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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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10대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 비판적 사회과학과 인본주의적 이상주의를 결합시켜 활동했다. 룩셈부르크는 기사·에세이·소책자·책 등을 쓰고, 대중 집회에서 유창하게 연설하고,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의 교육연수원과 독일·폴란드의 여러 도시들에서 열린 노동자 모임에서 강연했다.

룩셈부르크는 비숙명론적 태도로 기계적 유물론을 거부했다. 룩셈부르크는 “경제 발전은 역사의 선로 위에 있는 자율적 기관차처럼 거세게 돌진하고, 정치와 이데올로기 등은 버려진 수동 화물 마차처럼 그 뒤를 아장아장 걸어가는 데에 만족한다”는 생각을 비판했다.4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류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후 위기, 전쟁과 군국주의 위험의 증대, 파시즘의 부상, 경제 위기를 보면 ‘야만’은 현실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다양한 투쟁들이 그 야만에 도전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의 승리는 불가피하지 않다. 따라서 사회주의자의 임무는 이 운동의 일부가 되고 이 운동이 승리하도록 지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이런 승리에 필요한 효율적인 조직·전략·전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활동하며 – 가능할 때는 공공연하고 합법적으로, 필요할 때는 혁명적 지하 활동으로 – 자본주의에 도전하고자 했다. 이런 활동 때문에 룩셈부르크는 한 차례 구속됐다.

따라서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자발성주의’(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의 꽁무니를 좇기)라고 규정하는 것은 엄청난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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