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란 그리고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
오늘 주제는 분명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주를 겪으면서 우리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전 세계에 그리고 이 나라[영국]에 미치는 정치적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영국 정치에 일으킨 위기들로 우리는 직장과 거리에서의 활동, 국가를 상대하는 일 등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라도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오늘 제가 집중적으로 다룰 내용은 중동에서 제국주의가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과정입니다. 특히 중동 국가들 간의 제국주의적 경쟁이 발전해 온 역학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제가 다루려는 국가들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란이나 걸프 국가들(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그리고 튀르키예도 일정 부분 포함됩니다.
저는 다음을 살펴볼 것입니다. 중동 국가들 간의 경쟁이 발전해 온 역사적 맥락, 중동 국가들 수준의 경쟁이 열강 간 제국주의 역학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최강 자본주의 국가들 간 세력 조정·재조정에서 중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국제 질서 최상층에서 벌어지는 그런 변화가 중동 등지에 다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제가 이런 설명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제국주의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하는 흔한 관점에 도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영국] 노동당의 제국주의를 미국과 서방이라는 단일 집단의 한 분견대 정도로 이해하거나, 미국과 서방만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여기고 그들에 맞서는 세력은 무조건 진보적 혹은 사회주의 세력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중국, 또는 과거의 소련을 두고 사회주의라고 보는 이들이 많지만 저는 둘 다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죠.
더 작은 국가들, 예컨대 중동의 이란을 두고서도 이렇게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제국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그리고 자본주의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간략하게 제시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 마지막으로 최근 몇 주간 벌어진 전쟁을 다뤄 보겠습니다.
제국주의의 역학
오늘날 벌어지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접근법과 이론적 틀은 무엇일까요?
‘제국주의란 무엇인가’를 답하려면 마르크스주의적 경제 분석에 기초해야 하고, 제국주의를 추동하는 동력이 자본가들 간의 경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제국주의란, 국가들이 벌이는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국주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세기 말에 생겨난 변화였습니다. 당시 마르스크주의자들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 자유주의자들도 포착한 변화였는데요. 바로 국가들이 군사적 경쟁을 위해 벌이는 활동(물론 국가 간 군사적 경쟁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있었는데, 이는 모든 계급사회의 특징입니다)이 원자재 확보, 기술 개발 등 산업 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과 갈수록 뚜렷하게 융합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무기 등 현대적인 전쟁 수단을 개발·생산하는 부문으로 생산 역량이 집중됐습니다.
이처럼 19세기 말에 독일이나 당대 제국주의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 등 국가들 간의 (재)무장 경쟁이 한창 가열되고 있었지만, 또 다른 중요한 변화도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유럽이 아닌 세계 나머지 지역은 유럽 열강에 의해 장악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분할했고, 아시아에서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빼어난 책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국역: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 이후, 2008년]를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엘니뇨와 같은 기후변화가, 강대국들이 세계시장으로 막 편입된 사회들에 부과한 금융 규제, 식민주의적인 토지 강탈과 상호작용하면서 재앙적인 기근이 발생할 여건이 조성됐습니다.
이처럼 잔혹한 식민화 과정이 체제 중심부에서의 경쟁 격화와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중동은 이 과정의 핵심에 놓여 있었습니다(‘중동’이라는 명칭은 오리엔탈리스트들과 제국의 관리자들이 붙인 것입니다). 이 지역이 그토록 중요해진 것은 석유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최강 자본주의 국가들은 제국 확장과 자본주의적 성장을 위한 동력 기반을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이 가장 앞장섰지만 독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제 질서 최상층의 변화를 보면, 석유 경제로 가장 맹렬히 전환한 국가들이 가장 강력한 국가들로 부상했다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은 많은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석유 매장량은 거대하고,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강자로 부상한 것도 19세기 후반의 석유 개발 붐을 통해 그 기초를 마련한 덕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석유에 기반한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이 중동 석유 장악을 그토록 중시하는 이유가 자신의 수요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유럽 등지의 동맹들에게 공급되는 석유를 통제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에너지원 변화를 두고 ‘에너지 전환’이라고 많이들 부르지만, 엄밀히 말해 ‘에너지 축적’이 더 맞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연료가 도입되더라도 옛 화석연료는 버려지지 않고, 결국 새로운 연료만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자본주의 경쟁 역학은 국제 질서의 최상층만 변화시키는 것(예컨대, 20세기 국제 질서에서 영국 제국이 기울고, 미국과 소련이 부상한 것)이 아니라, 신흥국들을 향해 이른바 ‘하향식’으로 확장하면서 변화를 일으킵니다. 여기서 신흥국이란, 유럽이나 미국 같은 체제의 옛 중심지로부터 독립적인 자본 축적의 거점을 발전시킨 곳을 가리킵니다.
여러 자본주의 국가들은 부상 과정에서 일련의 산업 구조 변화를 겪습니다. 많은 경우 그 시작은 섬유 산업이었고, 이후 포드주의에 따른 자동차 산업 등으로 넘어갑니다. 그 뒤 소비자용 전자제품 산업으로 다시 한번 넘어갑니다. 20세기 중엽 이후 소비자용 전자제품 생산은 세계경제에서 신흥국이 부상하는 중요한 통로로 자리잡았고, 동아시아에서 자본 축적의 새로운 거점이 부상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이렇듯 경쟁은 국제 질서의 최상층 국가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서열이 낮은 국가들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제국주의의 중동 개입 역사
그런데 이런 논의가 중동 지역의 국가들 간 경쟁을 이해하는 데에서 왜 중요할까요?
우선,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벌어진 일들을 설명할 수 있고 일부 지역의 경우는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일어난 일까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집트에서 면화 산업이 발전한 역사를 봅시다. 19세기에 이집트는 사실상 영국 랭커셔 방적 공장에 면화를 공급하는 플랜테이션으로 전환돼 1차 산품만 생산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집트가 면화 산업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려 하면 유럽 열강이 무자비하게 짓밟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무렵, 이집트에는 중동 최대 규모의 섬유 산업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할라 쿠브라의 공장에서는 노동자 3만 명이 일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가말 압델 나세르 지도 아래 이집트가 부상했는데, 그는 이집트를 지배하던 영국을 군사적으로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장교였죠. 나세르는 국가의 자원을 동원해 수직 통합된 섬유 산업과 중공업 등을 발전시키려 했죠. 이런 산업 기반은 이집트가 중동에서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습니다.
이처럼 이집트가 정치적 독립을 추구하자 옛 제국주의 지배자들은 군사적·정치적·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일으킨 [1956년] 수에즈 위기가 있었고, 1967년에는 이스라엘이 결국 이집트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6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6일 전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일으킨 목적은 이집트에서 부상하던 독자적인 지배계급을 군사적으로 억누르는 것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경제적 통제력을 확립하려는 데에도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중동 지역의 자본주의가 서방 열강의 동맹(이 무렵 미국이 영국을 대신해서 서방 열강을 이끌고 있었죠) 구조 속에서 발전하며 그 제약을 받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1967년 이후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나세르 사후 등장한 이집트 지도자들은 이스라엘과 화해하고 미국과 동맹을 맺었을 뿐 아니라, 1970~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실시할 여건도 마련했습니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이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이제 또 다른 중동의 주요 강국인 이란을 살펴봅시다. 사실 이란은 이집트와 달리 직접적인 식민 지배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이란은, 한때 강력했지만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쇠락한 제국의 잔존물인데요. 이란에서도 외세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지만, 다른 중동 국가들이 받았던 직접적인 식민 통치를 겪지는 않은 거죠.
1950~1960년대에 이란 왕조는 미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민족주의 성향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의 부상을 막기 위해 매우 직접적으로 개입했는데, 1950년대에 쿠데타를 배후 조종해서 그를 축출했습니다. 이 개입의 목적도 이란이 미국의 정치적 통제에서 너무 ‘독립적’인 나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 시기 이란의 정치와 경제가 발전하는 방식을 규정하게 되죠.
이 때문에 이란 자본주의는 발전 과정에서 오만가지 모순을 보이게 됩니다. 토지 개혁 시도가 있었고, 공업화 시도도 있었죠. 또 이란은 현대 석유 산업의 중요성 덕분에 막대한 이득을 누렸습니다.
1960년대 말, 이란은 미국의 정치적 동맹이었지만 자본주의 국제 질서의 최상층 강대국들에게서 독자성을 발휘하려고 다시금 시도합니다. 일군의 산유국들과 석유 카르텔 OPEC을 결성한 것인데, 유가를 조정해 독자적인 경제 발전 노선에 힘을 실으려 한 거죠.
이때까지도 이란 왕정은 미국의 동맹이었고,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에서 미국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였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런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란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고, 적어도 기층에서 혁명을 조직한 사람들의 구성을 보면, 빈민, 특히 노동자들이 주도한 혁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석유 산업의 조직 노동자들이 이란 혁명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구실을 했죠. 그렇지만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이란 혁명의 정치적 성과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주의 경향이 부상해서 국가 권력을 장악했고, 같은 계통의 정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죠.
1979년 이란 혁명은 지정학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낳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중동의 핵심 국가 하나가 미국의 확고한 동맹에서 미국 외교관들이 비밀 문서를 소각·파쇄하고 달아나야 하는 곳으로 사실상 하룻밤 만에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중동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겼는데, 바로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를 이용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정권은 이란을 공격했고 1980년대 말 미국은 이란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이라크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공급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 지역 수준의 경쟁 구도에서 중동 강국들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스라엘의 특수성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특수성과 그것이 중동에서 의미하는 바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작동 방식을 놓고 봤을 때 — 국제 질서 최상층 강대국들이 벌이는 경쟁의 측면에서든, 자본주의가 식민주의를 통해 강제로 확산되는 과정과 연관된 측면에서든 — 이스라엘은 매우 독특한 구실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정착자 식민 국가로서 1940년대에 형성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을 지배하는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건국 과정에서 도입됐습니다. 물론 팔레스타인 식민화 과정은 한참 먼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파르트헤이트를 제도화한 정착자 식민 국가의 출발점은 1947~1948년 나크바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제도화되던 것과 정확히 같은 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들, 예컨대 로디지아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민족 해방 운동으로 로디지아 국가가 타도돼 로디지아는 오늘날 짐바브웨가 됐습니다. 또 다른 정착자 식민 사회였던 알제리에서도 1950~1960년대에 정치적 급진화가 일어나며 비슷한 과정이 진행됐죠.
이렇듯 정착자 식민 국가들은 역사의 특정 국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후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만큼은 그 체제가 유지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치가 왜 오히려 갈수록 [오른쪽으로] 급진화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중동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입니다. 바로 중동 석유가 세계 정치경제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에게 이스라엘이 장기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종종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경비견”이라고 불리죠. 이스라엘은 미국의 무기와 지원을 받는 미국의 중동 요새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정학적 변화뿐 아니라 중동 전반의 정치경제지형도 변했고, 그 안에서 서로 경쟁하는 주요 국가들의 정치경제학도 변했습니다.
오늘날 중동에서 군사적·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 하나는 석유에서 얻는 수입이나 제국주의 열강의 보조금에 전적으로 기대던 과거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먼저 보죠. 이스라엘 경제는 1948년 건국 당시에, 더 정확히는 나크바 이전에도 두 부문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첫째 부문은 아파르트헤이트의 농업 버전이라 말할 수 있는 일종의 플랜테이션 경제였습니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과거 이스라엘산 오렌지 불매운동을 벌였던 것을 기억하실 텐데요. 오늘날의 보이콧 대상은 첨단 산업이 돼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주력 수출품이 첨단 산업, 소프트웨어 서비스이기 때문이죠.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치경제학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 줍니다.
이처럼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스라엘 지배계급에게는 일정한 독립성, 말하자면 운신의 폭이 더 넓어졌습니다. 단지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거죠. 이 점은 이스라엘 경제 안에서 자본 축적이 매우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런 첨단 산업들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종 이스라엘군 복무를 고용 조건으로 걸며 인종 분리 정책이 엄격하게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그저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여기는 흐름이 있기 때문인데요. 저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봅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 더 공세적이고 더 강력한 지배계급이 부상하는 동안, 미국이 국제 질서의 중심부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약해져 왔다는 것도 봐야 합니다. 최근 미국은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국가라는 지위를 지키기가 갈수록 더 어려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국제 질서의 최상층에서 벌어지는 이런 변화는 다시 낮은 층위에 영향을 끼칩니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을 재천명하기 위해 중동의 국가들을 직접 공격했습니다. 이라크 침공이 대표적인데, 앞서 설명했듯 이라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동맹이었고 미국은 이란을 무찌르기 위해 이라크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1991년과 2003년 두 번 침공했죠.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엄청난 재앙입니다. 이라크인들이 겪은 재앙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미국 지배자들에게도 이라크 전쟁은 재앙적 결과를 안겼고 1960년대 베트남에서 겪은 패배만큼이나 심각했습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몇 주 만에 점령할 수 있었지만, 이후 재공격과 재점령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병력도 많이 잃었지만, 이라크 국가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이란 정권에 빼앗겼다는 것이 [미국에게] 진정으로 재앙적이었습니다. 이란 정권은 미국의 재앙적인 이라크 침공이 낳은 여건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사도 국제 질서 최상층의 역학이 하층의 역학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오늘날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역학
지금부터는 지난 1년 반 동안 벌어진 일을 다루겠습니다.
저는 역사적 사례를 들어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역학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꽤 많이 썼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사회주의자로서 올바른 입장을 취하려면 제국주의 역학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학을 이해해야 우리가 속한 제국주의 국가들 — 영국 국가, 또는 영국 지배계급이 가장 밀착해 있는 미국 국가 — 에 맞서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중동의 강국들도 나름의 목적과 이익을 좇고, 이를 위해 현지의 평범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끔찍한 고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 학살의 끔찍한 파괴력을 보면 전쟁이라는 사신邪神을 추동하는 것이 자본주의 작동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소비자용 전자제품 생산이 중요해졌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현대 전쟁에서는 — 중동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 드론 생산의 중요성으로 대표됩니다. 드론 생산 능력은 소비자용 전자제품 생산 능력에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 드론을 전쟁에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으려면 관련 공장과 부품 공급망을 충분히 갖춰야 하고, 독자적 생산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별 드론 생산 능력은 한 국가의 군사적·정치적 경쟁력을 민감하게 보여 주는 지표입니다.
이 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장에는 약 100만 대의 드론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중동 얘기로 돌아가서, 이란 정권은 드론 생산에서 혁신을 꽤 성공적으로 이뤘고 러시아에 드론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드론 기술을 어디서 얻었을까요? 다름 아닌 이스라엘입니다. 이란이 개발한 샤헤드 드론의 기반 기술은 이란이 격추시켜 포획한 이스라엘 드론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튀르키예도 만만찮은 드론 생산국으로, 소비자용 전자제품 개발과 무기 개발이 상호작용한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안이 무엇일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안이 없으면 전쟁이 끝없이 반복되는, 지극히 암울한 그림만 보일 겁니다. 주요 전쟁을 되짚어 보며 패턴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67년 전쟁은 이미 말씀드렸죠. 1982년에도 전쟁이 있었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었습니다. 그 전쟁은 매우 파괴적이었고, 당시 레바논인과 팔레스타인인 사망자의 증가 속도는 지금의 가자전쟁만큼이나 빨랐습니다. 다만 전쟁이 이번처럼 오래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이스라엘 총리] 베긴에게 멈추라고 했고, 말 안 듣는 네타냐후와 달리 베긴은 미국의 말을 따랐습니다.
1991년에는 말씀드렸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었고, 2003년에 미국은 이라크를 또다시 침공했습니다. 이 전쟁들은 중동 전역의 역학 관계, 때로는 세계적 역학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물론 2023년에 발발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이 있습니다.
이 패턴에서 벗어난 기간이 있는데, 바로 2011~2013년입니다. 그때는 중동 전역에서 전쟁이 아니라 혁명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중동의 노동계급이 (특히 튀니지, 이후 이집트에서) 역사의 무대로 성큼 올라섰고, 중동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섰습니다.
2011년 혁명의 물결은 미국의 동맹만을 타도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혁명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됐지만, 지정학적 울타리의 건너편에 있는 시리아로도 확산됐습니다.
혁명 운동은 파업과 대규모 시위 등을 통해 발전했고, 국가의 지배력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는 다른 종류의 사회를 원한다”고 말하며 국가에 도전했고, 이는 수평적으로 확산돼 중동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다른 세계, 다른 사회에 대한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은, 흔히 사용되는 ‘아랍 혁명’이라는 표현이 사실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시 혁명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사용한 언어를 보면 [아랍어 말고도] 베르베르어, 쿠르드어도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튀르키예로도 확산했습니다.
또한 당시 혁명의 역학은 살짝 지연되긴 했지만 이란에서도 반향을 낳았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란에서 벌어진 반란들의 배경에는 그때와 동일한 위기가 있고, 이 위기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하고 이 혁명으로 제국주의를 실제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혁명이야말로 국제 질서 최상층에 자리잡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끝장낼 방법일 뿐 아니라 전쟁과 위기를 낳는 체제의 논리가 하위 서열로 전달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늘 중동의 평범한 사람들 편에 서고, 특히 노동자들의 핵심적 구실에 주목합니다. 노동자들만이 현재 전쟁과 혼란을 낳고 있는 체제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 발언
청중 토론에 기여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가장 먼저 발언하신 동지에게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이란 민중은 [현 집권 세력인] 물라(성직자)들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호메이니와 그의 이슬람공화당이 이란 국가를 장악한 것은 대중 혁명이 패배한 것의 산물이었습니다.
당시 두 혁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지배계급이 권력을 차지하는 정치 혁명뿐 아니라, 더 근본적인 변화의 잠재력이 있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혁명도 진행 중이었어요. 후자의 경우 계속 발전하면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단언컨대 1979년 이란에는 그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란의 현 정치 체제는, 이런 아래로부터의 사회 혁명에 대한 반反혁명을 통해 수립됐습니다. 비록 옛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들어선 것은 맞지만 반혁명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란에서 시온주의 국가[이스라엘]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설 세력은 이란 민중이라는 한 동지의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제로 비슷한 일이 이라크에서 있었습니다. 다수의 이라크인은 사담 후세인 정권에 반대했지만 미국의 점령을 물리친 것도 바로 이라크 민중이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경쟁에 대한 주장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중 중동 핵무기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한 동지가 중동 핵무기를 둘러싼 서방의 위선을 잘 지적해 주셨는데요.
핵 확산 문제에 대한 강대국들의 태도는 국제 질서 최상층에서 벌어지는 경쟁, 그 강대국들이 해당 지역에서 벌이는 영향력 구축 시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금도 서방은 이스라엘의 이란 정권 공격이 세계를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야말로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했고 또 이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국가입니다.
모든 핵무기는 대량 살상 무기입니다. [영국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가 전술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F-35 전투기를 구입하려고 우리 지갑에서 수십억 파운드를 빼앗아 가고 장애수당을 줄이며 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치욕입니다.
우리의 운동은 [영국 공군 기지가 있는] 레이큰히스와 마럼으로 사람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핵무기를 폐기하라, 우리 이름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또다시 핵전쟁 위기를 고양시키지 말라고 항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쟁점화해야 합니다. 영국 정치의 위기와 중동 상황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한 동지가 중동이 처한 어려움 하나를 말씀하셨는데 바로 과거 중동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국제적 연대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2011년 혁명 물결의 비극적 특징 하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혁명적 투쟁이 소강기에 접어들었을 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부족해 팔레스타인의 혁명적 운동이 나머지 중동 지역의 혁명적 운동과 어떻게 나란히 발전해 왔는지는 다루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치솟았던 시기는 1987년 인티파다와 2000년 인티파다였고, 2021년 ‘단결 인티파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팔레스타인이 아닌 지역에서는 혁명적 운동이 상대적으로 저조했습니다.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변화 잠재력은 있었지만, 두 종류의 혁명적 운동이 서로 융합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그런 융합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이집트에서는 비록 엘시시 정권이 극심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지만, 이집트인 다수는 접경한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 학살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몸서리치고, 인종 학살에 공모하고 있는 자국 정권을 극히 혐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타머 정권을 보며 느끼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것은 지금 이 땅에서도 [군기지에 들어가 군용기에 스프레이를 뿌린 비폭력 직접 행동 단체] ‘팔레스타인 액션’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는 등, 엘시시가 실행할 법한 매우 권위주의적인 정책들이 실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시위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위하고, 행진하고, 군수 공장을 겨냥하고, 이스라엘로 보내는 무기 공급을 교란시킬 우리의 권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액션’을 방어하고 테러 단체 지정이 철회되도록 싸워야 합니다. 또한 반대의 목소리가 설 자리와 기층 조직화 공간을 지켜내야 합니다.
이는 쉬운 싸움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국가는 우리 모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공격하고, 기후 운동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평화 운동도 공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체제의 위기 탓에 복지 문제와 군비 문제가 떼려야 뗄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성공적으로 맞서려면, 한 동지가 아주 훌륭하게 설명하셨듯이 중동의 혁명적 운동에서 배우고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중동이 단지 위기와 전쟁에 시달리는 지역인 것만이 아니라, 대안적 비전과 희망이 생동하는 지역이기도 하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정권은 교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정권 교체는 아래로부터 우리가 스스로 이뤄내는 것뿐입니다.
MAR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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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주최한 ‘맑시즘2025’ 중 ‘Israel, Iran and the dynamics of imperialism in the Middle East’이라는 제목의 강연의 발제와 정리 발언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이 강연은 6월 22일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한 직후인 7월 5일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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