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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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명에는 역설이 있다.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본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지구 전체를 새로운 시대로 밀어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인류가 정작 상황을 실질적으로 바꿀 힘은 거의 없다는 것이고, 전례 없는 기술을 이용한 개입 정도만이 예외로 인정된다.

인류세 과학자들은 자연의 “거대한 힘”을 언급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 활동은 너무나 광범하고 깊어져서 자연의 거대한 힘과 경쟁하게 됐다.” 46 이는 인류가 자연의 나머지와 분리돼 그것에 맞선다는 자아 도취적인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세에 관한 일부 논의들을 포함해 현대의 환경주의 내에서 이처럼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개념은 특히 큰 문제다. 이런 개념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우리가 “자연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의” 파괴를 최소화하고 나머지 세계를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얘기다. 표준적 설명에는 인류의 영향이 지금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는 함의가 있다. 과학자들은 심지어 “이제 지구가 본래의 지질학적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47 하고 선언하기도 했는데 이는 홀로세가 뭔가 “본래의” 것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홀로세 자체는 지질학적으로는 매우 짧은 시기, 근본에서는 빙하기 사이의 간격을 뜻할 뿐이며 인류는 이미 이 시기에 외부 환경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고 있었음을 떠올려 보라.

우리가 자연의 힘을 압도하고 있다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도 자연의 힘의 일부다. 인간의 파괴성이 인류의 “자연적 본성”이라는 주장대로라면 인류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면서 동시에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되는 것이다. 48 이와는 대조적으로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은 자연 세계 속 인류의 구실에 관한 좀더 풍부하고 변증법적인 이해에 바탕한다.

인류세에 대한 [이러한] 지배적인 설명은 탈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여기서 탈정치적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투쟁을 기술-관리 상의 계획으로 대체하는 사회-정치적 처리 방식”이고, 이런 방식 하에서는 “정치적 주장과 논쟁, 방향 전환도 제한된다.” 49 달리 말해, 이런 설명 방식은 (좀더 일반적으로 기후 변화에 관한 일부 주장들과 마찬가지로) 환경 파괴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한다. 기후 변화는 인류 전체가 낳은 문제인 만큼 문제의 본질에 관한 이견은 제쳐두고 공동의 해법을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어떤 기술을 채택할지에 대한 매우 협소한 물음으로 정치적 논쟁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크뤼천이 기후 변화의 해법으로 첨단 지구공학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한 것은 놀랍지 않다. 그는 인류가 정치적 수단을 이용해 신속하게 기후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고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황을 대기 중에 살포해 [성층권에 미세먼지 층을 만들어] 기후를 냉각시키는 전략을 선호한다. 50 이 문제를 충분히 다루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51 그러나 이런 전략, 즉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문제에 관한 기술적 해법에 대한 한 가지 비판은 심지어 그런 다양한 기술적 시도 중 하나가 실제로 작동할지라도(그조차 보장할 수 없지만), 그런 해법은 기후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 증상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지구를 냉각시키는 것은 지구 온난화 외의 다른 다양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거의 확실히 그 자체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기후 과학자 케빈 앤더슨이 지적하듯 더 즉각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미래에 지구공학으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지금 당장 정치적 행동에 나서지 않을 핑계가 된다는 점이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마련한] 2015년 파리에서 열린 대부분의 유엔 회담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필요만큼 급진적으로 정하지 못했는데, 인류가 언젠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크뤼천이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지구공학은 “최후의 차선책”이 아니라 유일한 계획의 일부로 여겨지는 중일 수 있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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