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경제 위기 분석과 대안
현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적 해설을 위하여 *
이 글은 데이비드 맥낼리, 《글로벌 슬럼프: 위기와 저항의 경제학과 정치학》(Spectre, 2011)[국역: 《글로벌 슬럼프: 위기와 저항의 글로벌 정치경제 이야기》, 그린비, 2011]과 리오 파니치Leo Panich, 그레그 알보Greg Albo, 비베크 치버Vivik Chibber 편,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2011: 이 시대의 위기Socialist Register 2011: The Crisis This Time》(Merlin, 2011)을 비평한 글이다.
1 이 글에서 나는 주로 데이비드 맥낼리의 저서를 비평할 것이지만, 나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오늘날의 경제 위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하는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최신 호의 일부 논문도 인용하려 한다. 2
자본주의의 현재 위기를 다룬 마르크스주의 문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데이비드 맥낼리의 《글로벌 슬럼프》와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최신호가 천착한 주제도 바로 자본주의의 위기다.3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2008년 가을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전개된 대혼란을 생생하게 서술한다. 또한, 맥낼리는 시종일관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 편에 선다. 여기까지는 다 좋다. 그러나 《글로벌 슬럼프》의 이론적 핵심은 일관성 없고, 잘못된 주장들로 점철돼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도 허술하거나 때로는 명백히 틀린 것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맥낼리의 저서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물론 《글로벌 슬럼프》에 나름 장점이 많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단 이 책은 명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설명을 시도한다.4 여기에는 《먼슬리 리뷰》 전통의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매그도프가 포함되는데, 이들은 실제로 후기 자본주의를 침체 일변도의 체제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5 그러나 맥낼리는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로버트 브레너,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현 편집자 알렉스 캘리니코스, 전 편집자 크리스 하먼도 도매금으로 비판한다. 이들이 좀더 정교한 방식이긴 하지만 1982~2007년의 기간을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 위기(캘리니코스가 “장기적인 과잉 축적과 수익성의 위기”라고 부른)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6 그렇다면 맥낼리의 논지는 무엇이고 과연 현실에 부합하는가? 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맥낼리가 비판하는 대상은 “서방 자본주의가 1948년부터 1973년까지 25년간 대호황기를 거친 뒤, 위기 또는 침체에 빠져들어 그 이래로 거의 40년 동안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정치경제학자들”이다.(1) 1982년 이후 자본주의가 줄곧 허약했다는 관점은 틀렸다. 실제로는 이윤율이 회복했고 1982~2007년 특히 동아시아 경제들이 상당히 성장했다.
(2) 1950~60년대 장기 호황을 잣대로 현대 자본주의의 실적을 평가하는 것도 잘못이다. 장기 호황을 표준으로 삼으면 현대 자본주의는 당연히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3) 금융화에 관한 급진/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계의 설명은 뭔가 부족하다. 맥낼리는 자신이 제시하는 금융화 이론이 더 우월하고 독창적이라고 말한다.
7 뒤에서 나는 맥낼리의 주장을 하나하나 논박해 보려 한다.
이 모든 주장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필진을 비롯해 오늘날의 경제 위기를 분석한 다른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라 할 수 있다.‘신자유주의적 팽창’은 과연 얼마나 역동적이었는가?
8 그는 다음과 같이도 말한다. “물론 나는 자본주의가 1970년대 초반에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들[급진적 정치경제학자들 ─ 옮긴이]과 달리 1982년부터 지속적인 (신자유주의적) 회복이 시작됐다고 본다. … 1982년 이래 25년간 수익성의 추세는 분명히 상승 곡선을 그렸고, 자본주의 체제는 지속적인 경기 팽창 물결을 창출했다. 이를 통해서 세계경제는 규모 면에서 세 배가 됐다.” 9
맥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40년을 단절 없는 연속적 위기, 즉 ‘장기 침체’로 간주하는 다른 많은 급진적 이론가들의 견해와 내 주장이 다르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지난 25년의 신자유주의 기간이 세계경제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확장시킨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주기라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신자유주의 팽창기에 중국을 근거지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 자본 축적의 구심이 창출되면서 세계 노동계급의 규모가 극적으로 증가했다.”10 두 배 이상 성장했지만 맥낼리의 주장과 달리 세 배나 성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한 시기의 성격을 보여 주는 유익한 지표인가? 자본주의가 최악의 위기를 겪은 1930~40년에도 매디슨이 데이터를 구할 수 있던 주요 경제들의 성장률은 27퍼센트였다. 11 이는 1982~92년의 세계 경제성장률인 36퍼센트와 비교해도 그리 나쁘지 않다. 따라서 이런 성장률 수치들은 말해 주는 것이 별로 없다.
이와 관련해서, 고인이 된 앵거스 매디슨의 치밀한 장기 추세 연구 결과를 보면, 세계 GDP가 1982~2007년에 1백40퍼센트 증가(즉, 2007년 세계 GDP가 1982년의 2.4배가 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1982년부터 이윤율 추이가 상승 곡선을 그렸다는 맥낼리의 주장은 어떤가? 미국 금리가 급격히 치솟은 1979년 말의 ‘볼커 쇼크’ 이후 시기를 두고 맥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임금과 인플레율은 하향 궤도를 따라 움직였지만 이윤은 상향 궤적을 그렸다. 더그 헨우드가 지적했듯이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중앙은행이 주도한 계급 전쟁 덕분에 1982~97년 비금융 기업들의 이윤율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신자유주의적 팽창은 확실히 진척되고 있었다.”13 이를 보면, 1982~97년 미국의 이윤율은 6.5퍼센트에서 10.5퍼센트가 조금 안 되는 수치로 상승했다. 명백히 “두 배”에는 못 미치는 증가율이다. 그런데도 단 몇 줄 아래에서 맥낼리는 “더그 헨우드가 설명한 대로 1982~97년 미국의 이윤율이 두 배로 증가했다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재차 주장한다. 14
1982~97년 이윤율이 “두 배 이상” 상승했다는 주장에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첫째, 그것은 맥낼리의 데이터와 일치하는가? 둘째, 설령 그렇다 한들 그것이 맥낼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가? 첫째 질문에 답하기는 쉽다. 맥낼리는 1964~2001년 미국의 이윤율을 측정한 사이먼 모훈의 그래프를 제시한다.15 어떤 상상력으로도 이를 “두 배” 증가라고 우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특히 맥낼리가 “좌파 지식인들”이라고 비하하듯 부르는 진영에서 맥낼리의 주장이 “놀라울 정도로 논란의 대상”이라는 점은 사실 전혀 놀랍지 않다. 16
모훈의 그래프는 미국 경제의 “세전 평균 이윤율”을 보여 주는데, 그렇다면 막상 맥낼리가 같은 기간 중 두 배로 증가했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비금융권 이윤율은 어떤가? 다행히도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최신 호에서 안와르 셰이크가 바로 이에 관한 수치를 제시했다. 셰이크는 비금융권 이윤율이 1982년 9퍼센트에서 1997년 13퍼센트로 상승했음을 보여 준다.17 반대로 1997년은 그 뒤로 고점을 친 해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윤율은 경기순환 주기마다 등락을 거듭하는 경향이 있다. 장기적 경향을 보려면 한 주기 전체에 걸친 이윤율 추이를 보거나 최소한 고점은 고점과 비교하고 저점은 저점과 비교해야 한다. 맥낼리의 방식대로 하자면 나 또한 카이로의 여름 평균 기온을 한 해에는 섭씨 21도로 집계하고 그 다음 해에는 36도로 집계하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첫해에는 밤 기온(저점)만 측정하고 그 다음 해에는 낮 기온(고점)만 측정하면 그만이다! 당연히 그렇게 측정된 데이터는 한 해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말해 주는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맥낼리의 데이터가 정확하다 해도 세계경제의 실적을, 심지어 미국 경제 하나만의 실적을 이런 식으로 재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1982년은 이윤율이 바닥을 친 저점이었다.“1982년 이래 25년간”, 즉 1982~2007년에 “수익성의 추세는 분명히 상승곡선을 그렸”다는 맥낼리의 주장도 같은 이유에서 잘못됐다. 2007년은 이윤율이 고점을 친 해(셰이크에 따르면 2006년)의 바로 다음해다. 저점과 저점을 비교하면 1982년과 2008년을 비교해야 한다. 셰이크의 그래프를 보면, 이윤율은 1982년 약 9퍼센트에서 … 2008년 9퍼센트로 상승했다.
18 달리 말하면, 이윤율을 안정화시킨 주된 요인은 이 시기에 노동에 맞서 자본이 취한 공세와 그에 따른 착취율 강화라고 볼 만한 강력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19
여기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어떤 허구적인 이윤율 상승 추세가 아니라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이윤율 하락 추세가 왜 멈췄느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셰이크의 글은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셰이크는 “비금융 기업 부문의 생산성 대비 실질임금 수준이 전후 시대와 동일하게 유지”됐을 때를 가정한 “가설적” 이윤율을 제시한다. 1983년까지는 생산성이 증가하는 만큼 임금도 그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셰이크가 보여 주듯 1983년 이후에는 임금 상승 속도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만약 임금 수준이 예전 속도로 계속 올랐다면 이윤율은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중단 없이 하락했을 것이다.20 그렇다면 맥낼리의 말마따나 1982년 이후에 나타난 제한적인 이윤율 회복조차 “금융 조작이나 회계 부정을 기초로 광범하게 퍼진 가공 이익 현상을 고려한다면 … 주의 깊게 다뤄야 할 것이다.” 21
여기에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시행한 제한적 구조조정이 더해지면서 이윤율이 적어도 한동안은 1980년대 초의 저점보다는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윤율이 단지 부분적으로만 회복됐던 탓에 자본가들은 노동 착취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부문이 아닌 다른 경제 영역으로, 특히 단기적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금융 활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맥낼리도 “일정 정도 시기 동안은 수익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 불확실하고, 사람 눈을 쉽게 현혹시키고, 변동이 심”한 복잡한 금융상품들이 개발됐고, “환상과 사기와 무의미한 공식에 근거해 형성된 이 ‘자산들’의 가치는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다.세계적인 호황?
22 맥낼리는 세계경제를 진단할 때 GDP 같은 “국민경제 지표”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고도 강조한다. 23 그러나 그리 말해 놓고는 두 문단 뒤에 가서 “신자유주의적 팽창(1982~2007) 국면은 종합적으로 대호황의 절정기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역사의 다른 국면들에 견줘 매우 순조로운 시기였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세계 각 지역의 연평균 GDP 성장률이 시기별로 나열된 표를 제시한다. 24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처럼 자본주의 핵심부가 전혀 역동적이지 않았다면 체제 전체는 또 어땠을까? 맥낼리는 “세계경제 전체를 하나의 총체로 바라봐야” 한다며 핵심부에 속한 자본주의 국민경제들의 실적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려 한다.불행히도 이 수치들은 아무것도 입증해 주지 못한다. 맥낼리가 제시하는 1870년 직후의 수치들은 (맥낼리 자신도 그 이유를 언급했지만) 방법론적으로도 타당성이 의심스러울 뿐더러 당시에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신속한 자본주의적 축적이 이뤄질 수 있는 단계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의 데이터는 자본주의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던 압도 다수의 지역과 체제의 핵심부를 구분하지 않고 한 덩어리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런 점은 제쳐두더라도 1870~1913년 세계 GDP는 연평균 2.11퍼센트 성장한 것으로 나온다. 이에 견줘 1973~2001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3.05퍼센트다. 그런데 세계 인구성장률이 후자보다 전자의 시기에 현저하게 낮았음을 감안하면, 1인당 성장률은 1870~1913년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팽창”기에 더 낮았음을 알 수 있다. 1870~1913년에는 1930년대 이전만 해도 ‘대공황’이라 불린 시기(1873~96년)가 포함돼 있는데도 그렇다. 따라서 이 데이터를 근거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장률이 장기 호황기를 제외한 어떤 시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5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맥낼리는 이상한 지표를 사용한다. 예컨대, 그는 1980~2005년에 “이른바 수출 가중치가 부여된 세계 노동력 규모가 4배 증가했다”고 말한다. “수출 가중치가 부여된” 노동력 규모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한 나라의 노동력 규모를 해당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과 곱해서 얻어지는, “세계시장으로의 수출에 기반을 둔 노동계급 규모의 추정치”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 “노동자 계급은 1억 명에서 9억 명으로 무려 9배 증가”했다. 26 그러나 뒤에 가서는 고용된 노동계급(분명 이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지표다)을 기준으로 봤을 때, 노동계급 규모가 중국만 해도 1978년에 이미 1억 2천만 명이었고, 이것이 2003년에는 3억 5천만 명으로 늘었다고도 한다. 27 두 가지 지표 사이에 이처럼 큰 간극이 존재함을 감안할 때, IMF와 세계은행이 선호하는 수출 가중치가 부여된 지표가 정확히 무엇을 말해 주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지표를 사용하면 나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노동력이 1998~2008년에 세 배 성장했다는 등의 온갖 괴상한 통계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28
물론 근래에 자본주의가 여러모로 더 세계화됐다는 것은 사실이며 마르크스주의자들도 하나같이 이 점을 인정한다. 무역과 국제적 생산·투자가 모두 크게 증가했다.29 2002년 중국으로 유입된 FDI는 5백27억 달러로 프랑스(5백15억 달러)보다 조금 높았다. 30 그러나 이것은 2001~02년의 경기 침체 탓에 미국으로 유입된 FDI가 폭락한 결과였다. 2004년에는 대미 FDI가 9백59억 달러에 이르러 대중국 FDI(6백6억 달러)를 크게 앞질렀다. 31 2010년에는 중국이 1천60억 달러를 유치하는 동안 미국은 그 두 배 이상인 2천2백80억 달러를 유치하면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32 물론 중국 경제의 어마어마한 성장과 그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가 수행한 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맥낼리의 허술하고 선별적인 데이터는 그의 주장에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해외직접투자FDI에 관해서도 맥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02년 중국은 세계 최대의 해외직접투자 유치국이 됐다. 해외 자본의 규모는 1985년 10억 달러에서 2002년 5백억 달러로 증가했고, 이는 17년 만에 50배가량 증액된 셈이다.”33 그러나 중국의 부상조차 과장해서는 안 된다. 최근 《뉴 레프트 리뷰》에 실린 어느 글이 주장하듯이, “중국은 여전히 개도국이며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었다. 비록 중국 인구는 모든 선진국의 인구를 합친 것보다 거의 3억 명이나 많지만 중국의 산출량은 선진국 전체의 5분의 1도 안 되며 수출은 10분의 1 정도다.” 34 중국은 아직 갈 길이 멀었을 뿐 아니라, 중국 경제가 지난 10년 동안의 속도로 계속 성장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중국은 맥낼리도 인정하듯이, 여러모로 예외적인 사례다. 지구상에서 투자가 몰려 있는 곳은 여전히 북반구 핵심 경제들과 중국 일부 지역이다. 실제로 북반구의 제조업 쇠퇴는 거의 모두 중국의 부상 때문이라고 맥낼리는 주장한다.시기 바꾸기 신자유주의적 “팽창”에 관한 맥낼리의 분석에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25년 동안 수익성이 오르고 경제가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고 주장한 뒤에 맥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이런 팽창도 1997년 동아시아 위기 탓에 한풀 꺾이긴 했다. … 아시아 위기 이후, 그리고 미국의 닷컴 거품의 붕괴 이후에도, 대규모 신용 팽창은 경제성장률을 지속시키는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동시에 대규모 신용 팽창은 금융 부문에서 심각한 불안정성을 낳는 진원지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1982년 이후 모든 시기를 신용 창출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1997년 이후 일반적 위기의 유예는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36 맥낼리는 금융화를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훨씬 더 장기적인 과정으로 여긴다. 이 점은 나도 기꺼이 인정하겠다. 그러나 내가 맥낼리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주장은 여러 층위에서 이상하다. 이 주장의 더 오래된 버전을 두고 나는 맥낼리가 “금융화와 신용 주도의 성장이 시작된 시점을 1980년대 초에서 1997년으로 옮겼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맥낼리는 《글로벌 슬럼프》의 어느 후주에서 내가 그의 개념을 “마구 뒤섞어 버렸다”고 말한다.그의 시기 구분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 동아시아의 급속한 축적 활동이 주로 1981년에서 1997년 사이에 걸친 것인지 의문이 든다. … 중국의 성장률은 1997년 이후에도 매우 높았다. … 반면 동아시아 최대인 일본 경제는 1980년대에 꾸준히 성장했다가 1991년 이후 침체했다. … 맥낼리는 동아시아 자본 축적과 서구 경제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서구에서 이윤율이 증대한 것이 1997년 이전 시기에 동아시아에 대한 활발한 투자를 낳았다는 증거가 있는가? 적어도 1980년대에는 그런 연결 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동아시아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에는 특별한 변동이 없었고 다른 주요 OECD 국가에 대한 투자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 1997년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액수의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미국의 신용 팽창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의 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극단까지 치달았던 그 요인들은 1997년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미국에서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981년에서 1987년 사이에 처음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1997년 이후 또 한 번 급격히 증가하면서 2001년 이후 더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38 내가 보기에 이것은 맥낼리 자신이 세계 자본주의 팽창의 구심점으로 여기는 지역에서 이미 1997년 이전에 ‘신용 주도의’ 성장이 일어났음을 보여 주는 사례 같다. 여기에 1980년대 말 일본에서 부채 급증의 결과로 나타난 부동산 거품을 덧붙일 수도 있겠다. 휴고 래디스Hugo Radice는 《소셜리스트 레지스터》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 부동산 거품의 붕괴를 신자유주의 시대 “투기적 ‘거품’ 위기”의 최초 사례로 묘사하기도 했다. 39
맥낼리의 책에 나오는 새로운 내용은 내 의심을 한층 짙게 만든다. 예컨대, 그는 동아시아를 두고 다음과 같이 쓴다. “1990년대 초, 부동산과 주식 가격을 폭등시킨 투기적 투자 물결은 과열된 거품을 더욱 부풀렸다. 짧은 시간 안에 횡재가 발생하자 국제적 단기 금융자본, 즉 투기성 자본인 핫머니가 끊임없이 유입됐다.”황금기에 대한 집착? 맥낼리의 둘째 주장, 즉 우리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장기 호황에 집착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맥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때야말로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였고, 이 황금기가 막강한 문화적 상징이 되는 바람에 심지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그것을 당연시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 시각에서는 만약 자본주의가 대호황을 계속 반복하지 못하게 되면 곧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다고 선언하게 된다.”
41 그러나 세 쪽 뒤에 가서는 “1920년대의 과잉 투자 붐은 1927~28년 무렵, 실제로 자본의 이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42 올랐다는 것인지 떨어졌다는 것인지 다시 한 번 혼란스럽다.
이 문제의 시비를 가리기 위해 맥낼리 자신이 1945년 이전의 이윤율을 분석해서 1982년 이후 시기와 대조해 주기라도 한다면 좋으련만, 그는 그렇게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1930년대 대공황 직전의 이윤율에 대해서만 스치듯이 언급할 뿐이다. “1925년에서 1929년 사이에 미국 등 세계의 여러 나라 경제들은 확실히 호황기를 맞았다. … 이윤이 치솟았다. … 이윤이 급증하면서 기업들은 앞 다퉈 공장을 지어 댔고 신기술에 투자도 많이 했다. 이 모든 노력은 당연히도 나중에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것이었다.”43 은 장기 호황기에 견줘 훨씬 높이 치솟을 때도 많았지만 주기적으로 폭락하면서 경제가 급격히 수축되곤 했다. 1900~46년에는 평균 3.9년에 한 번씩, 평균 18.1개월에 걸쳐 경제가 수축했고, 그때마다 실질 GNP는 평균 6.7퍼센트 하락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47~2007년에는 평균 6.1년에 한 번씩, 평균 10.4개월에 걸쳐 GNP가 1.5퍼센트 하락했다. 44 달리 말하면 호황과 불황이 광란적으로 갈마들던 경기순환 패턴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적어도 한동안은 좀더 잔잔한 경기순환 패턴으로 바뀐 것이다. 성장률이 예전처럼 현란하게 치솟는 일은 없어졌지만 성장 국면이 훨씬 더 길고 안정적으로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는 더 크게 팽창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장기 호황이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례적인 호황이었음은 사실이다. 그것은 단기적 GDP 성장률이나 이윤율 면에서가 아니라 지속성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최근의 어느 연구 결과를 보면, 제2차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GNP 성장률45 전시 동원 체제가 끝난 뒤에도 국가의 지출과 경제 개입 수준은 대단히 높게 유지됐다.
다른 주요 경제에서도 덩달아 나타났던 이 같은 현상은 1920년대 말부터 시작해 제2차세계대전 중에 더욱 가속화된 자본주의의 어떤 근원적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크리스 하먼은 이를 “국가자본주의로 전환”이라고 묘사했다.46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렇게 되면 축적률이 높아져서 이윤율에도 압박이 가해지리라고 예상했을지 모른다. 47 그러나 전후 시기에 수익성 하락 속도가 늦춰졌는데, 그 이유는 엄청난 양의 가치가 축적이 아니라 낭비를 창출하는 데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영국 등이 무기 생산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은 것이 대표적이다. 바로 이것이 토니 클리프, 마이클 키드런, 크리스 하먼이 “상시군비경제”라고 부르게 된 체제다. 48
이 변화는 전후 시대의 전개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공황의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제2차세계대전의 효과로 1940년대 말에 이윤율이 급상승했다.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위기로 치닫는 경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문제가 곪아 터질 시점이 미뤄졌고 그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전후 시기에도 주요 경제의 이윤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했다. 다만 군비 지출 덕분에 이윤율 하락 속도가 다른 때보다 훨씬 느렸던 것이다. 잠재적 불안정 요소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장기 호황의 수혜국 가운데는 일본과 독일처럼 군비 지출이 낮은 나라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군비 부담을 짊어지지 않으면서도 일반화된 경기 팽창에 동참할 수 있었던 덕분에 같은 기간에 미국보다 더 빨리 성장했다.
호황기 동안 체제의 전통적인 핵심부 바깥의 지역들이 경제성장을 이룸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는 더욱 세계화됐다. 무역이 생산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다국적 생산망에 대한 자본주의의 의존성이 점점 더 커졌다. 국가자본주의적 축적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한 결과 1973~82년 일련의 위기가 닥쳐왔다. 위기를 거치면서 여러 나라들이 치열해지는 경쟁에 대처하며 어느 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래서 2001년 하먼은 미국 경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미국 지배계급은 일본이 미국의 경제적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을 수수방관할 태세가 아니었다. … 미국 주요 기업들은 유럽, 그리고 특히 일본의 도전에 맞서 1980년대 초부터 지속적인 합리화와 설비 교체로 응수했다. 미국의 거대 자동차 회사들이 도요타와 닛산 같은 도전자들에 맞서 미국 시장과 세계시장에 대한 지배권을 재확립하려는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 이와 더불어 투자를 가속화하는 전략이 추진됐다. … 미국의 무역 정책을 전 세계에 강요할 목적으로 고안된 자유시장주의·신자유주의 미사여구의 이면에는 국가의 개입, 즉 국가자본주의에 의존해 자국 자본의 힘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국가 개입 수준이 계속 높게 유지됐다는 점(그리고 낭비적 생산 영역 등에서도 이전 시대의 추세가 이어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192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진행된 자본주의의 변화가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역전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비록 자본주의가 이전보다 더 국제화됐고 낭비적 생산이 자본주의가 위기로 치닫는 경향을 더는 지연시키지 못하게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장기 호황 시대(국가자본주의를 지탱하기에 이윤율이 충분히 높았던)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침체와 역동성 사이에서
50 그러한 위기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여전히 침체로 치닫는 강력한 경향을 띠는 한편으로, 각국 지배자들이 경쟁적으로 자국 자본을 재조직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하려고 함에 따라 역동적 성장을 보이기도 했다. 즉, 침체와 역동성이 공존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의 경제 위기는 수익성을 장기 호황 시절의 수준으로 회복시키지 못했다. 20세기에는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자본 단위’들이 특히 장기 호황을 거치면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스스로 거대한 경제 행위 주체가 된 국가들은 경제 위기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체제의 큼직한 단위들이 무너져 내리는 사태를 그저 팔짱 끼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요국들은 자국 경제 구출과 구조조정에 나섰고, 여기에 더해 노동자 착취가 엄청나게 강화된 덕분에 이윤율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그러나 이윤율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칼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모든 노동이 일시 중단되고 자본이 대규모로 파괴됨으로써, 자살을 범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생산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상태로 [자본주의를] 난폭하게 되돌려 놓는” 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물론 자본주의가 만성적 침체기에 빠졌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중남미는 1980년대 내내, 일본(당시에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은 1990년대부터 침체에 빠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에는 소련(미국 경제의 3분의 1에서 절반 규모로 추정됐던)이 붕괴했고 그 후계국들은 1998년에 급격한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다. 남반구 곳곳에서 벌어진 경제적 참사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른바 ‘아시아의 호랑이’들은 1997년에 경제 위기를 겪었다. 심지어 미국도 1990년대 초와 2000년대 초에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1982년 이후 시기의 이윤율에 관한 진실과 침체 경향을 이해하는 것은 이 시기의 부침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현재 위기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날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금융화’라고 부르는 현상을 지금부터 살펴보려 한다.
금융화에 관한 독창적인 설명?
51 그러나 맥낼리는 더 나아가 자신이 “금융화 현상을 독창적으로 설명”해 보겠다고 공언한다. 52 그의 독창적인 설명이란 대략 다음과 같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1971년 이후로 세계 통화 체제가 역사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점이다. 1971년 당시 미국 정부는 달러와 금의 태환성, 즉 금본위제를 종식시키고 변동환율제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은행들은 파생금융상품 같은 희한한 금융상품들을 앞다퉈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파생금융상품들이 2008년 금융권 파산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53
맥낼리는 “지금의 위기가 금융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 부문이 후기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의미를 차지하게 됐다”고 본다는 점에서 우리와 견해를 같이한다.54 맥낼리는 이보다 더 일찍 형성된 “이른바 유로 달러 시장”도 금융화의 또 다른 구조적 토대로 지목한다. 55 유로 달러 시장이란 달러화 표시 자산이 거래되는, 미국의 법적 관할권 바깥에 있는 시장으로 1957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렇듯 금융화 과정에는 1971년이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했지만 그 밖에도 여러 계기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사실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도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래서 맥낼리는 “금융화의 구조적 토대”를 “1971~73년에 발생한 세계 화폐의 합법적 탈상품화”에서 찾는다.높은 수준의 국제적 자본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적으로 통합된 금융시장의 재부상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과정이었다. 전후 시대 초기의 조절된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본격적인 이탈이 시작된 것은 … 1960년대 초부터였다. 유로 달러 시장이 등장함에 따라 각국 통화가 발행국 바깥에서도 거래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점점 커지는 금융시장의 힘이 확연히 드러난 계기는 1950년대 말부터 이어진 파운드화 위기, 그리고 닉슨 정부로 하여금 1971년 8월에 금본위제를 폐기하게 만든 달러화의 환율 불안정성 증대였다.데이비드 하비도 “1970~2000년의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시대를 두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주로 미국의 후견을 받으며 새로운 체제가 등장했다. 화폐 가치의 물질적 기초로서 금이 포기됐고, 그때부터 세계는 탈물질화한 통화 체제에서 살아야 했다. 이미 유로 달러 시장을 통해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누비던 화폐 자본의 흐름은 … 국가의 통제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피터 고완은 다음과 같이 썼다. “1980년대 중반 이래 금융 및 기타 자산에 대한 프롭 트레이딩[고객 예치금이 아닌 자사 자금으로 금융 투자를 하는 것 ─ 옮긴이]은 투자은행뿐 아니라 다수의 상업은행들한테도 갈수록 중요한 활동이 됐다. 이런 전환은 우선 브레턴우즈 체제가 해체되면서 외환시장에 조성된 불안정성과 관련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국내적인 금융 자유화가 만들어 낸 기회들과 관련이 있었다.”
로버트 웨이드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세계경제의 이 같은 변천이 지닌 중요성은 마르크스주의와 급진 좌파 진영의 정치경제학자들이 거의 한결같이 인정하는 바다. 물론 금융화의 물꼬를 터 준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자체도 또 다른 원인에서 비롯한 결과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원인은 바로 군사적 지출이 적었던 독일과 일본이 미국을 앞지를 수 있게 해 준 상시군비경제 체제의 내재적 모순이었고, 이에 기인한 미국의 무역 적자 확대였다. 맥낼리도 이와 비슷한 결론을 도출하는 듯하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는 미국보다 급성장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막대한 군비 지출 탓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다.”1973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지자 이 모든 것[무역 적자 제한, 민간 자본 유출입 통제, 주요 경제 지표들의 안정성 등]이 변했다. …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무역 불균형을 억제해 주던 조절 장치들이 더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제 더는 수입 대금을 금으로 지불하거나 금으로 태환되는 달러화로 지불할 의무가 없어진 미국은 달러화나 국채를 무한정 발행해 대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미국의 적자는 불어났고, 전 세계에 유통되는 달러화 수량도 불어났다. 이제 GDP의 6퍼센트로 불어난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동전 뒷면에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확장이 있었다. 이 나라들의 외환보유고는 대부분 달러화와 달러화 표시 채권으로 구성돼 있었다.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증대는 신용이 급속도로 팽창하는 토대가 됐다. 전 세계에 유동성 자금이 급증했고 금융권의 오너들과 경영자들은 정부에 국제적 자본 유출입 규제를 철폐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미국과 영국을 위시한 OECD 주요 회원국 일부가 1970년대에 자본시장을 개방하자 다른 OECD 회원국들도 1980년대에 그 뒤를 따랐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개발도상국들도 이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그와 동시에 브레턴우즈 체제가 부과했던 금융 규제들이 철폐된 덕분에 사적 금융 조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여기에는 보험사, 연기금, 주식 브로커, 투자은행, 뮤추얼 펀드, 벤처 자본가, 헤지 펀드, 자산운용사 등이 포함됐다. … 이 엄청난 자금 덩어리들은 세계경제의 얼굴을 바꿔 놓았다.
61 그런데 이 날짜들을 유심히 보면, 어떤 금융 부문에서 진정 급격한 팽창이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이를 위한 “구조적 토대”가 마련되고 나서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외환시장 이외의 금융시장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가계 부채는 1980년대와 2000년대에 특히 빠르게 증가했고, ‘그림자 금융 시스템’은 1990년대 초 전통적 금융 시스템을 추월해 2007년까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했다. 62 맥낼리 자신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비록 주택융자를 증권화한 것은 이미 1970년대 이후이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금융상품으로 출시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라 할 수 있다. … 그러다가 이것이 진짜 고삐 풀린 듯 폭증한 것은 닷컴 거품이 터진 2000년부터다.” 63 이와 비슷하게 미국의 총 이윤에서 금융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5~94년과 2001~07년, 이 두 기간에 걸쳐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어서 맥낼리는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외환 투기가 어떻게 증가했는지를 보여 준다. “외환 관련 금융상품(파생상품)을 거래하는 … 장외시장의 규모는 1992년 1조 2천억 달러에서 15년 뒤에는 무려 4조 2천억 달러로 급성장했다.”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금융의 발달을 가능케 한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들을 줄곧 지목해 왔다. 맥낼리가 주목한 변동환율제의 도입 외에도 신기술에 의한 복잡한 은행 거래의 단순화,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과 더불어 국제적 자본 흐름의 유동성을 높여 주는 정교한 금융시장에 대한 필요성 증대, 금융 산업을 키우겠다는 지배자들의 의식적인 정치적 결단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들은 분명 금융시장의 성장을 가능케 해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도 금융시장이 실제로 왜 성장했고, 어째서 그렇게 빨리 성장했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자본이 금융시장으로 몰리도록 부추긴 근본적 요인은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의 취약성이었다. 즉, 자본주의가 1890년대나 1910년대와 비슷한 투자 수익률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 바로 직전 수십 년과 비슷한 투자 수익률을 실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본이 금융시장으로 몰린 것이다. 그런데 맥낼리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빼놓는다. 그런 탓에 그의 논의에는 금융화에 관한 흥미로운 서사와 “구조적 토대”만 있고 진정한 설명은 결여돼 있다.
위기와 저항
65 이 대목에서 맥낼리는 오늘날의 좌파 지식인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계급을 다종다양한 정체성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처럼 취급한다.
맥낼리는 경제 위기가 전 세계의 착취 당하고 천대 받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저항의 잠재력을 다루는 두 개 장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이 두 개의 장은 끔찍한 사례들과 더불어 희망을 주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막상 맥낼리가 내놓는 전략적 조언은 다소 실망스럽다. 그는 저항의 잠재력이 주로 가장 가난하고 천대 받는 이들에게 있다고 보는 듯하다. 예컨대, 그는 미국 노동운동을 논할 때 거의 이주노동자 이야기만 한다. 그러고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론 유색인종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 운동은 백인 노동자들까지 투쟁 속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계급 단결’만 부르짖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계급 단결이 현실에서는 노-노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인종·젠더·성·능력에 따른) 기존 현실의 사회적 위계질서들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 왔기 때문이다.” 때로 맥낼리의 논조는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WTO 반대 시위에서부터 2001년 제노바에서 열린 G8 반대 시위에 이르기까지 반자본주의 운동 초창기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반자본주의 운동의 언어는 운동 참여자들의 열정과 단결 의지를 잘 포착했지만 운동의 새로운 면에 대해서만 열광하다 보니 그 후의 사태 전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의회주의, 국가의 구실, 계급과 억압의 관계 등을 둘러싼 오래된 쟁점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맥낼리도 “인종적·성별적·계급적·도시적·농촌적 경험들을 총동원하면서 그 속에서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저항 형태들을 창조해 내는’ … 사회 투쟁들”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한편 급진 좌파들에게는 “여태껏 쌓아 올린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앞서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조직 역량을 한층 고양”하라는 등의 훈계를 한다. 그러나 정작 ‘글로벌 슬럼프’ 시대에 일어난 가장 강력한 저항의 형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2011년 초 이집트와 튀니지의 독재 정권들을 무너뜨린 운동이었다. 이 운동들은 당연히 나름 참신함이 있었지만 동시에 혁명의 고전적인 특징들도 모두 있었다. 물론 이집트 혁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노동자, 소상공인, 기능인, 가족들이 부양할 수도 없는 실업자들과 부분 실업자들, 지하 경제의 그늘에서 잡상인 일이나 기타 탈법적 수단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의 군중이었다. 그러나 앤 알렉산더가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보여 주듯이, 결국 무바라크를 퇴진시킨 결정적 변수는 산업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노동자들의 움직임이야말로 이집트 혁명이 현존 질서에 맞선 정치적 도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도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68 그러나 대중 투쟁은 결코 일정에 맞춰 도착하지 않는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미래의 대중 투쟁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강화하려면 당장은 소규모인 혁명적 사회주의자 그룹들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소수자 억압에 맞서 싸우는 것은 어떤 혁명적 운동에서도 필수적인 과제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억압 문제를 자본주의에 가장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세력과 연결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세력은 여전히 노동계급이다. 이 문제에서 파생되는 전략적 쟁점들은 공동의 활동과 정치적 토론을 통해 해결될 것이다. 혁명적 사회 변혁을 위해 헌신하고 20세기 역사에서 힘겹게 얻어진 교훈을 명확히 이해하며 대중 운동 속에서 주도적 구실을 할 능력이 있는 혁명 정당의 필요성은 줄어들기는커녕 현 시기에 더욱 커졌다. 맥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 투쟁이 없다면 소규모 급진 그룹의 영역을 넘어 더 많은 것을 이루긴 어렵다. 물론 이런 소규모 급진 그룹 안에서도 일부는 대단히 좋은 일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부분들은 늘 사소한 말싸움만 일삼는다.”그런 혁명적 사회주의자 그룹들에게는 지난 시기와 현 시기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비록 이 서평의 논조가 대체로 부정적이긴 해도, 나는 혁명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로서 맥낼리가 수행하는 구실을 높이 평가한다. 지금의 경제 위기와 관련하여 그가 제기하는 논점과 기여는 이 분야의 논쟁 수준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글로벌 슬럼프》는 그의 능력에 비추면 많이 아쉬운 저작이다. 그가 다음 저작에서는 부디 특정 추세를 침소봉대하거나 자신의 이론적 독창성을 과대 포장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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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seph Choonara, ‘Once more (with feeling) on Marxist accounts of the crisis’, International Socialism 132(Autumn 2011).
↩
- 나는 Choonara, 2009a에서 2009년 여름까지 쓰인, 현재 위기를 다룬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적 문헌들을 살펴봤는데, 그때 이후로 이 주제를 다룬 굵직한 저작들이 추가됐다. 데이비드 하비의 Enigma of Capital (2010)(나는 2011년에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쓴 바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Bonfire of Illusions (2010), 크리스 하먼의 Zombie Capitalism (2009),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The Crisis of Neoliberalism (2011)(본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이 글에서 “본지”는 모두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을 뜻한다. ─ 옮긴이]의 이번 호에 이 책 서평이 실렸다), 그리고 굴리옐모 카르케디의 논문들(이 가운데 한 편도 본지의 이번 호에 실렸다)이 바로 그것이다. ↩
-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최신 호에 실린 논문 가운데 특히 빼어난 것들은 일본에 관한 R 태거트 머피R Taggart Murphy의 논문, 파생상품에 관한 딕 브라이언Dick Bryan과 마이클 래퍼티Michael Rafferty의 논문, 그리고 뒤에서 내가 인용할 안와르 셰이크Anwar Shaikh의 논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에도 다른 간행물에서 비슷한 글들을 발표한 바 있다. ↩
- 그러나 맥낼리의 마르크스주의 개념 사용은 때때로 허술하다. 예컨대, 어느 대목에서 맥낼리는 “우리는 무엇이든 상품을(대개는 우리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 한다”고 말하며, 뒤에 가서도 “노동자들은 … 자신의 노동을 고용주에게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McNally, 2011, pp73, 114). 그가 실제로 하려는 말은 분명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다. 이 둘의 차이는 상당히 중요하다. 예컨대 Marx, 1969, pp399-400에서 데이비드 리카도에 관한 부분을 보시오. ↩
- McNally, 2011, p26[국역본 p55]. ↩
- 경제 위기를 다룬 《먼슬리 리뷰》 전통의 저작들에 관한 나의 비판은 Choonara, 2009a, pp93-96을 보시오.[국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 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마르크스21》 4호(2009년 겨울)] ↩
- McNally, 2011, pp201-202, footnote 61[국역본 p322, 5번 후주]을 보시오. 하먼·캘리니코스·나의 접근법과 브레너의 접근법 사이에는 방법론적 차이가 상당히 있다. 그럼에도 브레너는 체제의 전반적인 궤적에 대해 우리와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Choonara, 2009a, pp96-99을 보시오. ↩
- 안타깝게도 국제사회주의 전통에 속해 있거나 인접해 있는 몇몇 영민한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맥낼리의 비판을 수용하는 듯하다. 리 서스타Lee Sustar는 최근 미국의 《인터내셔널 소셜리스트 리뷰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에 기고한 하먼의 Zombie Capitalism에 대한 비판적 서평에서 맥낼리의 주장 가운데 더 오래된 버전을 차용했다. Sustar, 2011을 보시오. 또한, 같은 간행물에 실린, 《글로벌 슬럼프》에 대한 열화와 같은 서평으로는 McDonald, 2011을 보시오. 캐나다의 《뉴 소셜리스트New Socialist》의 찰리 포스트Charlie Post, 캐나다판 <소셜리스트 워커Socialist Worker>의 팸 프래시Pam Frache, 네덜란드 국제사회주의자들도 《글로벌 슬럼프》를 호평했다(Post, 2011; Frache, 2011; Zwan, 2011). ↩
- [국역본 p30]. ↩
- McNally, 2011, p26[국역본 p55]. ↩
-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표를 기초로 1990 International Geary-Khamis에서 계산한 수치. www.ggdc.net/MADDISON을 보시오. ↩
- 그 주요 경제들이란 서유럽 경제 30곳,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소련, 중남미의 주요 경제 8곳,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남한, 타이완, 말레이시아, 터키다. ↩
- McNally, 2011, p36[국역본 p69]. ↩
- McNally, 2011, p49[국역본 p86]. 캘리니코스도 Callinicos, 2010, p57에서 동일한 그래프를 제시하나 이를 토대로 맥낼리와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전개한다. ↩
- McNally, 2011, p49[국역본 p87]. ↩
- Shaikh, 2011, p48. 이윤율에 관해서는 Harman, 2010을 보시오. ↩
- McNally, 2011, p36[국역본 p69]. ↩
- 적어도 맥낼리가 사용하는 데이터를 보면 그렇다. 본지 이번 호에 실린 카르케디의 글에서 제시된 이윤율이 고점과 저점을 친 시기는 약간 다르다. ↩
- Shaikh, 2011, pp49-50. ↩
- 본지의 이번 호에 실린 카르케디의 글과 Harman, 2009, pp236-237에도 비슷한 주장이 담겨 있다. ↩
- McNally, 2011, p19[국역본 p45]. ↩
- McNally, 2011, p49[국역본 p87]. ↩
- McNally, 2011, p37[국역본 p70]. 미국 이윤율이 증가했음을 보여 주려고 맥낼리 자신이 쏟는 노력에 비추면 이런 훈계는 납득이 안 된다. 맥낼리는 사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경제의 이윤율은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맥낼리는 투자라는 것이 “세계적 이윤(즉 잉여가치)”을 차지하려는 활동이라고 말하지만 어디서도 세계적 이윤율(예를 들자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언급하거나 그것이 형성되는 방식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
- McNally, 2011, pp37-38[국역본 p71]. ↩
- McNally, 2011, p38[국역본 pp72-73]. ↩
- Harman, 2009, pp255-275. ↩
- McNally, 2011, p51[국역본 p90]. ↩
- McNally, 2011, p134[국역본 p220]. ↩
- World Bank, databank; Central Department of Statistics and Information, Saudi Arabia의 통계를 기초로 산출. ↩
- McNally, 2011, p54[국역본 p94]. ↩
-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03, chapter 1. 형식적으로 보면 중국이 세계 최대의 FDI 유치국이 됐다는 맥낼리의 주장은 틀렸다. 룩셈부르크가 같은 연도에 1천2백56억 달러의 FDI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중 대부분은 생산적 투자와 무관한 조세 피난 용도의 FDI였지만 말이다. ↩
-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05, overview. ↩
-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11, overview. ↩
- McNally, 2011, p55[국역본 p95]. ↩
- Nolan and Zhang, 2010, p107. ↩
- McNally, 2011, p41[국역본 p76]. ↩
- McNally, 2011, p214, footnote 208[국역본 p336, 13번 후주]. ↩
- Choonara, 2009a, pp92-93[국역본 pp27-28]. ↩
- McNally, 2011, p59[국역본 p100], 강조는 나의 것. ↩
- Radice, 2011, p26. 좀더 자세한 설명은 《소셜리스트 레지스터》에 함께 실린 Murphy, 2011, pp160-163에 제시돼 있다. ↩
- McNally, 2011, p27[국역본 p56]. ↩
- McNally, 2011, p63[국역본 pp105-106], 강조는 나의 것. ↩
- McNally, 2011, p66[국역본 p111], 강조는 나의 것. ↩
- 간단히 말해 GNP는 특정 국가의 거주 국민인 노동자들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합계이고 GDP는 특정 국가의 국경 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합계다. ↩
- Tymoigne, 2008, p11, table 1. 같은 페이지의 괄목할 만한 그래프를 보시오. ↩
- Harman, 2009, pp153-155. ↩
- 그 이유는 본지의 이번 호에 실린 카르케디의 글에 설명돼 있다. ↩
- 이런 주장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독자에게는 Choonara, 2009b, pp68-83과 Harman, 2009, pp68-75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
- 상시군비경제 이론을 소개하는 문헌으로는 Harman, 2009, pp161-190과 Choonara, 2009b, pp134-137, Pozo, 2010을 보시오. ↩
- Harman, 2001, pp45-47. ↩
- Panitch and Gindin, 2011, pp1-2에서 재인용. ↩
- McNally, 2011, p10[국역본 p30]. ↩
- McNally, 2011, p88[국역본 p145]. ↩
- McNally, 2011, p10[국역본 p30-31]. ↩
- McNally, 2011, p214, footnote 208[국역본 p336, 13번 후주]. ↩
- McNally, 2011, p91[국역본 p149]. ↩
- Callinicos, 2010, p61. ↩
- Harvey, 2003, p62. Harvey, 2010, p24도 보시오. ↩
- Gowan, 2010, p172. ↩
- Wade, 2006, pp116-117. ↩
- McNally, 2011, p90[국역본 p147]. ↩
- McNally, 2011, p94. 브라이언과 래퍼티도 《소셜리스트 레지스터》에 기고한, 파생상품에 관한 논문에서 1971년을 전환점으로 삼는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여러 형태의 파생상품들이 국민국가의 자본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방편으로서 탄생 또는 부활했고, 이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사실상 붕괴하는 데 일조했다.” Bryan and Rafferty, 2011, p204. ↩
-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란 수신 업무 중심의 전통적 은행 시스템 바깥에 놓인 헤지 펀드, 머니 펀드 등을 지칭하는 용어다. ↩
- McNally, 2011, p102[국역본 p168]. ↩
- 나는 Choonara, 2009a에서, 경제의 생산적 부문에서 수익성이 하락한 것이 금융화의 원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Harman, 2009, pp277-304과 Callinicos, 2010, pp20-63도 보시오. ↩
- McNally, 2011, p171[국역본 pp276-277]. ↩
- McNally, 2011, pp159, 160[국역본 pp258-259]. ↩
- Alexander, 2011. ↩
- McNally, 2011, p178[국역본 p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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