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
다음은 2021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주최한 맑시즘 중 동명 워크숍의 발제를 녹취·번역한 것이다. [ ] 안의 내용은 편집부가 독자의 이해를 위해 추가한 것이다. — 《마르크스21》 편집부
일란 파페
저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패널로 참여하게 돼서 무척 기쁘고, 이 중요한 토론에 참여하려고 시청 중이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저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용어가 팔레스타인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만,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는 투쟁(또는 혁명적 투쟁)을 제대로 의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는 두 가지 용법으로 쓰입니다.
첫째 용법은 남아프리카나 미국 남부, 또는 식민 통치 시절 아시아·아프리카 곳곳에 존재했던 사회를 각각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용법에서는 그 모든 역사적 사례를 두루 통칭하는 일반적 의미로 쓰이고, 팔레스타인의 상황도 최근에는 여기에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이런 두 종류의 아파르트헤이트 모두와 중요하게 연결시킨 인물은 [가톨릭 대주교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랫동안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활동을 한] 데스몬드 투투입니다. 그는 [2000년대 초] 역사적 팔레스타인 지역, 즉 1949년 이스라엘 국경 안팎을 모두 방문했습니다. 그 후 내놓은 메시지에서 핵심적으로 그곳 상황이 새로운 종류의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했습니다.
데스몬드 투투는 팔레스타인 상황이 여타의 아파르트헤이트 사회와 비슷하기도 하고 또 매우 다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상황은 학대나 비인간적 대우라는 면에서 남아공 시절보다 덜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점령지[서안지구·가자지구·동예루살렘]의 아파르트헤이트 상황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남아공 시절보다 더 심하다고 했습니다.
한편, 팔레스타인을 아파르트헤이트와 연결시키는 또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남아공 등 여타 아파르트헤이트 사회의 상황을 팔레스타인과 비교하기보다는,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해서 벌어졌던 투쟁을 역사적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비교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현지 상황이 아니라 투쟁의 유사성에 주목하는 방식은 중요한 성과를 낳았는데 바로 BDS 운동과 세계 여러 대학가에서 매년 진행하는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주간IAW’ 행사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투쟁의 유사성에 주목하는 관점에서도 자세히 따져 볼 점은 있습니다.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릴 때 보이콧은 분명 무척 중요한 구실을 했지만, 현지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이끄는 투쟁(거기에는 무장 투쟁도 포함됩니다)이 없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ANC는 내부적으로 분열과 긴장이 많은 조직이었지만, 역사적으로 필요한 순간에는 그런 분열을 극복해 냈습니다.
또한 남아공에서 [백인 정권이 명목상 흑인의 자치독립국이라 명명한] 반투스탄은 팔레스타인 당국PA과 달리 한 번도 해방 투쟁의 일부를 자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PA를 가장 혹독하게 비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PA가 파타에 속하고, 파타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PA는 해방 운동의 일부인 동시에 점령의 하청업자인 일탈적 존재입니다. 다른 식민지 해방 투쟁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습니다.
PA를 멸시하며 그들을 부역자라고 부르든, 아니면 진정한 저항 세력이나 혁명적 운동이라고 추켜세우든 팔레스타인에서는 둘 다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그런 단순한 접근에 아무런 문제 의식을 못 느낀다면, 그건 팔레스타인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르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 투쟁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와 같습니다.
두 얼굴 중 환히 드러난 쪽은 시온주의 프로젝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시온주의의 본성을 더 분명하게 들춰낼 수 있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시온주의란, 강력한 국가가 1948년에 시작한 반인륜적 범죄를 완수하고자 휘두르는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라는 것 말입니다.
야누스의 두 얼굴 중 숨겨진 쪽은 그런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그 저항을 들여다 보면 믿기 힘들 만큼 큰 용기와 헌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살해·부상·실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항에 나서면 그들 자신뿐 아니라 가족 또는 마을 전체가 이스라엘에 보복당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국제법이나 기본적 인권을 체계적으로 짓밟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과거에도) 예루살렘이나 가자지구 장벽에서 발견할 수 있듯, 팔레스타인의 용감한 사람들은 지도력과 조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신념을 갖고 있고 또 그 땅에서 살아갈 권리를 잊지 않고 있음을 간헐적이지만 성공적으로 드러내 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영웅적인 노력을 벌였음에도 예루살렘 일대나 서안지구 C구역[서안지구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통제력이 강한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전반적으로 인종청소하는 것을 막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자지구 봉쇄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통도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BDS 운동이나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주간’ 등도 비록 아주 인상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상황을 바꾸지 못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그간의 성과를 낮춰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BDS 운동이나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주간’처럼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이룬 성과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담론을 바꿔 냈습니다. 그런 운동으로 세계 곳곳의 대학 캠퍼스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하는 장소가 됐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다른 억압받는 집단들(아프리카계 미국인, 영국의 종족적·문화적 소수파, 세계 도처의 원주민과 노동자 투쟁들)과 교차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그런 활동들은 다국적 기업들이 무기, 감시 기술, 최근에는 제약·의료산업 거래로 우리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과, 그런 막강한 집단들이 팔레스타인 억압과 연결돼 있음을 폭로했습니다.
각국에서 자행되는 이런 착취가 팔레스타인 억압과 연관돼 있다는 폭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각국 정부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이스라엘을 국제적 ‘왕따’로 만들라고 압력을 계속 넣고 있습니다. 분명 매우 높이 사야 할 소중한 연대 활동들이고 당연히 계속돼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맑시즘에 참가한 것이 오늘로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인데 늘 이 대목에서 아주 중요한 토론이 벌어지곤 합니다.
무슨 토론이냐 하면, 우리[팔레스타인 외부에서 연대하는 운동]와 현실의 발전이 [아직] 동조화되지 않았다는 문제입니다. 여타의 제3세계 해방 운동에 연대할 때에는 부딪히지 않았던, 근대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문제에 우리는 직면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이 독립하려면 선행돼야 할 변화가 여럿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내부적] 단결을 이루는 것, ‘두 국가 방안’ 패러다임과 결별하는 것, PA(식민 점령을 끝내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 기여하고 있죠)를 해체하는 것이 그런 변화에 속합니다. 또한 아랍 세계에서 권위주의에 맞서고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요구하는 투쟁과 결합돼야 합니다.
아랍의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의 대의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를 보내 왔지만 그 정부들은 이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았는데 그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모두 아직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21세기 팔레스타인인들의 탈식민지 해방 전략도 아직 명료한 형태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런던이나 뉴욕에서 벌이는 가장 성공적이고 강렬한 연대 운동만으로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없습니다.
그런 변화가 현지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운동은, 민주적 단일 국가라는 대안을 중심에 놓고 이를 전략적으로 추구하는 해방 운동의 모습을 분명 띠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팔레스타인인들의 헌신적 활동과 개인들의 용맹함에 연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해방에 필요한 역사적 과정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연대 운동은 아직 동조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연대 활동과 현지의 변화가 동조화되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저는 확신하고,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인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고, 교육을 잘 받았고, 능동적이고, 과거 팔레스타인인 사회가 파편적이었던 시절에는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지금은 서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팔레스타인인 [사회] 바깥에서의 연대가 현지에서의 발전과 융합돼 탈식민지화와 독립이라는 전환을 이룰 힘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동조화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바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매스 미디어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류 학계나 정치권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전혀 아니죠. 우리가 그런 영역 안팎 어디서 활동하려고 하든, 부도덕한 세력들은 동맹을 꾸려 우리를 적대하고 우리더러 유대인 혐오론자라고 비난합니다.
동조화의 순간이 왔을 때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는 아직 더 많은 것을 해야 합니다. 그와 관련된 말씀만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저 자신은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민주적 단일 국가 방안 이니셔티브’라는 것을 통해 팔레스타인 정치·사회 부문에서 민주적 단일 국가라는 해법과 그 실현 방법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 내 유대인 사회 안에도 참여할 세력이 있는지 찾고 있지만 그것이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외부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벌이는 투쟁이 성공적이려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로는 투쟁 대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투쟁은 가자지구에서의 인종학살에 맞서고, 서안지구 A·B구역의 가혹한 군사 통치와 점령, 이스라엘 국가의 지원 아래 자행되는 [정착자] 무장대의 괴롭힘에 맞서는 것입니다. 또한 서안지구 60퍼센트를 차지하는 C구역에서는 그런 무장대 활동으로 이전부터 인종청소가 벌어져 온 현실에 맞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내에서 인종차별적 법률을 제정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강탈하고,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도시와 마을들을 범죄 현장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에 맞서는 투쟁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들을 연구하고, 보고하고, 응당한 책임을 묻고, 정보 공개를 요구하면서 그런 것들을 법과 언론, 지역 정치와 전국적 정치에서 제기해야 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런 것들이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런 현실이 어떻게 자행되고 있는지 날마다 들춰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침묵케 하고, 위협하고, (매한가지로 위험한) 무관심에 빠뜨리려 드는 냉혹한 자들의 시도에 흔들림 없이 맞서야 합니다.
우리의 투쟁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는 투쟁, 어쩌면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식민주의, 파시즘, 인종차별, 인종청소 그리고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는 억압에 맞서는 투쟁이기도 합니다. 이런 다른 투쟁들에 연대하는 운동의 일부가 되는 것은 현지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하는 활동도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앤 알렉산더
일란이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지배 체제에 맞서는 혁명적 관점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란이 말한 것의 많은 부분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강조점, 말하자면 분석상의 강조점을 살짝 바꾸고 싶습니다. 제가 제시하는 내용이 풍성하고 유의미한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만큼 중요한 쟁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세 영역을 다루려고 합니다.
첫째는, (어느 투쟁에서나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가 정확히 무엇에 맞서 싸우려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친구,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의 동맹이 누구인지,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동맹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끝으로, 팔레스타인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전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팔레스타인인들이 현지에서 점령과 억압에 맞서 대단히 용감하고 굳건하게 벌이는 투쟁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전제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술 문제는 우리가 논쟁과 토론을 통해 서로 많이 배우고 더 강해질 수 있는 영역입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갖는 (객관적 약점보다는) 커다란 강점에 기초해 일련의 전술과 투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객관적 약점과 강점을 두루 살피고 각각을 저울질해야 한다는 일란의 지적에는 완전히 동의합니다. 저도 그런 관점에서 승리하기 위한 과제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적을 아는 문제부터 얘기해 보죠.
이스라엘을 가리켜 아파르트헤이트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파르트헤이트적 실천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일란이 지적한 많은 것에 동의합니다. 즉, 그런 명명법은 충분히 구체성을 가져야 하고, 이스라엘이 중동의 제국주의 질서에서 맡고 있는 실제 구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논의돼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혁명가들의 전술과 전략 문제에서도 핵심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중동의 제국주의 체제에서 독특한 구실을 맡고 있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군사적 식민지로서 고전적인 식민 정착자 사회 모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스라엘 경제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의 군사 동맹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규정할 때 ‘국가를 보유한 군대’라는 개념이 유용하다고 봅니다. 보통은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지만 그 반대라는 것이죠. 이스라엘 국가의 작동이나 이스라엘의 정치경제학에서는 군인들이 다른 국가들에서보다 더 압도적이고 지배적인 구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20~30년에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이런 관점을 이해하려면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를 이전 시대의 제국주의와 구별해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록 둘 다 자본주의의 경쟁이라는 역학에서 기원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말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는 국가들의 위계 질서를 세우고 독자적 자본 축적의 중심지를 만드는 것에 기초했습니다. 이런 점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중심부 바깥에서 부르주아지의 발전을 억제하고 지체시키는 것에 의존했던 고전적인 유럽 식민주의 모델과는 달랐습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자신이 주름잡는 제국주의 구조물을 세울 때 이스라엘은 거기서 일정한 구실을 맡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실은 [중동에서 부상한] 독자적 자본 중심지 국가들이 미국 위주의 국가 간 위계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군사력으로써 규율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1967년이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1967년은 1948년의 재앙 없이는 불가능했고 그 재앙의 결과 위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1967년을 통해 이스라엘군과 그 군이 세운 이스라엘 국가가 미국과 맺는 동맹이 견고해졌습니다. 이후 40년 동안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미국 지배계급은 이스라엘에 어마어마하게 투자했습니다. 미국이 만든 이 하이테크놀러지 군사적 식민지는 일종의 군사 도시와 같고, [반反시온주의 유대인 사회주의자] 존 로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비견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지배계급과 이스라엘의 이런 관계는 두 국가 간 일련의 양해각서로 정식화됐습니다. 그 양해각서들에서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규모 군사 기술과 무기를 지원하고, 이스라엘이 주변국들 대비 “군사력의 질적 우위”를 견지하도록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데에 초당적 합의가 있습니다. 공화당만의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중대한 양해각서를 최초로 체결한 인물은 바로 [1993~2001년 민주당 대통령] 빌 클린턴이었고, [2001~2009년 공화당 대통령] 조지 부시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09~2017년 민주당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최근 이스라엘로 막대한 자금과 군사 기술이 이전되고 있는 것은 오바마가 서명한 양해각서 덕분입니다.
그러나 군사력으로써 규율하는 것에는 전쟁을 벌이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전쟁은 더 커다란 규율 체제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에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의 질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하위 파트너들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이 하위 파트너들 중에는 대들보 구실을 하는 국가들이 있고, 미국은 그런 국가들과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려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런 대들보 국가 중 하나인 튀르키예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동맹이었고 나토 초기 회원국입니다. 또 다른 대들보는 걸프 왕정으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이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이란도 이런 구조물의 주요 대들보 중 하나였지만 1979년 민중 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저는 이란이 여전히 중동에서 아류 제국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미국의 동맹국은 아니고 미국에 맞서는 아류 제국주의 국가로 바뀌었더라도 말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분석의 틀로 삼을 때에 누가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의 우군인지 제대로 물을 수 있고, 승리하기 위한 전술과 전략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미국 지배계급 중에는 어느 부문도 이 투쟁의 우군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중동의 다른 국가들도 기댈 수 없는 세력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도출됩니다.
미국의 동맹이 아닌 국가들도 팔레스타인인 단체들을 억압하고, 그들을 계속해서 주변부로 밀어내고,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을 차별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을 이용해 온 끔찍한 역사가 있습니다. 시리아 정권이 아주 전형적인 경우입니다.
중동 전역에서 평범한 사람들, 특히 팔레스타인과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나라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지역적 지배 구조를 해체하는 데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지배 구조가 중동의 살인적 정권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을 물질적·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들 국가에서 팔레스타인 연대가 반정부 투쟁의 촉매제로 반복적으로 작동하고 또 오랜 기간이 지나도 그 관계가 바뀌지 않는 이유입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운동의 민족주의 지도부가 각각 정의를 요구하는 이들 두 운동[팔레스타인 독립 운동과 각국의 반정부 투쟁]의 서로 병행·교차되는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역사적으로 많이도 애썼던 이유입니다.
예컨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에 이르는 동안 레바논과 요르단에서 벌어진 투쟁의 역사를 보십시오. 당시 그 나라들에서는 현지 정권에 맞서는 투쟁과 그곳 팔레스타인인들의 혁명적 운동이 나란히 발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튀니지와 이집트의 활동가들에게 “2011년 혁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투쟁의 정치적 출발점이 무엇이었습니까?” 하고 한 번 물어보십시오.
꽤 많은 경우 그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라고 답할 것입니다. 예컨대 튀니지에서는 독재자 벤 알리가 2005년 ‘정보 사회 세계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당시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을 초대한 것이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당시 그 사건을 계기로 튀니지의 수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조직화에 나섰고, 노동조합 관료들에게서 독립적으로 정치적 행동에 나설 능력을 되살렸습니다.
이집트인들의 투쟁에서는 2000년대 초에 벌어진 2차 인티파다에 연대하는 운동이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2011년에 발발한] 이집트 혁명을 이끈 세대는 바로 10년 전 2차 인티파다 연대 시위 물결에 학생으로 참가했던 이들이고, 2차 인티파다는 그들이 처음으로 맛본 대중 행동 경험이었습니다.
더 최근에 중동에서 벌어진 투쟁들에서도 팔레스타인은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예컨대 [2019년에 반정부 시위가 분출한] 알제리가 그렇습니다. 알제리 정권은 수년 동안 아래로부터 시위와 투쟁에 직면했는데 [알제리의 차별받는 소수민족] 베르베르인들의 깃발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깃발도 금지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가 아주 인기 있을 뿐 아니라, 알제리 정권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둘 사이의 깊은 연관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제가 오늘 제시할 분석의 마지막 문제, 즉 ‘팔레스타인인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전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직면한 상황과 지난 수십 년간 그들이 이어 온 운동의 경험에 기초해서 이를 살피겠습니다. 물론 팔레스타인인들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하는 객관적 약점도 봐야 합니다.
이 문제에서는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가 군사적 식민지 모델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경제는 남아공과 다릅니다. 남아공에서는 경제적으로 흑인 노동계급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노동력은 경제적으로 주변적 구실만 하고 특히 하이테크 산업에서는 배제돼 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로 하이테크 산업이 이스라엘 경제에서 갈수록 중심적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부문에 고용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일손을 놓는 방식으로 타격을 줄 수가 없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는데, 흑인 노동계급이 백금이나 금 등의 광산에서 핵심적으로 일했고, 그들의 투쟁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에 맞서는 핵심 엔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투쟁으로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국가가 불안정해졌고 그 덕분에 ANC가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투쟁을 지도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남아공과의 이런 차이점을 감안해 저는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잠재력을 모색하고, 이를 위한 투쟁의 방식과 형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의 정치적 측면(민주주의와 시민적 권리를 요구하고, 억압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점)을 사회적 힘과 결합시키는 투쟁들입니다. 그런 사회적 힘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지역보다 훨씬 더 큰 지역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투쟁의 계급적 측면이 그런 사회적 힘과 결합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평범한 사람들, 그 중심에는 조직 노동계급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에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2010년대에 벌어진 혁명들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 혁명들이 현재 끔찍한 패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혁명적 전략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2010년대의 혁명은 우리가 중동과 더 넓은 지역에서 대중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2010년대에 거대한 혁명 운동을 폭발시켰던 모순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런 투쟁들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바깥에 있지만 중동 안에 있는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현지의 투쟁과 연대하면서 어떤 유기적 관계를 맺는지가 중요합니다. 일란이 말했듯이 그 투쟁들이 서로 동조화되는 것이 이 억압과 지배의 기구를 무너뜨릴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중동 바깥에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란처럼 저도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운동을 계속해서 건설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영국]의 우리에게는 역사적 책무가 있는데 애초 이스라엘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 영국 식민주의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지배계급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지금도 진행 중인 정착자 식민주의의 결과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싸우는 것에 우리는 계속해서 절대적으로 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고 연대를 건설하도록 우리의 대학과 작업장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투쟁합시다. 감사합니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