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7호 2021년 1~2월호)

지난 호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세

커밀라 로일 177 37
380 10 8
9/13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말름은 증기 기관이 수차 같은 대안적 형태의 기술에 비해 비용이나 에너지 생산 능력 측면 모두에서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개별 공장주 입장에서는 석탄이 더 비싼 선택지였다. 그러나 석탄은 자본가들에게 다른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했다. 석탄은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했다. 석탄을 사용하면 수력을 사용할 때처럼 서로 다른 자본가들이 집단적으로 기반시설에 투자하지 않아도 됐다. 석탄은 하루 중 아무때나 사용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증기 동력 덕분에 산업 생산을 맨체스터 같은 도시로 들여올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도시는 갈수록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대량으로 공급했다. 57 말름은 소수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사회의 나머지 대다수는 임금 노동자로 내몰린 초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증기 동력이 “채택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진부한 지적이지만, 증기 기관은 인간 종의 자연스러운 대표들이 채택한 것이 아니다. 상품 생산에서 어떤 원동기를 쓸지 선택한 것이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능력이 발휘된 것이라 볼 수는 없는데 상품 생산은 애초 임금 노동 제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원동기[증기 기관]를 설치한 것은 생산수단 소유자들이었다. 58

이 주장의 핵심은 기후 변화가 정치적 문제이고, 계급투쟁의 결과로 석탄이 도입됐다는 것이다. 59 자본가들이 기후 변화를 이해하거나 예측하면서 벌인 일은 아니지만, 당시의 치열한 저항을 무릅쓰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화석연료 연소로의 전환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인류세는 의식적으로 야기된 일이다. 인류세는 인류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로서 벌어진 일이 결코 아니다.

말름의 전반적 주장에서 도출되는 또 다른 쟁점은 당연히도, 우리 모두가 인류의 일부로서 화석연료 연소에 똑같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 [화석연료] 체제로의 전환은 19세기에 인간 종 중에 특별한 부류의 인간들 – 부유한 영국 백인 남성 – 에 의해 벌어졌다. 오늘날에도 인류 전체가 탄소 배출에 똑같이 책임져야 한다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에너지 소비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유형에 크게 좌우된다. 캐나다인의 평균 에너지 소비는 [아프리카 사막 지대인] 사헬 지역의 전형적인 농부보다 1000배나 많다. 전체적으로 가장 가난한 인구 45퍼센트가 배출하는 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7퍼센트밖에 안 된다. 60

여기서 말름의 주장이 인류세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름이 비판하는 대상은 인류세에 대한 특정한 설명 방식이다. 61 하지만 그가 인류세라는 용어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점도 말해야 공평할 것이다.

말름의 주장에는 동의할 만한 내용이 많다. 기후 변화를 정치화하고 잘못을 저지른 주체가 인간 전체나 “인류”보다는 자본가들이라고 지목하려는 노력은 옳은 것이다. 환경 문제는 다시 한 번 계급투쟁의 장이 될 수 있다. 최근 ‘멸종 반란’ 같은 단체들이 성장하고 이례적인 세계적 ‘학교 파업’이 벌어지는 등 사람들이 대규모로 기후 행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 같은 급진적 구호가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모든 투쟁들 즉, 배출량 감축을 위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노동조합 등의 기후 일자리 투쟁, 자원 추출(셰일가스·오일 개발, 타르 샌드 추출, 금광 개발 등)이 지역 환경에 끼치는 영향 때문에 벌어지는 투쟁, 그리고 극단적 기상 이변의 충격 때문에 벌어지는 투쟁들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62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