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 니코스 루도스 & 조셉 추나라
유럽 반자본주의 좌파 활동가들에게 듣는다
유럽의 재정 위기와 그리스 노동자 투쟁
《마르크스21》 편집팀은 각각 그리스와 영국의 반자본주의 좌파 활동가인 니코스 루도스와 조셉 추나라를 만나 유럽의 재정 위기, 그리스 노동자들의 저항, 그리스 좌파의 지형과 활동 등에 대해 들어 봤다. 2시간가량의 인터뷰에서 루도스와 추나라는 한국의 좌파 활동가들에게 아주 유익한 분석과 경험을 전해 줬다. 이들은 지난 7월 다함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다함께가 주최한 “맑시즘2010”에서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강연을 했다.
인터뷰 날짜: 7월 27일
조셉 추나라 Joseph Choonara
영국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팀원으로 일하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근 경제 위기의 성격을 분석하는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해설서인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책갈피, 2010) 등이 있다.
니코스 루도스 Nikos Loudos
그리스 반자본주의 주간지 〈노동자 연대〉의 기고가이자 격월간 저널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편집부에서 일한다. 그리스 노동자 투쟁과 몇 년 전 그리스를 뜨겁게 달군 대학생 점거 투쟁에서 핵심적 구실을 한 반자본주의 좌파단체 사회주의노동자당SEK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그리스에서 출판된 《그리스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위기》를 편저했다.
Q 한국에서는 경제가 2008년 위기에서 완전히 회복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2008년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는 지금 어떤 단계에 있습니까?
추나라: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이번 경제 위기에는 깊고 장기적인 원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의 근본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세계경제가 1970년대부터 이윤율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비록 노동자들을 더 세게 쥐어짜서 이윤율이 약간 회복되기는 했어도 1950~60년대 장기 호황 때의 이윤율에 견줄 만큼 회복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궤적을 규정했습니다.
이윤율이 회복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근본적으로는 마르크스가 ‘죽은 노동’이라고 부른 기계·원자재 등의 가격 폭락과 함께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과 경제에 대한 구조조정이 결합돼야 합니다. 즉, 1930년대와 제2차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위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국가들이 개입해서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들을 구제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그리 나선 이유는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파산하면 세계경제 전체가 엄청난 위기에 빠질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세계경제의 이윤율이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무른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경제가 계속 정체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중국 경제가 그렇듯이 특정 경제들은 어떤 시기에 상당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50~60년대 같은 장기 호황의 조건이 도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위기를 설명하려면 그 밖에도 오랜 이윤율 저하 시기에 나타난 다른 현상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의 급격한 성장입니다. 자본가들은 금융 투기, 신용 시장 등을 통해 단기적인 장부상의 이윤을 얻을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몇 차례 거품이었고, 그 밑바탕에는 체제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거대한 신용 거품이 있었습니다. 신용 거품은 노동자들의 소비 면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본가들은 우리에게 돈은 더 적게 쥐어주면서 소비는 더 많이 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가 직면하는 한 가지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는 한 가지 미봉책은 노동자들에게 점점 더 많은 빚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들에서는 가계 부채 수준이 전례 없이 높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세계경제를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어느 저작에서 금융이 자본주의로 하여금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온갖 사기 행각과 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썼습니다. 경기 상승 국면에서는 경제의 역동성을 증폭시키고 성장을 가속시키는 구실을 하지만 경제 위기 때는 문제를 더 악화·확산·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위기가 2007년 가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부채 거품이 유지되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채무자로 만들어야 했는데, 미국에서는 주택 모기지 대출을 받을 자격이 되는 사람들을 더는 찾을 수 없게 되자 모기지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대출자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기꺼이 대출해 줬습니다. 미국에서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대출받은 사람들이 빚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집을 더 높은 가격에 팔면 여전히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미국에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주택 가격이 정점에 도달했다가 약간 떨어졌을 때였습니다. 바로 그때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패닉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이번 위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주류 논평가들은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국한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가지 변수 때문에 그런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첫째 변수는, 현대 금융 시스템 내에서 서브프라임 부채가 재포장되고 증권화돼서 세계경제 곳곳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먼 나라의 은행들도 미국 주택시장 거품 붕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둘째 변수는 금융 부문의 호황이 실물 경제의 호황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금융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실물 경제의 문제점이 금세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금융 차원에 한정되는 금융 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경제를 지탱하던 바로 그 거품이 제거되자 기저의 취약성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태가 지금까지 흘러 왔습니다. 흔히 위기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현 단계는 ‘경기 대후퇴’가 ‘제2의 대불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각국 정부가 취한 행동의 결과입니다. 위기가 발생한 후 처음 몇 달 간의 산업 생산 그래프를 보면 1930년대의 패턴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로는 1930년대 대불황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세계 산업 생산이 바닥을 친 다음 약간 반등한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계 각국이 경제 개입을 강화하면서 국가가 핵심 경제 주체로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은 평화시에는 결코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과 국유화와 경기부양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가령 1930년대 초 미국의 뉴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국가 개입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가는 세계 체제를 이끌고 가는 핵심 주체가 됐습니다. 그 결과 제가 보기에 G20의 거의 모든 주요 경제가 이제 형식적으로는 침체에서 벗어났습니다. 즉, 이들 경제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것입니다. 성장이 이렇게 미약한 것은 전반적으로 위기가 매우 깊기 때문입니다.
현 단계에서 둘째 문제는 아직도 금융을 둘러싼 커다란 두려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은행 부문을 통해 그리스 재정 위기가 유럽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커다란 두려움이 여전히 있습니다.
셋째 문제는 모든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입니다. 즉,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을 유지하려고 계속 돈을 빌릴 것인가, 아니면 정부 부채가 더 늘지 않도록 막고 부채를 일부 상환하기 위해 긴축을 할 것인가? 그러나 두 선택 모두 상당히 나빠 보입니다. 지출을 계속하면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되면 채권 시장이 그 정부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에 베팅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 정부는 커다란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반대로 지출을 줄이는 것은 경제를 그나마 지탱해주고 있는 수요를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더욱이, 많은 나라에서는 정부 지출의 공백을 민간 부문이 채워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의 경제성장이 계속될지는 불투명합니다. 이 위기는 불균등하면서 결합된 위기인 듯합니다. 불균등한 것은 우선 유럽 각국 경제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위기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2008년에 독일은 세계 최대 수출국이었고 영국은 순수입국이었습니다. 어떤 나라는 저축률이 매우 높았지만 어떤 나라는 부채 비율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각국 경제의 성격이 다른 만큼 각국 자본가들이 생각하는 위기 해결책도 다릅니다. 그래서 각국 지배자들은 자국 자본에 유리한 해결책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엄청난 불균등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위기의 타이밍이 나라별로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영국은 아직 그리스와 비견할 만큼 큰 위기에 빠지진 않았지만 몇 년 안에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이처럼 불균등한 측면도 있지만 결합돼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첫째,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진 것은 독일 경제에도 커다란 문제가 되는데, 독일 경제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수출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럽의 은행 부문은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은행 부도 사태는 다른 나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로존 경제들이 모두 유로화를 사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유로존은 통화 동맹이긴 해도 재정 동맹은 아니며 정치 동맹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지배계급은 독일 지배계급과 많이 다른 통화정책을 추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럽 각국의 여건이 서로 크게 다른데도 유럽 전체에 동일한 통화정책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각 주마다 상황이 다르긴 해도 연방정부가 단일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쓰며 단일한 정치 단위를 이루고 있는데, 유럽은 미국과 한참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또한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럽의 핵심 경제 대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특히 유럽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면에서 각국의 경제 위기는 서로 불균등한 동시에 결합돼 있습니다.
Q 왜 그리스가 유럽연합에서 가장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습니까? 언론들은 그리스가 국가 재정을 흥청망청 썼다거나 부패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리스 재정 위기의 원인을 설명해 주십시오.
루도스: 위기는 세계적입니다. 그리스는 명백히 세계 경제 위기 때문에 덩달아 위기에 빠졌습니다. 2008년까지만 해도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성장률이 높은 나라에 속했고 따라서 성공 사례로 여겨졌습니다. 만약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진다면 특히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리스에 그 많은 돈을 빌려준 것도 독일 은행들이었습니다. 즉, 지금 그리스에 부채 상환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전에는 그리스에 상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돈을 빌려줬던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 부채가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지난 2년이었습니다. 부채가 늘어난 첫째 요인은 그리스 은행과 자본가 들에게 제공된 거대한 경기부양책입니다. 그리스 부채 3천억 유로 가운데 6백억 유로는 은행과 자본가 들을 위한 경기부양책에 투입된 금액입니다. 6백억 중 2백80억 유로는 은행들에게 직접 지급됐고 나머지는 다른 부문의 자본가들에게 갔습니다. 그리스 부채가 급증한 둘째 요인은 그리스 국채에 대한 국제적 투기였습니다. 실제로, 지난 2년 사이에 그리스 국채 금리가 고공행진을 한 것은 그리스 경제에 뭔가 변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국제 투기꾼들이 세계적 위기가 어느 지점에서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바이가 거의 디폴트에 빠질 뻔한 뒤로 금리가 본격적으로 올랐습니다. [두바이 사태를 계기로] 경기부양책이 재정 위기와 국가 부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이자 유로존의 일부이며 유로존의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라는 것을 빼면 특별히 더 심각한 위기에 빠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복지를 문제 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리스의 복지는 유로존에서 가장 열악한 편입니다. 포르투갈과 엇비슷할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유럽인들 가운데 가장 장시간 일하고 임금은 가장 적게 받습니다. 물가는 유로존 내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연금 체계도 형편없습니다. 어이없게도, 그리스 농민들이 한 달에 받는 연금은 4백 유로[약 60만 원 ― M21]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복지가 너무 후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리스에서 정작 돈이 낭비되는 분야는 복지가 아니라 군비 지출입니다. 그리스의 1인당 군비 지출은 유로존에서 가장 높습니다. 따라서 그리스의 무기 구입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복지 지출을 문제 삼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부패로 말하자면, 그리스에서 근래 일어난 가장 큰 부패 스캔들의 당사자는 독일 기업들이었습니다. 독일 지멘스 사는 그리스의 통신 설비 등의 공급 계약을 따내고자 정치인들에게 [수익의] 5퍼센트를 건네려 했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도 지멘스가 연루된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올림픽 행사를 위한 보안 시스템을 전부 지멘스 제품으로 구입했는데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모든 장비가 박스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지멘스가 이 장비들을 그리스에 팔 수 있었던 것은 부패와 연줄 덕분이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문제가 되고 있는 독일 잠수함 수입 계약도 독일 기업의 부패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독일 기업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그리스 정부 관리들과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었는데 이제 조선소를 매각하고 잠수함들을 폐기 처분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잠수함을 구매한 그리스 정부가 잠수함의 하자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데 대한 응답으로 말입니다. 이처럼 부패 문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연합 최대의 수출 기업들도 연루돼 있는 문제입니다.
Q 유럽연합과 IMF는 그리스 위기의 해결책으로 긴축 정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처가 경제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긴축 정책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십니까?
루도스: 저는 먼저 긴축 정책이 IMF와 유럽연합의 정책일 뿐 아니라 그리스 정부의 정책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2010년 초에, 즉 IMF가 그리스에 개입하기 전에 이미 그리스 정부 자신이 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스 정부가 긴축을 도입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우리가 부채를 감당할 능력이 된다는 것을 국제 시장에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긴축 조처들을 실행하고 나면 금리가 다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부가 노동자들을 공격하려 할 때마다(2010년 초에 일부 공격을 가했습니다) 국채 금리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국제 시장이 그리스 정부가 부채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공격을 시도하느라 그리스 정부가 워낙 엉망인 지경에 빠져 디폴트 위험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2010년 초부터 5월까지는 IMF나 유럽연합의 도움 없이 그리스 정부가 이러한 공격들을 밀어붙였습니다. 사실, 그리스 지배계급은 이러한 공격들을 오래 전부터 시도해 왔습니다.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 자본가들의 오랜 소원인 임금 삭감, 연금 삭감, 사유화 확대, 복지 예산 축소, 노동조건 악화, 노동 유연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을 지금 정부가 강행하고 있습니다. 즉, 긴축은 그리스 정부의 계획이기도 한 것입니다.
유럽연합이 결국 IMF를 불러들인 것은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을 진정으로 우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협박이나 다름없는 프로그램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리스에 1천억 유로 이상을 빌려 주기는 하지만 그 1천억 유로를 작게 쪼개서 분할 대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IMF는 그리스 정부가 국영 전력회사를 부분 매각해야만 구제금융의 다음 번 지급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그들 자신의 계산으로도 부채를 줄이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부채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2012년에는 그리스 부채가 그리스 GDP의 150퍼센트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부채가 지금보다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즉, 그들 자신도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바람은 세계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때까지 어떻게든 그리스가 부채의 일부분이라도 갚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IMF가 그리스에 주는 돈은 그리스 경제에 들어갈 돈이 아니라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사실, 그 돈은 그리스의 디폴트 위험에서 유럽 은행들과 그리스 은행들을 보호하기 위한 돈입니다. IMF가 갑자기 다른 나라를 구제하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아닙니다. IMF가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의 제3세계 나라들에 어떤 짓을 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IMF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리스에 온 이유는 프랑스 은행들과 그 밖에 위기에 빠진 유럽 은행들을 간접적으로 돕기 위해서입니다.
긴축 정책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사실 다른 유럽 경제들이 침체에 빠지고 있었을 때 그리스 경제는 침체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경제들이 표면적으로는 마침내 침체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와중에 그리스는 더 깊은 침체에 빠지고 있습니다. 긴축 정책이 그리스를 더욱 깊은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는 점은 IMF 자신도 시인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 실업률이 20퍼센트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그러면 더 많은 공장들이 폐쇄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하루 만에 부가가치세를 갑절로 올렸습니다. 당연히 소비가 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 경제가 날개 없는 추락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긴축은 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정부는 언젠가 침체에서 벗어나게 될 때까지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릴 수 있는 거대한 눈속임 책략을 부리려 합니다. 또한 정부는 유로존에 남길 원하는 그리스에게는 긴축 정책이 일종의 내부적 통화 평가절하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는 독자적 화폐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다른 나라들처럼 자국 화폐를 평가절하할 수가 없습니다. 긴축 정책은 임금과 노동비용을 낮춤으로써 그리스 제품을 세계시장에서 더 싸게 팔리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정부 자신의 계산으로도 매우 오래 걸릴 것이고, 먼저 극도의 경기 침체와 그리스 경제 일부의 파괴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추나라: 니코스의 주장에 동의하며 몇 가지 덧붙이고자 합니다.
첫째, 채권 시장에 관한 얘기들이 많은데, 저들은 마치 채권 시장이 지진이나 해일같이 비인격적이고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힘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마치 현 사태가 완전히 자연재해인 양 말합니다. 우리는 채권 시장이 자본주의 시장이며 그리스 정부에 돈을 빌려 주는 자들이 자본주의적 행위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리스 정부가 디폴트해야 한다고 우리가 말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둘째, 그들이 ‘구제’를 얘기할 때, 우리는 누구를 구제하려는 것인지를 분명히 물어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구제는 그리스 노동자들이나 민중을 돕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 구제금융은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게 되면 일어날 도미노 효과에서 유럽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도입된 절박한 조처였습니다.
유럽 은행들은 그리스에 막대한 부실채권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유럽 은행들에는 엄청난 문제가 됩니다.
또, 채권 시장 [투기꾼들]이 디폴트 가능성[에 대한 베팅]으로 돈을 벌고 있는 지금 상황은 월스트리트 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의 상황과 흡사합니다. 그리스 구제금융이 발표되기 직전까지 다들 그리스가 무너지면 다음은 어디일까 하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를 베어스턴스에 비유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베어스턴스 구제에 나섰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모두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베어스턴스 다음으로 무너진 곳이 바로 리먼브러더스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유럽 각국이 두려워하던 바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 구제금융은 절박한 조처였고, 그리스를 구제해야 하느냐를 놓고 한바탕 논쟁도 벌어졌습니다. 독일 지배계급 내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가 디폴트 하도록 방치해야 한다고, 그리스의 위기에 대한 대가를 자신들이 대신 치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구제금융 자체도 유럽 지배계급 내에 또 하나의 균열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 점을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IMF를 끌어들일지를 둘러싸고도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컨대 프랑스 정부의 많은 인사들은 IMF를 불러들이는 것이 유럽연합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구제금융 패키지는 유럽 지배계급 내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그리스 구제금융 패키지는 IMF와 세계은행이 1980년대부터 제3세계 국가들에 강요해 온 구조조정 프로그램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한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의 실체를 보면, 해당국 민중에게 이로운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사유화가 확대되고, 일부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삭감됐습니다. 이것이 그리스 노동자들의 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화폐의 평가절하를 대신할 내부적 평가절하라는 니코스의 주장은 완전히 옳습니다. 이는 그리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유럽 은행 시스템을 구출하고자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려는 시도입니다.
Q 현재 긴축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고, 이것이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또, 지난해 그리스 사회당 정부가 집권해 노동자들의 기대가 있었을 텐데, 이것은 긴축에 맞선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루도스: 전면적인 공격입니다. 공격은 여러 차례에 걸친 파상공격이었습니다. 처음에 정부는 몇 가지 조처만으로도 국채 금리를 낮추고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2010년 초에 공격을 시작했을 때 정부가 한 일은 노동자들의 여름 보너스와 부활절 보너스를 삭감한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부활절 보너스를 전액 삭감하고 여름 보너스를 절반으로 줄인 조처는 그 자체로도 큰 공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음으로 한 일은 공공 부문 임금 삭감이었습니다. 모든 공공 부문 노동자들에게 차등임금인상제를 도입했는데, 그 결과 임금이 최고 20~30퍼센트까지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이는 임금에 대한 커다란 공격이었습니다. 동시에 연금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습니다. 임금이 낮아지면 연금도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IMF와 유럽 중앙은행이 개입하면서 공격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정부는 공공 부문 임금을 더욱 삭감했고, 이제는 민간 부문에서 향후 2년간 임금 인상을 전면 금지하려 합니다. 가령 단체협상을 통해 앞으로 1년 동안 1.5퍼센트 임금 인상을 합의한 곳들이 있는데, 정부는 이렇게 단체협상으로 결정된 소폭의 임금 인상조차 금지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정부가 그 다음으로 한 일은 연금 공격입니다. 정부는 모든 사람들의 연금을 똑같이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퇴직 연령도 높아졌습니다. 평균 60세인 퇴직 연령을 65세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입니다. 평균을 65세로 끌어올리려고 노동자들을 67세까지 일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정부는 사유화도 강행하고 있습니다. 정부 계획에서 중요한 공격 하나는 그리스 철도를 사유화하려는 것입니다. 정부는 전력회사 일부도 사유화하려 했고, 정부 소유 은행들도 일부 사유화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낸 최악의 조처 하나는 그리스 사용자들이 지켜야 할 절차를 더욱 더 간소화해 준 것입니다. 정부는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지할 때 해고 몇 주 전에 통지해야 한다는 의무 기간을 단축했을 뿐 아니라 퇴직금도 낮춰 줬습니다. 즉, 정부의 공격은 공공 부문뿐 아니라 이제는 민간 부문까지 겨냥하는 전면적 공격입니다.
사회당 정부가 처음에 보너스 삭감 공격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래, 보너스 깎이는 걸로 부채 위기가 해결될 수 있다면 참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정부는 보너스 삭감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정부 스스로 함정을 판 셈이었습니다. 정부가 말을 바꿔서 공격의 수위를 끝없이 더 높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부의 신뢰가 갑자기 실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질문하셨듯이, 집권당이 그리스 사회당PASOK이라는 점은 중요합니다. 사회당은 영국 노동당과 성격이 비슷하며, 노동조합들과 강한 연계가 있고 공무원 부문과 민간 부문의 양대 노총 지도부가 모두 사회당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대다수 그리스 노총에서 사회당 지지자들이 다수파입니다. 사회당은 “돈은 충분히 있다”는 등의 구호를 내걸어 당선했습니다. 총리 자신도 선거 전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급진적 구호를 사용했죠.
그러나 사회당의 집권이 중요한 것은 단지 그들이 내건 선거 구호 때문이 아니라, 지난해 10월 사회당에 투표한 사람들이 대부분 거대한 노동자 투쟁으로 전임 우파 정부를 물러나게 한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지배자들이 이미 여러 차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시도했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그들은 사회당 정부가 집권했던 1980년대 중반에 이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추진했던 장관이 1987년에 조금 케인스주의적인 장관으로 교체됐습니다.
그 다음 번의 가장 큰 공격은 우파 대처주의 정부가 집권한 1991년부터 진행됐어야 했습니다. 지배자들 처지에서는 말이죠. 그러나 우파 정부의 집권이 그리스에서 1970년대 이후 가장 큰 노동자 운동의 분출을 불러온 결과 정부는 제대로 공격을 해 보지도 못한 채 3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그때 촉발된 노동자 투쟁이 워낙 강력했던 탓에 1993년 집권한 사회당 정부는 전임 정부가 사유화했던 버스를 다시 국유화해야 했습니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그리스를 통치한 사회당 정부는 1990년대 말에 다시 신자유주의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1998년에는 다시 한 번 작업장에서 거대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분출했습니다. 사실, 이 운동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노조 지도자들이 통제하는 운동이 아닌 현장조합원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운동이었습니다. 기층 노동자들이 투쟁을 주도하고, 경찰과 충돌하며 사유화에 맞서 싸웠습니다. 투쟁의 정점은 2001년 사회당 정부가 연금 개악을 시도했을 때였습니다. 이를 시도했던 장관은 결국 사임했습니다. 그는 연금 개악에 실패한 것 때문에 TV에 나와서 거의 울 뻔했습니다. 바로 사회당 정부가 이렇게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려 했는데, 그런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2001년 이후로 2004년까지 사회당 정부는 이와 같은 공격을 다시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노조들의 힘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당이 더는 계속 통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4년 총선 결과 우파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다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에서 일련의 투쟁이 있었고 2006년과 2007년에는 정부의 대학 사유화 시도를 좌절시킨 거대한 학생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파 정부는 재선한 지 2년 만에 물러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재 사회당이 짊어진 유산입니다. 사회당에 투표한 사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대중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고, 이들은 우파 정부를 몰아내고 싶어 사회당에 투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파 정부도 물러났고 사회당 자신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정치적 물음을 제기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사회당 내에서도 당이 나아가야 할 정치적 방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 사태가 워낙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9개월 동안 사회당은 노동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지지자를 잃었습니다. 1차 긴축 패키지를 발표한 뒤 사회당은 이에 반발한 의원 세 명을 축출했습니다. 사회당 최고 지도부 내에도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정부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교통 부문을 사유화하기로 했지만, 교통 부문 책임 장관은 사유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관은 오랜 사회당 당원이고 전혀 좌파적이지 않은 우파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부가 교통 부문 사유화를 실제로 시도할 경우 당 내에서 온갖 불만들이 터져나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의 그리고 가장 컸던 총파업에서 벌어진 의미심장한 에피소드 하나는 사회당 휘하의 주요 노조 하나가 그 노조의 지도자가 회의에서 연설하려고 했을 때 그에게 반기를 든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사회당 사무총장 ― 그는 정부에 입각하지는 않았고 그냥 당 간부입니다 ― 이 사회당 휘하 노동조합들의 회의에서 연설하려 하자 참석자들이 그에게 의자와 책상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연설도 못하고 도망가야 했습니다.
즉, 우파 정부가 집권할 때보다 사회민주주의 정부 하에서는 갈등이 집권당 내부, 심지어 의원들과 내각까지 깊이 파고든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좌파와 반자본주의자들에게는 단지 선거 대안만이 아니라 진정한 대안을 이야기할 기회가 더 많아집니다.
Q 영국의 재정 위기 상황이 그리스 못지않다는 보도도 있는데요, 그렇습니까? 또, 신임 보수당 정부가 강력한 긴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까?
추나라: 먼저 재정 위기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영국에서 위기의 규모는 다른 많은 유럽 나라들과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우선, 부채 규모가 그리스나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PIGS]만큼 크지 않습니다. 부채의 구성도 다릅니다. 영국 부채는 만기가 꽤나 깁니다. 영국 은행은 부채를 연장하거나 갱신하기까지 아마도 10년이나 12년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 부채가 영국 경제에 끼치는 부담은 크지 않습니다. 또한 영국 경제는 [PIGS보다] 더 튼튼하고 유로존에 포함돼 있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영국 경제에는 유리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고유한 상황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컨대 일본의 부채는 GDP의 갑절입니다. 부채율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지만, 부채가 대부분 국내 저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리스만큼의 패닉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제가 보기에 영국 지배자들은 부채가 좀더 늘어나도록 방치할 여유가 있고, 그래서 다른 나라들만큼 긴축을 해야 할 압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영국 정부는 파격적인 긴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5월 총선으로 집권한 신임 보수당 정부는 전후 영국 역사상 유례없이 큰 긴축 조처들을 몇 가지 발표했습니다. 보수당은 사실상 소비에 물리는 세금인 부가가치세를 인상했습니다. 돈을 쓰거나 안 쓰는 것은 자유이므로 부가가치세는 문제가 안 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누구든 돈을 안 쓰고는 살 수 없습니다.
정부는 또 공공 부문 임금 상한을 정했습니다. 공공 부문 임금 인상률을 물가상승률 이하로 정했으니 사실상의 임금 삭감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10월에 공공 지출 삭감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공공 부문 지출을 평균 25퍼센트 삭감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항목의 지출은 삭감 대상에서 제외될 것임을 감안하면 어떤 부서에서는 지출이 40퍼센트, 심지어 저들의 말로는 50퍼센트 삭감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쩌면 삭감의 폭을 과장해서 사람들을 잔뜩 겁준 다음 실제로는 그것보다 약간 덜한 삭감안을 발표해서 이를 별 저항 없이 손쉽게 관철시키려는 속셈일 수도 있는데, 이들이 얼마나 과장하고 있는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 생각에 보수당 정부는 엄청난 긴축을 강행하려고 단단히 작심한 듯합니다. 이에 대해 몇 가지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첫째, 이 상황의 한 가지 측면은 보수당이 금융 위기를 빌미로 매우 우파적인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부분적 동기는 영국 자본주의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지만, 이에 대한 보수당 정부의 본능적 대응은 언제나 지배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적할 것은, 보수당의 긴축 정책은 그들 자신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아마도 영국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국 경제에서 그 정도의 수요를 제거하면 더블딥 가능성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Q 그리스 노동자들은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정부의 공격에 맞서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투쟁이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등을 얘기해 주십시오.
루도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난해 가을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현 정부는 아주 잠시 미사여구를 늘어놓다가 이내 본색을 드러내며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공격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2010년도 예산안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긴축 예산이 금리 인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긴축이 일시적 조처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부 정책에 동의하면서 정부에 반대하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주요 노조 지도자는 “우리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 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설사 우리가 반정부 파업을 벌이더라도 그것은 선거 구호 수준을 넘어서는 안 되고 투쟁도 국제 시장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치적 행동을 해야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거의 해마다 12월이면 총파업이 벌어지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때가 투쟁 시즌이고 노동조합들이 거의 항상 총파업을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으로 노조들이 총파업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노조 안에는 이렇다 할 전투성이 없고 노조 지도자들은 앞서 말했듯이 운동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 했기 때문에, 투쟁의 시작이 중요했습니다. 몇몇 노조, 특히 교사 노조가 12월 17일 파업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파업이 확대될 것처럼 보이자 공산당이 합세해 산하 노조들에 파업을 지시했습니다. 공산당이 통제하는 노조는 많지 않지만 ― 건설노조와 해운노조가 대표적입니다 ― 공산당과 그 산하 노조가 가세한 덕분에 운동이 정치적으로 강화됐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언론노조도 가세했습니다. 언론노조는 보수 정당이 통제하는 노조였는데도 투쟁에 동참한 것입니다. 언론인들이 직장에서 오랫동안 공격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맞물려서, 즉 아래로부터의 행동, 특히 교사들이 주도력을 발휘하고, 공산당이 운동에 가세하고, 언론노조 같은 강력한 노조가 동참하면서 사태가 커졌습니다.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테네 거리를 행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TV 뉴스도 방송되지 않았고 가판대에서 신문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총파업이 굳건하게 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노조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행동에 나설 뜻이 없더라도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 없이 뭔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공무원노조가 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공무원노조는 민간 부문 노조와 같은 날 파업에 돌입하곤 했습니다. 두 노조는 모두 사회당이 통제하고 있어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간 부문 노조가 다른 날짜에 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공무원노조 파업이 벌어지고 나서 1주일 뒤에 민간 부문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정부가 새로운 공격을 감행했고, 이 때문에 공무원노조는 민간 부문 노조가 파업하기로 한 날짜에 새로운 파업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는 파업을 분열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아래로부터의 주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주도력은 단지 정치적 주도력만이 아닙니다. 실질적 파업과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2010년 초에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전역의 몇몇 곳에서 점거가 벌어졌습니다. 재무부 노동자들의 굳건한 파업이 있었습니다. 그 파업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그 노동자들은 이 모든 공격의 책임자인 재무부 장관이 일하는 바로 그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파업으로 재무부 장관이 자신의 부서에서조차 완전히 고립돼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관세청 노동자들도 중요한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들도 재무부 소속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천 명에 불과했지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세청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천연가스와 석유가 수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유소 등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야 했고 훨씬 더 급진적인 행동 성향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도 공격받았습니다. 올림픽항공 노동자들은 전임 정부 때 해고됐는데, 사회당은 집권하면 복직시켜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노동자들은 중앙 부처 관공서 하나를 점거했습니다. 아테네 도심에 있는 그 관공서는 흔히 좌파들의 집회·시위 장소로 사용되는 오래된 대학교 바로 맞은 편에 있었습니다. 2주 동안 아테네 도심의 관공서가 점거당했고, 노동자들은 건물 밖에 서거나 의자에 앉아서 아테네의 주요 거리 하나를 막아버렸습니다. 시위 진압 경찰은 건물을 에워싼 채 진입하겠다고 위협했지만 거기서 겨우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좌파들이 조직한 파업 지지 시위와 행진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행동들이 결합돼 투쟁의 불길이 아테네 전역으로 막 번지려 했습니다.
주요 노조 지도자들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쟁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뒤 매달 벌어지게 될 총파업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들어 지금까지 민간 부문 노조와 공무원노조가 함께 조직한 총파업이 일곱 차례 벌어졌습니다. 공무원노조 파업이 두 차례 있었고 다른 몇몇 부문의 하루 파업도 있었습니다. 이 파업들의 양면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매달 하루 총파업이 벌어진 것은 매우 중요한 전진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은 투쟁이 더 고양되지 못하게 막는 구실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5월 5일 총파업은 지난 30년간의 노동운동에서 최고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거의 봉기에 가까운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물론 봉기는 아니었죠. 그것은 파업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낸 대규모 행진이었습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투쟁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수천 명은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가 건물 안으로 쳐들어가려 했습니다. 정부에 배반당했다고 느꼈고 현재 상황에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시위 진압 경찰과의 충돌 방식은 전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좌파나 일부 노조들이 경찰과 조직적으로 충돌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들이 의사당으로 쳐들어가려 하면서 경찰과 일대일로 육탄전을 벌였습니다. 우파 신문은 바로 그때 의사당 안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비상구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경찰이 시위대의 압력에 굴복해서 사람들이 의사당 안으로 쳐들어올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날 사람들의 자신감이 크게 고취됐습니다. 우리는 다수이고 정부는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날 아테네 도심의 한 은행에서 세 사람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시 우리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행진 대열이 그 은행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는 은행 안에서 사람들이 화염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 사람은 은행 정문이 잠겨 있었기 때문에 도와 달라고 창문 밖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은행 지점장은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안전한 곳에 직원들을 보호하려고 은행 문을 걸어 잠갔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조직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그 앞으로 행진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문을 부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결국 그 은행 노동자들은 사망했습니다.
그러자 정부의 야비하고 악랄한 선전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이런 시위 때문에 참사가 벌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노와 비통함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정부의 선전 공세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시위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5월 5일은 운동의 절정이었지만 결코 끝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처음부터 주장했듯이 하루 총파업만으로는 결코 정부의 공격을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하루 총파업 때문에 공격을 멈출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5월 5일 투쟁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부문에서 조직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줬습니다.
그 뒤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파업은 운수 사유화에 반대하는 운수노동자들의 파업이었습니다. 운수노조는 굳건한 파업 투쟁의 전통이 있는 강력한 노조입니다. 그들이 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하자 아테네에서는 버스도 안 다니고 전철도 안 다니고 아무것도 안 다녔습니다. 운수노동자들은 심지어 피켓라인을 조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버스가 단 한 대도 운행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노조 지도자들은 운수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한 지 사흘 만에 파업을 그럭저럭 중단시킬 수 있었습니다. 교통통신부 장관이 사유화를 그리 빨리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투쟁의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투쟁이 잠시 중단된 것일 뿐, 양쪽 모두 다시 싸움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7월까지 총파업이 몇 번 더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지금 “5월 5일 시위로 여러분의 뜻은 충분히 전달됐습니다” 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려 합니다. 심지어 총리조차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것을 보았고 그들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5월 5일 후에는 그만큼 중요한 투쟁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은 그들 자신에게도 덫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벌어지는 모든 투쟁을 그동안 투쟁의 최고 정점이었던 5월 5일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토록 높은 수준의 투쟁이 당연히 날마다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투쟁을 비교하는 것은 불장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조와 사람들에게 5월 5일 같은 투쟁을 재연하라고 호소하는 셈이고 그보다 더 나아가도록 분노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하루 총파업은 대체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몇 시위는 다른 시위만큼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비교해 보면, 운수노동자들이 굳건하게 파업을 벌일 때 시위는 그다지 대규모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교통이 마비돼] 아테네 전역에서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운수노조가 굳건한 파업을 벌이지 않고 몇 시간 파업을 벌였다면 시위 규모는 더 컸을 것입니다. 따라서 멀리서 시위 규모만 보고 운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운동의 전진에 도움이 된 정치적 단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 일부는 정부가 경제 위기를 이용하는 방식에서 비롯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정부는 공공 부문에서부터 보너스 삭감으로 공격을 시작하면서 다들 알다시피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많이 버는 고임금 노동자들이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그런 식으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그 단계에서 공격이 효과가 없자 그 뒤에 정부는 민간 부문 노동자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정부는 공공 부문 노동자들과 민간 부문 노동자들, 고임금 노동자들과 저임금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수 없었습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해서 노동자 투쟁에 동참시키는 활동을 주도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도움이 됐습니다. 첫째, 정부가 운동을 공격하는 데 이용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에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 정부는 국회에서 파시스트 정당과 사이가 매우 좋습니다. 파시스트 정당은 IMF가 요구한 조처들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심지어 주요 우파 정당조차 반대했는데도 말입니다. 파시스트 정당이 IMF의 조처들에 찬성표를 던지자 정부는 운동에 대항하는 방안으로 인종차별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둘째, 노동계급 전체를 거리로 불러내기 위해서도 중요했습니다. 즉, 고임금 노동자들부터 정말로 가난한 이주노동자들까지 노동계급이 모두 거리에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도 중요했던 것입니다.
Q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노동자들이 위축될 수도 있고, 국가 경제부터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압력도 컸을 텐데, 그리스 노동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큰 저항 운동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까?
루도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노동계급 자신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는 항상 사유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시행하라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질문하신 것 같은 주장을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런 주장들이 일부 사람들에게 먹히기도 했죠.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경제를 살리려면 평범한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너무 오랫동안 지겹게 들었습니다. 그리스 노동계급은 유로 가입을 위해 대가를 치렀습니다. 정부는 그리스의 재정적자 수준을 유로존 수준으로 맞추려 하면서, 그러는 것이 그리스를 위해 좋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받아들여, 그러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을 위해서도 대가를 치렀습니다. 정부가 말하기를 그것이 그리스에 좋은 일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심지어 이번 경제 위기 초기에도 일부 사람들은 희생을 치를 각오가 돼 있었습니다. 그것이 경제를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정부는 진실을 호도한 채 국민의 다수는 정부 편이고 투쟁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뒤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첫째, 정부가 거짓말을 늘어놓았음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경제 위기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공격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끊임없이 평가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국민 다수에 대한 설득력을 상실했는데, 이것은 아주 새로운 현상이었습니다.
둘째, 구체적인 투쟁 사례들은 노동계급을 조직해서 운동 속에 동참시키고 대안적 행동을 제시해서 우리 운동이 반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 사회주의자들에게 중요합니다. 운동은 불균등해서 특정 부문이 치고 나아가면서 나머지 부문들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수가 움직일 때까지 그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정치적 소수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일부를 조직해서 반격함으로써 투쟁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또, 이데올로기 논쟁도 있습니다. 경제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IMF의 조처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진정한 정치적 대안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투쟁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답하고자 우리는 부채 상환 중단이라는 반자본주의 강령을 제안했습니다.
Q 그리스 정부는 디폴트에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IMF 당시 한국에서는 디폴트가 국제적 고립을 낳는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온건파들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또, 디폴트 요구를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지지하는지,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등을 얘기해 주십시오.
루도스: 디폴트가 국제적 고립을 낳을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리스 국가 부채 문제는 단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심지어 프랑스와 독일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남유럽에서 국가 부도 사태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들 나라의 은행만이 곤경에 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돈을 빌려준 쪽도 돈을 빌린 쪽만큼 곤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 정부는 이미 부채의 일부를 디폴트했습니다. 그리스 은행들은 대략 1천2백50억 유로의 채권을 발행했지만 유럽연합에서 9백억 달러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습니다. 따라서 대략 20퍼센트의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헤어컷[증권회사의 순자산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하락한 증권의 장부가치를 현실화시키는 것 ― M21]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부분적 부채 탕감은 반자본주의자나 노동자 운동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현실 때문에 그리스 정부도 추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전면 디폴트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디폴트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된다는 주장이 틀렸음은 디폴트한 나라들이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아르헨티나는 디폴트를 했지만 2~3년 뒤부터 국제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국제 시장은 이윤 창출 가능성이 있으면 돈을 빌려 주는 자본가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나라 경제가 붕괴했거나 디폴트를 경험했으면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 줄 수 있죠.
디폴트는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반자본주의 강령을 가지고 정부보다 더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도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지만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디폴트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지 디폴트 구호만 외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노동자 투쟁 강령의 한 부분으로서 디폴트를 요구해야 합니다. 디폴트와 함께 은행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를 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는 ‘디폴트 이후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이 금융기관을 즉시 통제할 것이고 은행가에게 지급되는 돈을 민중의 당면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돈을 통제할 수 있다면 빈곤과 실업에 고통받는 사람을 줄이고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런 해결책은 국제적 해결책과 결합돼야 합니다. 그리스 위기를 일국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반자본주의자들은 앞의 요구를 더 넓은 남유럽 전체에 해당하는 요구들과 결합시키려 합니다. 국제적 과정을 통해서만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지배자들이 자기네 방식대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빈민과 노동자가 위기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 문제의 중요한 핵심은 그리스 정부가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고, 경제 위기가 만든 상황에 끌려다니고, 노동자를 공격하고 재정을 긴축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듯한 위기 탈출 방법이나 성장률을 높일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제가 앞서 말했듯이 사회당 정부의 행동은 지난해 총선 전에 그들이 내건 공약과 정반대입니다. 정부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죠.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믿을 만한 세력으로 여겨지고 반정부 세력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못 믿을 세력으로 여겨지는데 말이죠. 역할이 바뀐 것은 그만큼 그리스의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뜻입니다.
반정부 세력이 더 신뢰받는 집단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대안이 없어도 권리를 지키려고 싸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명확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채 상환 중단 같은 구체적 대안은 당장이라도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정부는 매주 10억 유로씩 은행가들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것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10억 유로면 1년이면 5백억 유로입니다. 그리스 정부의 1년 교육 예산이 70억 유로이고, 보건 예산이 60억 유로밖에 안 되는데 말입니다.
모순이 너무 뚜렷합니다. 부채 상환을 중단하면 그 돈을 더 유용한 곳에 쓸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 군비 문제도 있습니다. 군비는 그리스 정부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스 군대는 제국주의 전쟁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군함은 지중해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며, 소말리아에도 파견돼 있습니다. 그리스는 아프가니스탄과 코소보에도 점령군을 보냈습니다. 따라서 파병군을 철군하고 군비를 줄이자는 것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Q 그리스 좌파의 분포와 그들이 투쟁에서 하는 구실을 얘기해 주십시오.
루도스: 그리스의 좌파는 규모가 큽니다. 3대 세력이 있는데, 먼저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라는 유러코뮤니즘 정당이 있는데, 이 정당은 ‘시리자Syriza’라는 연합체의 중심 축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들 못지않게 광범한 반자본주의 좌파들이 있습니다. 가장 큰 반자본주의 좌파 연합체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주축으로 결성된 ‘안타르시아Antarsya’입니다. ‘안타르시아’는 ‘반란’이라는 뜻이죠.
현 그리스 좌파의 기원은 독재 정권이 무너졌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반자본주의 좌파는 바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학생 운동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에서 반자본주의 좌파는 결코 소규모 종파들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반자본주의 좌파는 운동 내의 주요 세력이었습니다.
이 점을 알아야 그리스의 한 가지 유별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유별난 상황이란 이런 것입니다. 즉, 그리스의 양대 좌파 정당인 시나스피스모스와 공산당이 각각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분열했는데,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와는 달리 둘 다 왼쪽으로의 분열이었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개혁주의자들을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반자본주의 좌파가 줄곧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컨대 1년에 한 번 있는 전국 학생회 선거에서 공산당은 15퍼센트, 반자본주의 좌파는 10퍼센트, 시나스피스모스는 6퍼센트를 득표합니다. 교사노조에서는 반자본주의 좌파 세력이 공산당과 시나스피스모스보다 큽니다. 병원노조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반자본주의 좌파는 정치적으로는 취약했습니다. 대개 그들은 선거에 나가지도 않았고, 나간다 해도 많은 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큰 정치 무대에서는 공산당의 존재감이 언제나 더 컸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난 몇 년 간의 운동을 거치면서 반자본주의 좌파들은 좀더 정치화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다른 반자본주의 좌파 조직들과 연합체를 결성하는 데서 중추적 구실을 했습니다. 한 가지 결정적 계기는 2006~07년의 대학 점거 운동이었습니다. 1년 동안 이어진 이 운동은 지난 몇 년 동안 그리스에서 가장 크게 승리한 운동으로 평가됩니다. 대학 사유화를 막아냈기 때문이죠. 학생들의 점거를 이끌고 지지한 것은 바로 반자본주의 좌파였습니다. 반대로 공산당은 점거가 극단적인 투쟁 방식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시나스피스모스는 침묵하면서 학생들 대다수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관망했습니다. 결국 공산당과 시나스피스모스는 점거가 시작되고 2주가 지나서야 처음으로 반자본주의 좌파를 따라 점거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 다음 결정적 국면은 2008년 12월 경찰이 청소년을 총으로 쏴 죽인 직후 일어난 반란이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한 공산당의 대응은 그리스 정당들 가운데 최악이었습니다. 공산당 사무총장은 우파 총리의 공관 앞에서 총리와 함께 TV에 나와 “아나키스트들의 폭동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의 파시스트 정당 지도자가 공산당을 칭찬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스 좌파들의 구도를 보여 주는 또 하나 중요한 사례는 2008년 연금 개악 반대 운동입니다. 그때도 총파업이 벌어졌고, 정부가 노동부 장관 세 명을 교체해야 했을 만큼 그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총파업 이후 공산당은 노조 지도자들이 부패했으므로 더는 파업하지 말아야 하며 단지 선거에서 공산당에 투표하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나스피스모스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투쟁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이 제안한 것이 국민투표였는데, 당연하게도 국민투표는 결국 치러지지 않았고 파업은 중단됐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공산당과 시나스피스모스가 서로 닮은꼴이라는 것입니다. 둘 다 노동자 투쟁을 신뢰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을 단지 득표 수단으로만 여깁니다.
재정 위기를 둘러싼 운동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2008년 12월과 달리 이번에는 공산당이 시나스피스모스보다 약간 더 낫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노동조합 기반이 더 강력하기 때문에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도 더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집회를 따로 조직합니다. 노조들의 공동 집회에는 불참합니다. 시위대가 의회에 진입하려고 싸웠을 때 공산당은 아테네 시의 전혀 다른 장소에서 별도의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 지도부가 당원들에게 노조 집회에 가지 말고 당 집회에 참가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이 같은 방침은 공산당 자신에게도 이롭지 못합니다. 노조 소속 당원들을 동료들한테서 고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산당은 설령 파업을 지지하더라도 자신이 파업을 조직하지도 않고 실질적인 투쟁을 이끌지도, 다른 세력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도 못합니다.
시나스피스모스는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최근에는 당이 오른쪽으로 쪼개졌습니다. 의원 세 명이 신당을 만들었는데, 스스로 민주좌파당이라고 칭하는 이 당은 정부의 긴축 정책을 지지합니다. 이들은 국가를 지지해야 한다, 유럽연합 탈퇴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등의 주장에 압력받아 우경화했습니다. 그러나 시나스피스모스는 왼쪽으로의 분열을 앞두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그동안의 투쟁에서 반자본주의 좌파가 해 온 구실과 관련 있습니다. 주요 정당들이 파업 중단을 호소할 때마다 몇몇 부문에 포진해 있는 반자본주의 좌파 활동가들이 파업을 지속시킨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집권당인 그리스 사회당은 소속 의원 세 명이 IMF가 요구한 긴축 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이들을 제명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정부를 편드는 노조 지도자가 집회 현장에서 수많은 청중의 야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좌파들이 분열과 재편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이 과정에서 반자본주의 좌파가 구심점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성과는 다음 번 투쟁에서도 나타나겠지만 11월 초에 있을 지방선거 결과로도 나타날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빼먹었네요. 지난 한두 달 사이 좌파 진영 내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디폴트 요구, 즉 국가 부채를 갚지 말자는 요구를 둘러싼 논란입니다. 시나스피스모스는 그것이 과도한 요구라고 합니다. 부채를 갚지 말자는 것은 곧 유럽연합과 싸우자는 얘긴데, 그렇게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공산당은 디폴트 요구가 ‘개혁주의적’ 요구라고 말하면서 문제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렇듯 각 세력들이 어떤 논쟁에서든 서로 더 좌파적인 척하려고 애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공산당은 디폴트를 요구하는 것이 곧 정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조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맞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디폴트 요구가 노동자 운동의 단결을 위한 구체적 투쟁 목표이지, 정부가 알아서 디폴트할 것이라는 착각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또한,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실제로 우리가 부채를 갚지 않는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 방식입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자들 일부도 디폴트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디폴트에 더해 은행들을 국유화하고 노동자 통제 하에 두라는 요구까지 강령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요구는 개혁주의적 요구가 아닙니다. 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인 것입니다.
Q 반자본주의 연합체는 어떻게 구성돼 있습니까? 그 안에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조직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루도스: 공식적으로는 6개 단체가 안타르시아에 소속돼 있습니다. 가장 큰 두 조직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신좌파경향NAR입니다. NAR은 1989년 공산당에서 분열해 나온 조직입니다. 1989년에 공산당이 우파와 연립정부를 구성하자 당의 우경화에 반발한 청년 공산당원들이 주축이 돼서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NAR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불분명했습니다. 이들은 스탈린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좌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종 담론들을 갖고 장난칩니다. 예컨대 ‘전체주의적 자본주의’를 논하는 거죠. 또한 소련이 계급사회였다고 보지만 어떤 종류의 계급사회였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NAR은 노동계급 몇몇 부문의 훌륭한 활동가들과 학생 활동가들에게 영향력이 있었던 덕분에 강력한 조직으로 존속해 왔습니다.
더 작은 단체로는 1980년대에 시나스피스모스에서 분열해 나온 두 조직이 있습니다. 이 둘은 주로 학생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알튀세르와 풀란차스 등의 온건 마오주의 사상을 상당히 받아들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스탈린주의자들은 아닙니다. 주로 노동조합 쟁점에 관심이 있고 일반적 정치 쟁점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자율주의자들을 닮은 듯합니다. 안타르시아에는 제4인터내셔널 조직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아주 작은 조직입니다. 또, 공산당에서 떨어져 나온 아주 작은 조직도 하나 있습니다.
이 연합체의 결성을 주도한 것은 사회주의노동자당이었습니다. 안타르시아에 소속된 여러 단체 활동가들은 10년 전만 해도 서로 왕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강조했듯이, 우리를 하나로 결집시킨 것은 현실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연합체 안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언제나 종파주의와 자율주의, 이 두 경향에 맞서 투쟁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가운데 자율주의가 더 큰 위험이었습니다. 연합체에 소속된 많은 단체들은 대부분 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던 탓에 일반 정치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의 상황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노조에 연고가 더 많았고 정치가 우수했기 때문에 이 단체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6월)에 우리는 안타르시아에 회원제를 도입했습니다. 회원제로 운영되지 않았던 다른 단체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회원제를 도입한 목적은 지역사회와 작업장에서 좀더 실질적으로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단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별 작업장의 필요에 적응하는 데 급급했지, 일반 정치에 관한 토론을 따로 조직하면서 정치를 작업장으로 가지고 들어간다는 관점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바꿔 보려는 것이죠.
이 점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잡지가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좌파 간행물 가운데 유일하게 격월간으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우리 잡지는 이론지를 내지 못하는 다른 좌파 조직들이 좀더 조직적인 토론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 하반기에 교육 부문이 투쟁을 주도하고 학생들의 점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던데요, 지난 몇 년 동안 인상적인 투쟁을 벌여온 그리스 학생 운동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2006~07년 투쟁에서 정부의 대학 사유화에 맞서 어떻게 승리했는지도 얘기해 주십시오.
루도스: 학생 운동은 지난 몇 달 동안 벌어진 긴축 반대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부가 아직 교육 부문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전반적인 긴축 정책의 일환으로 교육 예산이 삭감됐지만, 아직 대학과 중고등학교의 사유화와 구조조정 등을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2000년 총파업과 긴축에 반대하는 현재 총파업을 비교해 보면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는 현재 총파업 지지 시위에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참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회는 공식 참가하지 않았지만 많은 학생회 활동가와 학생 들이 시위에 참가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벌어진 주요 노동자 시위의 앞 대열을 보면, 이게 노동자 시위인지 학생 시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것은 2006~07년 학생 투쟁이 남긴 유산 덕분입니다. 이 투쟁은 학생 운동을 급진화시켰을 뿐 아니라 점거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 운동과 학생 운동을 연결시켰습니다. 또, 이 투쟁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서 반자본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됐는데 그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학생들을 노동자 시위로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교육부 장관은 다가올 가을부터 교육을 공격의 초점으로 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먼저 공격할지 대학을 먼저 공격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 공격은 거리의 급진화를 학생회와 대학의 급진화로 연결시킬 것입니다. 아직은 연결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연결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2006~07년 학생 투쟁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큰 투쟁이었습니다. 이 투쟁은 신교육법에 반대해 시작됐습니다. 신교육법은 대학교에서 학생회의 구실을 약화시키고 대학 교육을 시장에 개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학생 점거 투쟁은 프랑스의 점거 투쟁이 승리한 뒤에 시작됐는데, 프랑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일단 한 걸음 물러섰고 신교육법을 통과시키지 않았습니다. 부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었죠.
그런데 정부는 사립 대학 건설을 허용하도록 헌법을 고치겠다고 선언하면서 판돈을 키웠습니다. 당시 우파 정부는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사회당이 이 계획을 지지했으니까요. 현 사회당 정부의 총리가 당시 국회에서 이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양대 정당이 찬성했으니 정부는 통과를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2006년 가을부터 새로운 점거 물결이 시작됐습니다. 이 점거 투쟁은 그리스 사회와 노동계급의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먼저, 학생 점거 투쟁은 노동자 투쟁에 영감을 줬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례는 몇 주 동안 초등학교 교사들이 파업을 벌인 것입니다. 그들은 승리하진 못했지만, 학생 투쟁의 영향으로 급진화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들은 학생 투쟁 방식 — ‘이길 때까지 전면 파업 투쟁을 벌인다’ — 을 본받으려 했습니다. 또, 학생 투쟁은 노조 지도자들에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사상 최초로 노조 지도자가 학생 점거 대표들과 면담했습니다.
그 다음에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생 투쟁을 지지하는 위원회들이 그리스 방방곡곡에서 구성됐습니다. 이 위원회들은 급진화한 노동자와 학생 들의 토론장이 됐습니다. 이런 위원회에 수천에서 수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사회당 당원들도 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파 정부는 엄청난 압력을 받았습니다. 학생회 소속 사회당 당원들은 개헌에 반대했고 사회당 청년·학생 부문과 당 지도부가 서로 대립하는 분열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나중에는 긴장이 너무 고조돼 사회당 지도부는 개헌 지지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개헌에 반대한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있던 바로 그날, 다른 법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국회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둘러댔습니다.
결국 당시 학생 투쟁은 반자본주의자들이 그리스에 소개한 프랑스 투쟁의 영향을 받은 소수 학생의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곧 다른 모든 정치 세력들이 이 투쟁에 참가하도록 만들었고, 노동자들에게 영감을 줘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이 투쟁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고, 이것이 사회당에 압력을 가해 당의 방침을 분열시켰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개헌은 국회의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정부의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우리는 점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소수가 이 운동이 지속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점거 투쟁이 1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이 운동을 후퇴시키려는 시도들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반자본주의자들이 ‘우리는 운동을 지속해야 하고 계속 싸울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운동은 승리할 때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Q 앞으로 그리스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까? 그리스 노동자 투쟁의 전망과 반자본주의 좌파의 과제에 대해 얘기해 주십시오.
루도스: 그리스 파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항공관제사들이 매우 중요한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파업으로 공항 운영이 엉망이 되면서 그리스 관광 산업이 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법원은 이 파업을 불법으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출근해서 일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모든 항공관제사들의 휴가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방금 전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지난 며칠 동안 트럭 소유주들이 그리스의 항구를 모두 봉쇄했습니다. 정부가 트럭 운수업을 시장에 개방하려 했고 지역별로 주유소 수를 제한하는 기존 조처를 해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한여름이지만 투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이라고 볼 수 없는 트럭 소유주들도 이 정도인데 노동계급과 빈민의 분노와 고통이 얼마나 클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가을이 되면 새로운 부문이 투쟁에 합세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사유화에 반대하는 철도와 전력 노동자들이 투쟁의 중심축이 될 것입니다. 사회당이 통제하는 대형 노조들도 사안별로 특정 조처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력·철도 노조를 통제하는 사회당 노조 활동가들은 상급 연맹 지도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왼쪽에 있습니다. 심지어 상급 노조 지도자들도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회당 좌파의 노조 지도자들은 사회당 우파의 노조 지도자들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대형 노조들이 자신의 투쟁을 초점으로 삼아 다른 부문의 투쟁들을 결집시킬 수 있느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철도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다면 하루 만에 결판이 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파업을 초점으로 활용해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내야 합니다. 5월 5일 하루 총파업은 수많은 노동자와 빈민 들이 그런 지지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 줬습니다.
사회변혁 운동가의 임무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르시아의 우리 동지들은 소속 노조에서 무기한 파업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철도·지방정부·교사 노조에서 무기한 파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주도할 부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 부문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도 매우 급진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사와 학생 들이 가을에 투쟁에 합류한다면 투쟁의 일반화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사회변혁 운동가들의 임무는 이 부문의 투쟁에 참가해 투쟁의 발전을 돕고, 일반화하고, 노동자들에게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