ‘사슬’이나 네트워크에서, 즉 인류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흔히 ‘상호작용권’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공납제 생산양식이 확립되는 초기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1만 년 동안 수시로 반복됐을 법한 이 과정은 분명 불균등·결합 발전론으로 설명하기에 아주 적합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또한 다음 절에서 살펴보겠지만 불균등·결합 발전론은 20세기 후반에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추가된 또 하나의 이론적 혁신인 공납제 생산양식론과 의미 있게 결합될 수 있다.
비록 기술·사상·사회체제 등의 발전과 확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균등성이 인류 역사의 보편적 특징임이 명백하긴 해도(트로츠키 자신도 명시적으로 그렇게 주장했다), 트로츠키 이론의 나머지 반쪽인 결합 개념을 자본주의 이전 역사에 확대 적용하는 것에는 논란의 소지가 더 많다. 최근 콜린 바커는 “트로츠키를 넘어서 — 불균등·결합 발전론의 확대 적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부분적으로 저스틴 로젠버그의 주장에 근거해 그러한 시도를 했다.3.2 공납제 생산양식
앞서 살펴봤듯이 20세기 마르크스주의는 세계사를 설명하는 데서 두 가지 불만족스러운 틀을 개발했는데, ‘두 갈래 길’ 테제와 ‘역사 발전 5단계설’이 그것이다. 이 둘은 복잡한 사회 발전 과정을 역사가가 풍부하게 이해하게 해 주기보다는 시대 구분을 둘러싼 쓸모 없고 추상적인 논쟁, 또는 특정 지역의 생산양식이 모종의 표준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둘러싼 쓸모 없고 추상적인 논쟁을 자주 일으켰다. 비록 불균등·결합 발전론으로 ‘두 갈래 길’과 ‘5단계설’에 내재한 기계적 단계론과 숙명론을 제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마르크스의 핵심 개념인 ‘생산양식’을 더욱 엄밀하게 정의하고 인류사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제는 남는다.
29 그러나 존 핼던이 지적했듯이 이것은 개별 사회를 일일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조사의 지침을 제시하기 위한 추상적 범주인 생산양식 개념을 쓸모 없게 만드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대안이다. 30
페리 앤더슨 같은 일부 학자들은 생산양식 개념을 좀더 만족스럽게 적용하려면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외에도 역사 속에 존재한 사회들의 실제 정치적·제도적 특성을 반영하는 생산양식들을 새로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1 종래의 생산양식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면서 봉건제 생산양식과 아시아적 생산양식 모두의 대안으로 사용된 공납제 생산양식 개념은 이후 에릭 울프 32 와 존 핼던이 특히 더 날카롭게 다듬었고, 오늘날에는 점점 많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33
내가 지금부터 소개할 공납제 생산양식론은 앤더슨과 반대로 생산양식 개념을 더 높은 추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사미르 아민은 ‘5단계설’과 ‘두 갈래 길’의 보편적 대안으로서, 강제적 잉여 추출에 토대를 둔 전자본주의 계급사회 일체를 포괄하는 개념인 공납제 생산양식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34 이렇게 최소한만을 규정하는 정의 덕분에 공납제 생산양식 개념은 봉건제와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경우와 같은 특수주의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공납제 생산양식의 범위 안에 있었던 다양한 사회구성체들을 더 낮은 추상 수준에서 논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민·울프·핼던 등은 그동안 서로 다른 생산양식으로 여기던 봉건제, 아시아적 생산양식, 그리고 어쩌면 노예제까지도 사실은 공납제 생산양식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울프의 표현을 빌리면 “단일한 생산양식 내에서의 진자 운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35 그러므로 자본주의 전에 존재한 다양한 형태의 계급사회는 한 쪽 극단에 관료적 중앙집권제 국가가 있고 다른 쪽 극단에 분권화한 ‘봉건’ 사회들이 있는 “권력 배분의 스펙트럼” 36 에서 어느 한 지점에 놓인다. 핼던은 이처럼 지배계급의 권력 구조가 사회마다 다르고 각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그러한 권력 구조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잉여를 차지하려는 비생산 계급이나 지배계급 내부의 부단한 투쟁을 반영한다고 본다. 37
공납제 생산양식 개념의 핵심에는 마르크스 자신의 봉건제 규정, 즉 강제적 또는 ‘비경제적’[경제 외적 — M21] 수단으로 직접 생산자들한테서 잉여를 추출하는 생산 형태라는 정의가 있다.38 중심부에서는 다량의 잉여를 추출해 정교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중앙집권제 국가가 거듭 등장했다. 이에 비해 주변부의 정치 권력은 더 분권화돼 있었지만, 그러한 느슨함과 유연성이 주변부에 이로운 측면도 있었다. 그 덕분에 결국 주변부의 한 지역이었던 유럽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거기서 새롭게 등장한 확장주의적 국가들이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비록 아민이 불균등·결합 발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전자본주의 나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불균등하게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특정 시기에 일부 지역이 “후진성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불균등·결합 발전론과 매우 가까운 논지를 펴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불균등·결합 발전론을 공납제 생산양식론이 촉발한 전자본주의 역사 논의와 더 엄밀하게 종합하면 역사유물론이 유럽중심주의와 결정적으로 결별하여 매우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미르 아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납제 생산양식론을 자본주의 이전 사회들의 상호 관계를 다루는 자신의 이론과 결합시켰다. 그는 ‘구세계舊世界’ 역사라는 광범한 주제에 야심차게 접근하면서 지난 수천 년 간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에 공납제 생산양식의 3대 중심부(지중해와 중동의 헬레니즘·이슬람 중심부, 인도, 중국)와 그보다 작은 두 중심부(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군도), 그리고 여러 주변부(유럽, 일본,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가 있었다고 주장한다.3.3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 내가 세 번째로 소개하려는 이론은 앞의 두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인류 역사의 더 구체적인 국면을 다루는 이론이다. 지난 1백50년 동안 세계의 대부분이 어떻게 자본주의로 변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이 이론의 목적이다. 한때 역사유물론을 지배했던 기계적 단계론의 상투적 주장 한 가지는 식민지 나라나 탈식민지 나라들이 온전한 자본주의로 이행하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통상 식민지/탈식민지 사회가 유럽의 고전적 부르주아 혁명을 되풀이할 것으로 봤다. 차이가 있다면 혁명적 부르주아지가 타도할 대상에 식민 지배 세력이 추가된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은 여러 나라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또는 (일본처럼) 식민지화의 위협에 대응하면서 독자적인 자본주의 국가를 속속 수립했던 19~20세기 세계 많은 부분의 경험과 명백히 불일치한다.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 발전론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의문에 답하려고 개발됐지만, 트로츠키 자신은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후발 자본주의 사회들이나 아시아·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 20세기 말쯤 비교적 안정된 독자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거 등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러시아 같은 후발 주자들이 안정적인 부르주아 정권을 수립하기는 대체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국가자본주의라는 특수한 자본주의 형태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독자적 부르주아 정권이 확립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40 그는 비록 역사 속의 어떤 부르주아 혁명도 스탈린주의적 역사 서술이 이상화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정확히 부합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러한 혁명들은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혁명을 부르주아지가 주도했든 아니든 간에, 그리고 민주주의가 확립됐든 아니든 간에 그러한 혁명들은 매번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토대로 부르주아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41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닐 데이비슨은 마르크스주의 사상 속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의미하는 바를 새롭게 정립하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데이비슨은 부르주아 혁명을 부르주아 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서 자본주의를 확립한다는 식의 협소한 의미로 정의하지 말고 “자본 축적의 독자적 중심지를 확립”한다는 의미로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이와 연관된 또 하나의 이론적 혁신은 트로츠키의 연속 혁명론을 토니 클리프가 변형한 것이다. 클리프는 중국 혁명과 쿠바 혁명을 겪고 난 1960년대 초에 주장하길, 전 세계의 여러 식민지 나라와 탈식민지 나라에서 트로츠키의 예상과는 달리, 노동계급이 이끄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중간계급 성원들과 국가가 주도한 국가자본주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혁명들을 가리켜 “(국가자본주의로) 빗나간 연속혁명”이라고 했고, 혁명 주체들의 사회주의적 미사여구와 무관하게 그 본질은 또 다른 형태의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했다.43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을 주제로 한 세 가지 변형태에 따라, 우리는 지난 2~3백 년 동안 근대 자본주의 국가들이 탄생한 경로를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과 긴밀히 연결된 세 번째 이론은 기존 지배계급이 위로부터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상정하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수동 혁명’론이다.44 미국이 이에 해당한다).
1) 흔히 다른 계급 성원들과 함께, 그리고 아래로부터 강력한 운동의 압력을 받아 부르주아지가 혁명적 구실을 한 18세기의 ‘고전적’ 부르주아 혁명(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스코틀랜드,2) 19세기 말~20세기 초 기존 지배계급 성원들이 흔히 외부의 압력에 직면해 자기 국가를 자본 축적의 중심지로 변혁하고자 한 위로부터의 ‘수동적’ 혁명(일본, 이탈리아, 독일, 터키 등).
3) 20세기 중엽 식민지 또는 탈식민지 사회의 중간계급 또는 지식인들이 식민지 해방 운동 그리고/또는 자본주의 국가 형성을 주도한 위로부터의 ‘국가자본주의적’ 혁명(중국·인도·인도네시아·북한·남한 등).
비록 자본주의로의 세계적 이행이 서유럽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전’ 시대 서유럽에서 나타난 이행 형태를 곧 전 세계적인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로의 세계적 이행 과정에서 초기 단계가 후기 단계들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후기의 자본주의 이행 형식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유럽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먼저 성립하자 다른 나라들이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가 없게 됐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아마도 자본주의 이행의 ‘표준’ 형태는 기존 지배계급이나 때로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민중’을 대리해서 위로부터 수행하는 국가자본주의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을 이렇듯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우리를 유럽 봉건제를 모델로 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공납제 생산양식론과 마찬가지로) 우리로 하여금 유럽의 경험에만 의존한 자본주의 이행론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더 큰 세계적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주어 보편주의적 역사유물론을 구축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4. 결론: 마르크스주의적 보편주의와 동아시아 역사
45 그 과정에서 이들 국가 사이에, 그리고 인접한 중국 문명과 이들 사이에 46 외교적·종교적·상업적·식민적(정착 주민 심기) 접촉을 통한 복잡한 상호작용이 있었다. 공납제 생산양식 하에서 일종의 ‘선진국 따라잡기’ 식 발전 과정을 거치고 있던 이들 신생 국가에서는 옛 부족사회의 사회 형태들(부족 회의, 마을 공동체)이 공납제적 지배와 관련된 중국의 제도(관료적 위계 서열, 한자, 유교·법가 사상, 불교 등)나 새로운 계급 지배 형태들(노예제,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과 부역, 귀족과 승려들의 영지)과 결합됐으며 ‘단계 건너뛰기’ 현상이 거듭거듭 나타났다. 47 이러한 불균등·결합 발전 과정이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각각 다르게 전개된 결과 이 두 지역에서는 서로 판이한 사회구성체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글을 맺으면서,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이론이 동아시아 역사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간략히 살펴보려 한다. 첫째, 불균등·결합 발전론은 기원 후 첫 1천 년 간의 동북아시아 국가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시기에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는 부족사회에서 발전해 나온 국가들이 여럿 형성됐는데,일본과 한반도에서 나타난 상이한 형태의 전前자본주의 사회들은 공납제 생산양식의 틀 안에서 잉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의 결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구성체들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절묘한 사례들이다. 그러한 스펙트럼에서 조선 왕조(1392-1910)는 아마도 가장 중앙집권적이고 관료화한 한쪽 극단에 놓일 것이다. 반면 일본의 막부 체제(가마쿠라·무로마치·도쿠가와 막부: 1185-1868)는 중세 유럽의 봉건제에 버금갈 만큼 분권화·군사화해 있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 2천 년 동안 동북아시아에 존재한 사회구성체들을 고정불변의 사회 형태로 인식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강압적 잉여 추출 논리의 제약 내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역사적 과정들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인식했을 때 우리는 유럽중심적 관점에서 탈피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 중국과 한반도의 지배계급 내에서 국가 관료와 귀족 세력이 타협할 수 있게 해 준 메커니즘은 무엇이었고, 그 메커니즘은 어떻게 발달했는가?” “관료적 통치 기술들이 일본에 도입됐는데도 왜 일본열도에는 중앙집권적 공납제 국가가 등장하지 않았으며, 이 점은 자본주의 이전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 일본이 차지한 위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48 또한 케빈 그레이는 최근에 쓴 글에서 중국이 1970년대 말 이후 사적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가 혼합된 형태의 체제로 이행한 것을 일종의 수동 혁명으로 해석했다. 49
동아시아에 자본주의가 도래한 근대로 넘어와서도 우리는 동아시아 역사를 사회 간 상호관계라는 맥락 속에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면서 오늘날의 일본, 중국, 남한, 북한 자본주의 국가들을 탄생시킨 불균등·결합 발전과 위로부터의 혁명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최근 앨린슨과 아니바스가 메이지 유신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등장과 함께 불균등·결합 발전이 보편화한 세계사적 조건 하에서 일어난 수동적 혁명”으로 설명하려 한 바 있다. 내가 알기로 남북한에서 일어난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 과정을 자세히 다룬 역사서는 아직 없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자면 한반도는 그 안에 두 개의 독자적 자본 축적 중심지가 형성되기까지 다음 세 시기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약해지고 포위된 조선 국가와 개화파 학자들의 수동 혁명이 실패로 끝난 19세기 말의 시기. 둘째, 1910년에서 1945년 사이 일제 치하에 진행된 반半국가자본주의적 식민지 공업화 시기. 셋째, 김일성과 박정희의 수동 혁명으로 한반도에 성공적인 (국가)자본주의 국가 두 개(각각 자신을 후원하는 제국주의 국가인 소련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가 형성된 시기.51 그것도 아니면 탈식민주의와 탈민족주의의 경우처럼 역사유물론의 일부 핵심 개념들은 간직하고 있지만 인류 해방 사상으로서의 알맹이를 상실한 탓에 그 예리함이 무뎌질 수도 있다. 사회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더 좋기로는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자본주의를 설명하려면 전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52 자본주의를 탈피한 미래 사회는 국민국가의 틀과 사회·경제적 불균등성을 재빨리 극복하고 전 지구적으로 통합된, 새로운 형태의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해서 인류사의 보편적 성격을 그 온전한 의미대로 구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서술에서 자본주의 이후 세계에 대한 전망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려 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본주의의 등장이 인류를 통합시킨 것 못지않게 분열시키기도 했음을 보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보편주의적인 인류사 서술은 불가능하다. 역사유물론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자본주의가 인간 사회의 유일한 조직 방식이기는커녕 인류사의 극히 짧은 기간(비록 가장 생산적인 동시에 가장 파괴적인 기간이지만) 동안만 존재한 체제임을 보여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미래에 우리 사회의 생산양식이 변할 가능성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와 무관하지 않다. 만약 자본주의만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전부라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탄생하고 완벽을 향해 진화해 가는 과정으로서 역사를 해석하는 목적론적 서사(내러티브)에 빠지기 쉽다(신新스미스파 경제사학자들이 그런 경향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식민지 근대화냐 독자적 근대화냐, 국가 주도 산업화냐 민간 자본 주도 산업화냐 등과 같은,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이 바람직한가(했는가)를 둘러싼 논쟁에 매몰되기도 쉽다.주
- 동아시아 역사 서술에서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논의는 Joshua Fogel: “The Debates over the Asiatic Mode of Production in Soviet Russia, China and Japan”를 참조하라.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 서술에 봉건제 개념이 미친 영향에 관한 분석은 Arif Dirlik: “The Universalisation of a Concept: From ‘feudalism’ to ‘Feudalism’ in Chinese Marxist Historiography”를 참조하라. ↩
- 제2인터내셔널과 스탈린 시대의 역사 서술을 비판적으로 설명한 것으로는 Paul Blackledge, Reflections on the Marxist Theory of History, Chapter 3를 참조하라. ↩
- John Chalcraft 같은 자칭 급진 역사학자들은 보편적 인류사를 위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식민지나 포스트식민지 사회를 적절히 이론화하지 못한다는 등의 판에 박힌 비난을 되풀이한다. Chalcraft, “Pluralizing Capital, Challenging Eurocentrism: Toward Post-Marxist Historiography” 참조. ↩
- 한규한, ‘우파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반동적 이중주.’ ↩
- ‘탈민족주의’ 방법의 사례로는 (한국 문헌은 아니지만) Carter Eckert: “Exorcizing Hegel’s Ghosts: Toward a Postnationalist Historiography of Korea”를 참조하라. ↩
- Habib, “Critical notes on Edward Said”. ↩
- 본 절은 사미르 아민의 저서 《유럽중심주의》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
- 유럽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자본주의가 유럽을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본주의가 비록 서유럽에서 마침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긴 했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여러 요소들(임금노동, 대대적 상업화, 공장 생산, 농민의 토지 박탈 등)만큼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유럽 바깥에도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
- 1980년대 이래 특히 미국에서 ‘세계사’나 ‘초국적 역사’ 연구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잡은 점이 이를 보여 준다. ↩
- Amin, Eurocentrism, p. 135. ↩
- 예컨대 Said, Orientalism, pp. 153-156를 보라. 마르크스에 관한 사이드의 주장을 비판한 이르판 하비브의 글 “Critical notes on Edward Said”도 참고할 만하다. ↩
- 아민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일종의 종속이론에서 도출된 “불평등 발전” 이론과 “이탈delinking” 이론을 핵심으로 한다. ↩
- 가령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 중 “사회의 경제 발전 수준을 보여 주는 시대적 구분”에 관한 유명하지만 극히 짧은 글을 보라.(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59/critique-pol-economy/preface.htm) ↩
- Amin, Eurocentrism, p. 120. ↩
- Amin, Eurocentrism, p. 121. ↩
- 트로츠키 사상을 철저히 적용해서 1927년 중국 혁명을 분석한 사례로는 Harold Isaacs, The Tragedy of the Chinese Revolution을 보라. ↩
- Bill Dunn과 Hugo Radice가 편집한 논문집 100 Years of Permanent Revolution에는 불균등·결합 발전론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들이 여러 편 실렸다. 그런가 하면 최근 Cambridge Review of International Affairs는 불균등·결합 발전론이 국제관계학에 시사하는 바를 한 호의 특집으로 다뤘다(vol. 22:1, 2009).[미셸 뢰비(‘마이클 로이’로도 발음한다)의 저서로는 그 일부가 《맑스와 엥겔스의 혁명관》이라는 제목으로 최일붕이 국역해 2005년 다함께 소책자로 출판된 바 있다. — M21] ↩
- 트로츠키 이론에 관한 수준 높은 고찰로서 근래에 나온 문헌으로는 Allinson and Anievas, “The uses and misuses of 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 an anatomy of a concept”을 참조하라. ‘고전적’ 문헌으로는 트로츠키의 《연속 혁명 및 평가와 전망》과 《러시아 혁명사》 제1장을 참조하라. ↩
- Löwy, “The Marxism of Results and Prospects”, pp. 31-32. ↩
- Trotsky, The Hi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 p. 27. ↩
- Allinson and Anievas, “The uses and misuses of 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 p. 50. ↩
- Marx, Grundrisse, p. 85. Quoted in Colin Barker, “Extending Combined and Uneven Development”, p. 79. ↩
-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참조. ↩
- Allinson and Anievas, “The uses and misuses”. ↩
- Davidson, “From Uneven to Combined Development”, pp. 10-26. ↩
- Years of Permanent Revolution, pp. 72-87에 실린 Colin Barker의 글, “Beyond Trotsky: Extending Combined and Uneven Development”에서 이 후자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
- 현대 중국에 대한 불균등·결합 발전론의 적용 사례로는 100 Years of Permanent Revolution에서 Neil Davidson이 쓴 글, “China: Unevenness, Combination, Revolution?”(pp. 211-229)을 참조하라. ↩
- Barker, “Beyond Trotsky: Extending Combined and Uneven Development”. ↩
- 예컨대 Passages from Antiquity to Feudalism (p. 218)에서 페리 앤더슨은 노예제, ‘부족 공동체’나 봉건제 생산양식 외에도 ‘유목민적 생산양식’을 별도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앤더슨이 생산양식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은 Perry Anderson, Lineages of the Absolutist State의 결론부에 명확하게 정리돼 있다. ↩
- Haldon, The State and the Tributary Mode of Production, pp. 93-94. ↩
- 공납제 생산양식에 관한 사미르 아민의 최초 설명은 Amin, Unequal Development. Chapter 1, “The Precapitalist Formations”, pp. 13-58를 참조하라.[국역: 정성진·이재희 역, 《주변부 자본주의론》, 돌베개, 1985. — M21] ↩
- Europe and the People without History (pp. 73-100)에서 에릭 울프가 쓴 장은 공납제 생산양식에 관한 가장 간결하면서 유용한 글이다. 울프가 보기에 인류가 경험한 생산양식은 혈족제kin-ordered, 공납제, 자본주의, 이렇게 세 가지다. 그러나 그는 이 셋 간의 “역사적 관계” 운운하며 그 셋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진화상의 순서”를 애써 무시한다. ↩
- 예컨대 Neil Davidson의 논평, “Asiatic, Tributary or Absolutist?”이 이를 보여 준다. 중세사학자인 Chris Wickham도 그의 저서, Framing the Early Middle Ages, Europe and the Mediterranean, 400-800, p. 60에서 전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에 관해 존 핼던과 같은 논지를 피력한다. ↩
- 마르크스 자신은 《자본론》 3권에 이렇게 썼다. “ … 문서상의 토지 소유자를 위한 잉여노동은 오직 경제적이지 않은 압력(그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을 통해서만 [농민한테서] 갈취할 수 있다.”(Eric Wolf, Europe and the People without History, p. 80에서 재인용). ↩
- Wolf, Europe and the People without History, p. 82. ↩
- Wolf, 같은 책, p. 80. ↩
- Haldon, The State and the Tributary Mode of Production. 특히 핼던이 서로 다른 몇 가지 공납제 사회구성체들을 살펴보는 제5장, “State Formation and the Struggle for Surplus”을 보라. ↩
- Amin, “The ancient world-systems versus the modern capitalist world-system”, pp. 262-276. ↩
-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설명한 토니 클리프의 고전 State Capitalism in Russia[국역: 정성진 역, 《소련 국가자본주의》, 책갈피, 1993. — M21]를 보라.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최근의 논의를 정리한 글로는 정성진, “소련 사회의 성격: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보라. ↩
- Davidson, “Bourgeois Revolutions: On the Road to Salvation for all Mankind.” ↩
- Davidson, 같은 글. ↩
- Cliff, Permanent Revolution. ↩
-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pp. 106-114. ↩
- 스코틀랜드 혁명에 관해서는 Neil Davidson, Discovering the Scottish Revolution을 참조하라. ↩
-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서기 2~5세기에 한반도에 형성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국가들에 더해 일본 열도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의 국가들과 긴밀한 상호작용 하에 여러 개의 국가나 원초적 국가proto-states들이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이 국가들이 이들보다 몇 세기 앞서 존재했던 고대 에게해 문명과 비슷하게 해상海上 상호작용권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에 관해 읽어볼 만한 문헌들은 다음과 같다. Vladimir Tikhonov[박노자], “On the Problem of the International Status and Stages of the Socio-Political Development of Tae-gaya in the Late 5th and early 6th centuries”; Gina L. Barnes, State Formation in Korea and State Formation in Japan; Hyung-il Pai, Constructing “Korean” Origins. ↩
- 중국 문명 자체도 “전국시대”로 알려진, 여러 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국가 형성·발달 과정을 거친 끝에 한반도와 일본열도보다 겨우 몇 세기 전에야 중앙집권제 국가로 통일된 상황이었다. ↩
- 예를 들어 신라는 한반도에서 가장 늦게 발달한 국가였지만 서기 668년에는 다른 국가들을 모두 정복하고 통일 국가를 세웠다. 통일 신라는 10세기 초까지 존속했다. ↩
- Allinson and Anievas, “The 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 of the Meiji Restoration: A Passive Revolutionary Road to Capitalist Modernity”. ↩
- Gray, “Labour and the State in China’s Passive Revolution”. ↩
- 북한 국가와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형성에 관해서는 Owen Miller, “North Korea’s hidden history”와 김하영, ‘계급적 관점에서 북한 보기’를 참조하라. ↩
- 물론 이러한 논쟁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주의자 역사학자들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
- “국민국가의 틀 내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 사회주의 혁명은 국민국가의 무대에서 시작돼 국제적 무대로 전개되며 세계 무대에서 완료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혁명은 새롭고 더 광범한 의미에서 연속혁명이 된다. 신생 사회가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최종 승리를 거둬야만 비로소 사회주의 혁명이 완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Trotsky, The Permanent Revolution, p. 279. ↩
참고 문헌
김하영, ‘계급적 관점에서 북한 보기’, 《진보평론》 45(2007).
한규한, ‘우파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반동적 이중주’, 〈다함께〉 75호(2007.3.8).
Allinson, Jamie C. and Alexander Anievas. “The 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 of the Meiji Restoration: A Passive Revolutionary Road to Capitalist Modernity”, Capital & Class, 102:4 (forthcoming wint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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