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노동조합 투쟁과 활동가들의 과제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앞장선 이명박 정부의 공세에 맞서 운동 측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조업 전반에서 조업 단축이 확산됨에 따라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고용불안이 가중되면서 산업현장 전반에 불만이 쌓여 왔다. 제조업체만이 아니라 공공부문과 사무직 노동자들도 임금 동결과 삭감,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렸고, 최근 들어 그런 공격이 구체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노동자 운동 측이 저항의 채비를 갖추던 중에 최근의 역동적인 정치 정세의 영향을 받아 투쟁의 필름이 한 템포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산별교섭이 집중되고 임단투가 겹치는 하투에 반이명박 투쟁이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치며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노동자들의 누적된 불만과 산업현장의 긴장이 정치 정세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화물연대가 아쉽지만 일정한 성과를 거뒀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파업이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비정규직법·미디어법 개악 등에 맞서 언론노조와 민주노총 투쟁이 예정돼 있고, 금속노조 파업도 예정돼 있다.
물론, 이것이 당장 전면적인 계급 간 충돌로 치달을지 장담하기는 이르다. 아직 핵심 산업부위의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 공격이 시작되지 않았다. 현대차 같은 금속의 핵심 대오나 철도·지하철·발전 같은 공공부문의 주요 부위에서 본격적인 격돌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철도노조는 준법투쟁을 시작했고, 충남건설기계노조는 충남건설기계노조 산하 당진지회의 투쟁을 옹호하며 연대파업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기아차노조의 파업 돌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부산지하철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등이 예정돼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되고 반복적으로 악화될 수 있는 경제 위기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간, 노정 간 충돌은 향후 투쟁의 예고편일 수 있다.
현 산업투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는 이명박 정부의 위기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와 민주적 권리 탄압에 따른 대중의 분노가 결합해 이명박이 최대 정치 위기에 직면한 현 상황은, 산업투쟁이 정치 정세의 격동과 맞물리는 양상이다. 물론, 아직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충분한 상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몇몇 분야 노동자 투쟁이 반이명박 투쟁과 역동적인 정치 정세에 결합되면서 상당한 상승 효과를 낼 수 있고, 이것이 전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자극하게 될 수도 있다.
설령 이번 여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상당 기간 산업현장에 긴장이 드리워지게 될 것이다. 휴지기를 거치더라도 반복적으로 투쟁이 벌어지다가 조직 노동자 핵심 부위의 투쟁으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길게 보면 지금의 투쟁은 그 서막이 될 것이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와 노동자들의 저항
정부의 재정 투입 확대 등으로 신용경색이 완화되면서 주가가 일시적으로 반등하자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주장이 난무했지만 실물경제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황이 계속되고 있고, 국내 실물경기 침체도 지속되고 있다. 막대한 재정 투입 효과에 따른 지표상의 변화 이면에는 수출·내수·설비투자의 고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5월 “노동 유연성 해결이 올해의 최우선 과제”라며 구조조정의 총대를 매고 나선 이명박은 “공기업 선진화”, 노동시장 유연화, 민간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법·최저임금법 개악 시도, 복수노조 전임자 관련 노조법 개악,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한 상시적 해고 자유화 시도 등 제도적 개악도 추진하고 있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은 최하층 노동자들의 조건을 직접 공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악랄하다. 이 조처들은 중소자본가들의 임금비용 절감 효과를 내는 것들이다. 재벌 대기업들은 비용 외부화 조치 등을 통해 먹이사슬의 하위에 위치한 중소기업에 경제 위기의 부담을 전가하기 마련인데, 중소자본가들은 최종적으로 최하층 노동자들에게 그 고통을 떠넘기려 한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 삭감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 회피는 총자본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다.
정부와 기업주들의 고통 전가 정책 때문에 노동자들의 처지는 갈수록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2009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가 작년 동기 대비 3만 9천 명이 감소했고, 실업자는 18.9퍼센트 증가했다. 임금 격차는 이미 2008년 8월 현재 5.14배로 OECD국가 중 최악인데,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금까지 계속된 조업 단축으로 적게는 30~40만 원에서 많게는 70~80만 원까지 실질임금이 감소되고 있다.
이처럼 사태가 악화되고 있음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이 즉각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노동자들이 일순간 움츠러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핵심 조직 노동자 부문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중반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쌍용차는 2천6백46명을 해고하려 하고 위니아만도는 1천 명에 달하는 감원을 하겠다고 했다. 철도공사는 5천1백15명 감원 계획을 결정했다. 발전 1천5백70명, 가스공사 3백5명 등 공공부문과 공무원 감축도 가시화하고 있고, 민간기업 구조조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저항도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최근 구조조정 문제, 비정규직 법안 개악과 특수고용직 문제 등을 쟁점으로 쌍용차ㆍ건설노조ㆍ화물연대 등이 투쟁에 나선 것은 그 전조다. 실제로 2009년 5월 24일 현재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8.6퍼센트 증가했다. 6월과 7월의 통계 수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신규인력 채용을 요구하며 부산지하철노조가 파업을 결의했고, 기아차노조와 부품사 노조들을 중심으로 금속노조도 파업을 준비 중이다. 철도노조도 대규모 감원 계획에 맞서 준법 투쟁을 시작했고, 그밖에도 보건의료노조 등이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 시작되는 국면에서 먼저 벌어진 쌍용자동차 파업은 세력관계의 시험대로 여겨지고 있다. 법정관리인 이유일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쌍용차 구조조정이 실패하면 다른 곳의 구조조정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초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쌍용차 투쟁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강경한 점거파업 덕분에 대량해고 정책이 비난의 대상이 됐고, 전체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자신감을 주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 쌍용차 파업이 승리한다면 경제 위기 시기에도 싸워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체 운동진영에 똑똑히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를 위한 정부의 공격은 노동조합 자체를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노동자의 임금과 직장 유지율이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 그 이유를 말해 준다. 금속노조의 최근 성장 추세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2년 동안 4천5백 명의 조합원이 늘어났고(현재 16만 3천여 명), 올 들어 16개 노조가 금속노조에 새로 가입했다. 사측은 경영권의 배타적 보호와 해고 제한 완화 및 비정규직 채용 등을 위해 노조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노조 탄압과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가 확산되고 있는데, 전교조는 5월 말 현재 총 16개 지부 중 12개 지부가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공공기관 작업장 노조들과 금속노조의 일부 중소 작업장들에서도 이런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의 효과를 과장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의 저항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노조 자체에 대한 탄압은 노조 지도부의 선택의 폭을 좁히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지도부 자신이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을 더 많이 받기도 한다.
경제 위기가 낳은 불안감과 이명박의 탄압이 겹쳐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아직 그리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력은 그런대로 유지돼 왔다. 금속노조의 임단협 파업이 계속 됐고, 현대·기아차노조도 임금인상 투쟁에서 밀리지는 않았다. 물론 정치 투쟁 영역에서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한 부문주의적이고 다소 보수적인 약점은 극복돼야 하지만, 일자리가 전면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에서 보수성에 기초한 투쟁이 정부와 기업주를 쩔쩔매게 만들 수도 있다. 노동부가 올해 “전략 작업장의 노사관계”와 “생산시설 점거와 정치파업”을 걱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완성차 노조 가운데 상대적으로 투쟁 경험이 적고 활동가 층이 얇은 것으로 알려진 쌍용차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선봉장이 된 것도 이런 점을 보여준다. 경제 불황에 따른 위축감도 있지만 그 위기감이 투쟁의 밑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활동가들의 과제: 반이명박 투쟁과 경제 투쟁의 결합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따른 누적된 불만 외에도 이명박 정부의 정치 위기 심화가 현 시기 노동자 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가 노동자들이 반격할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시기 노동조합 투쟁의 패턴을 보면 정치 투쟁과 조응하면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6월 항쟁과 연이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다. 이명박 정부 1년 반 동안의 노사 관계도 정치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왔다. 작년 상황을 돌아보면 정부의 공격은 촛불항쟁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 촛불항쟁 이전만 해도 이명박은 5월 말까지 ‘법치주의 노사 관계’를 확립하겠다며 공격적인 정책을 쏟아냈다(당시 청와대 비서관 곽승준은 “귀족노조의 정치 파업을 막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나 촛불항쟁 때문에 불리한 정치 환경에 놓이자 이명박 정부는 한동안 공격을 강행하기 어려웠다. 보수 우파의 기대를 모았던 공기업 민영화도 촛불항쟁과 금융 위기 심화로 축소·지연됐다. 이명박 취임 직후 마포대교에서 농성 중인 GM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자비하게 침탈당한 것과 대조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었던 이랜드·코스콤·KTX여승무원·미포조선 노동자들은 모두 지난 연말연초에 대체로 승리했다.
이명박은 촛불이 잦아든 후에야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7월 말부터 재계는 비정규직 계약 기간 연장을 요구했고, 8월에는 최저임금법 개악과 아예 노동법 자체를 뜯어고쳐 해고를 자유롭게 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측의 재반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의 시도가 일사천리로 관철될 수는 없었다. 작년 하반기 국회에서 처리하려던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는 공무원과 교사 수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반대 집회 후 처리되지 못한 채 논의가 시들해졌다. 연말에는 언론노조의 파업으로 언론 악법을 비롯한 ‘MB악법’이 한 차례 저지됐다. 1월 말 철거민 살해 항의 ‘용산 투쟁’도 정부를 압박했다. 이 때문에 구정 직후만 해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한다던 비정규직·최저임금법 개악안 처리가 또다시 미뤄졌다. 2월 말 MBC노조는 언론 악법 강행 처리 시도에 맞서 또다시 파업을 시작했고, 연말에 비해 언론노조의 파업은 더 확산되는 양상이었다. 2월 28일에는 공공·금속 노동자를 중심으로 3만 명의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도심 시위를 벌였다. 이에 힘입어 언론 악법은 또다시 6월 국회로 미뤄졌다.
4월 한나라당의 재보선 참패 이후, 더 이상의 공전은 통치 기반을 뒤흔들 수 있다고 여긴 이명박 정부가 또다시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각종 민주적 권리 탄압도 이런 맥락이었다. 실제로 작년 1년 동안 경찰청이 금지한 집회는 1백46건이었는데,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금지 통보한 집회는 벌써 1백64건에 달한다. 그러나 ‘노무현 추모정국’ 이후 6·10대회를 거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반이명박 정서 확산은 정부를 최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명박은 위기가 심화할수록 총력전으로 발버둥치는 양상이다. 섣부른 양보는 자기 계급으로부터 불신임을 초래할 것이 뻔하므로 더더욱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반이명박 정치 투쟁은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작년 화물연대 파업 승리 사례와 함께 이번 쌍용차 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 여론은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의 상승작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점거 파업 중인 한 노동자는 회사 임원이 “노무현 사망 전까지는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봤는데 지금은 어렵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줬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쌍용차 문제에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의견이 40.1퍼센트, 정리해고 등 인력 감축 반대가 63.1퍼센트, 공기업화 찬성 의견이 45.3퍼센트, 경찰병력 투입 반대가 79.0퍼센트로 나타났다. 노동자 투쟁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운동이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고, 이를 자신의 투쟁과 결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 계획을 논의 중인 민주노총의 임성규 위원장은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현 상황을 요약했다. “‘민주’를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생존’까지 내놓아야 할 지경이 됐습니다. 쌍용차를 비롯한 산업현장에서는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고, 정부가 앞장서서 인력을 감축하고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반노동 정책’에 편승한 노조 불인정, 단체협약 해지, 교섭 거부 등 부당노동행위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매우 정치적인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에 맞선 싸움으로 가고 있다. 정세가 이명박 한 사람을 향한 지지와 반대가 격돌하는 상황이다. 박종태 열사 투쟁과 쌍용차 투쟁,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등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현 정세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맞서 사회적·정치적 분위기를 획기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금 기회에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을 펼쳐 최소한 1퍼센트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전면 철회시키고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임성규 위원장의 지적대로 조직 노동자 운동은 반이명박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비정규직법·최저임금법·노동법·집시법·국정원법 개악은 물론 제반 민주적 권리 탄압에 맞서 앞장서 투쟁해야 한다. 작년에 촛불운동과 노동자 투쟁이 제대로 결합하지 못해 기회를 놓쳤던 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정치 투쟁과 결합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정부와 보수언론이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그토록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이 결합돼야 한다. 이런 투쟁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등한시한다는 보수언론의 이간질에 맞서 조직 노동운동의 ‘계급 대표성’을 높이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을 결합해 정부를 효과적으로 압박한다면 임금과 일자리를 기업주와 국가가 책임지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임금삭감 없고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 같은 요구들(행동강령)을 내걸고 싸워야 한다. 기업이 부도나면 파산한 기업주를 대신해 국가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급여 지급 대상과 금액도 늘려야 한다.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불황기일수록 이런 요구(행동강령)를 내건 투쟁이 중요하다. 미국과 유럽 국가 일부가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했던 것도 1930년대 공황기였다. 최저임금 설정,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한 복지체계의 기초가 이 시기에 도입된 사실은 지배계급조차 첨예한 위기를 완충할 필요를 느낀다는 점과 함께 그런 투쟁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 준다.
현장 활동가들은 당면 투쟁의 승리를 위해 적절한 전술을 제안하고, 운동이 전진하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적 노동조합운동 건설에 복무해야 한다. 초점이 되는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부문과 업종을 넘어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을 위하여
민주노총 임성규 지도부는 최근 ‘노동운동 위기론’의 대안으로 ‘사회연대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연대전략이 제시한 가치는 모두 지지할 만하다. “계급대표성 확보를 위해 미조직·비정규·이주·여성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투쟁과 조직화에 집중적인 역량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취약계층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투쟁을 지원하고, 제도 개선 투쟁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산업별 임금 격차 해소, 최저임금 현실화를 통한 임금 격차 해소도 제기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안정된 일자리를 위해 구조조정·정리해고 등 인력 감축을 막아내는 고용안정특별법을 제정하고 전 국민 실업안전망도 구축하겠다고 한다.
이런 과제를 쟁취하기 위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앞장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와 ‘인내’를 바탕으로 해서는 이런 요구를 쟁취할 수 없다. 정규직의 양보 “결단”이 아니라 강력한 투쟁을 조직해서 기업주들에게 양보를 ‘결단’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런 투쟁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힘은 단지 전투성만이 아니라 정치를 결합함으로써 훨씬 강력해질 수 있다. 정치적 노동조합 운동은 일상적인 경제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물론 전체 노동자 계급의 단결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투쟁을 조직하고, 운동이 전진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노동조합 투쟁에 제대로 된 전략과 전술을 내놓으려면 사회주의 정치에 기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경제 위기 시기에는 이주노동자 공격을 앞세워 전체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시도가 흔히 있다. 이런 탄압은 결국 자국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 강화를 겨냥하기 때문에 국내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방어하며 함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계급은 민족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해야 함을 효과적으로 주장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은 당장의 경제 투쟁에 정치 투쟁을 결합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이루고 착취와 억압을 끝내기 위해서는 작업장에 국한된 투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자각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이라크 전쟁 반대, 제국주의적 억압 반대, 여성 해방, 이주노동자 방어, 민주적 권리 옹호를 위한 투쟁에서 얻은 활력은 경제 투쟁의 확대에 직접적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정치적 시야를 넓혀 주고 사회적 영향력을 증대시켜 줄 것이다.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경제적 종속과 권리 제약, 각종 차별과 억압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임금과 일자리를 둘러싼 투쟁만이 아니라, 전국적·국제적 정치 문제들을 둘러싼 투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만 택한다면 둘 모두 제한적 투쟁에 머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깊은 위기에 처해 있는 오늘날, 전투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노동조합 현장 활동가들은 당면 투쟁의 승리를 위한 적절한 전술을 제안하고, 노동자 연대와 단결을 도모하는 활동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또한, 운동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정치적 물음에 나름으로 답하고 운동을 전진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적 노동조합운동 건설에 복무해야 한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