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발생 1년
자본주의 체제의 혼란상을 보여 주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市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중국은 조류 인플루엔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SARS) 등 2000년대 들어서만 여러 차례 신종 감염병 발생지로 지목된 바 있어 이 불길한 소식은 금방 세계 곳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신종 감염병 발생 사실을 국제적으로 공식 보고한 것은 2019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중국 당국은 나중에 이 폐렴에 걸린 사람이 적어도 2019년 11월 말부터 생겨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때만 해도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당시 중국의 유명한 바이러스 학자 관이는 우한을 방문한 뒤 새로운 폐렴으로 인한 피해자가 사스보다 “최소 10배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3년 사스 유행으로 전 세계에서 800여 명이 사망했다.
최초 발생 시점으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난 2020년 11월 9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120만 명을 훌쩍 넘겼다. 5000만 명이 감염됐고 매일 20만~30만 명이 추가되고 있다. 아르엔에이(RNA)바이러스를 감지하는 복잡한 기술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은 물론이고 선진국들에서도 충분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아 실제 감염자 수는 통계의 수배 내지 수십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오지에서 발견되는 토착병을 연상시키는 이름 같은 “우한 폐렴”이 코로나19라는 외계 행성 비슷한 이름으로 정식화하는 데에는 석 달가량 걸렸다. 그 사이에 중국을 비롯해 세계 바이러스 학자들은 이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유전체와 3차원 구조를 분석해 냈고, 2003년 사스(SARS), 2015년 메르스(MERS)를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의 한 변종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바이러스에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유전지리학자인 롭 월러스는 바이러스에 무미건조한 이름을 붙이는 데에 비판적이다. 이런 조처가 단지 사람들의 편견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려는 각국 정부의 압력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새로운 감염병을 연구하고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중국 광둥성 일대에서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에도 중국 정부는 이 병이 광둥성 일대에서 시작됐다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추가 연구에 제동을 걸었다. 사스 때도 그랬다.
물론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위기에 중국·WHO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적반하장식 위선이기도 하다. 롭 월러스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조지 W.]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할 ‘현실’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숱한 과학 연구를 왜곡했다. 기후 변화, 숲 파괴와 환경 오염, 줄기세포, 에이즈와 콘돔, 진화, 공중위생국장,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이 모든 것들이 부시가 임명한 인사들과 기업 로비와 종교적 신념들 때문에 뒤죽박죽이 됐다 … 이런 술책들 중에는 세계의 인플루엔자 백신 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있다 … 이런 해법이 WHO의 부자 후원국들이 꿈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위반되는 것이고 제약업계의 이익 추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1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세계 1~2위 강대국 사이의 책임 전가는 수많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하루가 멀다 하고 헛소리를 했고, 중국 당국은 WHO 소속 과학자들이 우한 지역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게다가 오늘날 감염병 연구는 감염병의 경제적·군사적 효과에 압도적인 관심을 쏟는 열강들과 다국적기업들의 후원에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서는 바이러스의 유전체 분석에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는 반면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는 사회적·경제적 맥락에 대한 연구는 매우 빈약하다.
유전체 분석은 오늘날 질병의 진단과 치료제, 백신 개발 등에 필수적인 과정으로 제약업계는 이에 상당한 투자를 해 오고 있다. 이로부터 이윤을 얻을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바이러스로 환원할 수 없는 감염병 발생의 사회적·경제적 맥락에 대한 연구는 이윤 획득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다국적 농화학기업과 축산기업, 식품기업들의 만행을 폭로하는 효과만 낼 것이다. 감염병 발생의 근본 원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장기적으로 감염병의 발생 자체를 억제하는 데에 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자본가들에게 장기적 전망은 항상 후순위로 밀리게 마련이다. 장기화된 경제 위기는 자본가들로 하여금 오히려 공중 보건에 투자하는 일조차 꺼리게 만든다. 세계 최고의 생산력을 갖춘 주요 선진국들에서 마스크 등 기초적인 방역 장비 공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결코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2 이 글에서는 그 핵심을 요약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롭 월러스, 마이크 데이비스, 존 벨라미 포스터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여는 독보적일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하다. 이들의 기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의 저작을 직접 읽어 보는 것이다.마르크스와 ‘신진대사의 균열’, 신종 감염병
인간이 자연을 변형시켜 온 과정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자연을 활용하는 방식(즉 생산)은 두 가지 점에서 이전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하나는 생산력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뒤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생산력은 이제 지구 대기 전체의 구성을 바꾸고, 수많은 생명체들을 멸종으로 몰아갈 정도로 증대했다(물론 이를 해결할 잠재력도 그만큼 커져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이런 생산력의 발전이 자연과 인류 전체의 공존과는 동떨어진 비이성적인 논리에 따라 추동된다는 사실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경쟁적 축적 논리에 따라 이뤄진다.
계절이나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인류 전체를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지만, 여전히 수억 명이 기아에 시달린다. 식량의 무상분배가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할 뿐 아니라 근본에서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를 약화시켜 자본가들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신종 감염병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더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식량 생산 방식이다. 공장식 축산업과 이곳에서 자라는 동물에 먹이기 위한 사료와 약품 생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비료 생산과 그 원료인 화석연료 사용은 전 세계에 걸친 생산망으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이 생산망 전체가 자연의 순환과는 동떨어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 그 결과 마르크스가 말한 ‘신진대사의 균열’이 지구적 규모에서 벌어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과 노동과정을 경제적 측면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이 자연과 신진대사를 하는 것으로 봤다. 두 사람은 인류가 자연과 능동적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신과 자연 모두를 변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엥겔스가 쓴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서 노동이 한 구실”은 다윈의 진화론을 한 단계 발전시킨 역작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이 신진대사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생긴다. 마르크스는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연구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리비히는 산업화된 자본주의 농업이 농지의 영양분(식량, 섬유 등)을 도시로 이전하는 한편, 도시로 이전된 영양분이 도시의 물과 공기를 오염시킬 뿐 농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 균열이 인류의 생존 조건을 뿌리째 흔든다고 표현했다. 이런 개념은 오늘날의 감염병 발생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바이러스는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총, 균, 쇠》(문학사상사)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오늘날 인류가 경험하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많은 경우 농경 문화의 발달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특히 일부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가축에 기생하던 바이러스 등이 인간에게 전파됐다. 이를 피할 방법이 없던 사회에서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집단면역’을 획득하게 됐다.
그러나 코로나19처럼 인류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바이러스가 흔했던 것은 아니다. 대개 감염병이 지역적으로 국한되거나 숙주 자체를 파괴해 멸종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치명률이 낮아 장기간에 걸쳐 인류와 공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농축산업은 이 균형을 상호 연관된 두 측면에서 파괴하고 있다.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성 향상만을 추구한 결과, 인간과 가축, 그 외 자연의 상호작용을 뒤틀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연 환경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개체 밀도와 유전적 다양성을 인위적으로 제거한 단일 품종 사육이 그 핵심이다.
이런 사육 방식에서는 바이러스와 가축, 가축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도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그 결과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 한 측면은 공장식 축산 내부에서 일어났다.
단종 생산으로 인해 거의 같은 유전형질의 가축이 많아지면서 전염을 늦출 수 있는 면역 방화벽들이 사라지고 있다. 규모와 밀집도가 커지면서 전염은 더 빨라진다. … 산업형 생산에서는 어린 연령대에 도축을 하기 때문에, 병독성이 진화하는 데 연료 역할을 하는 취약한 어린 개체들이 병원균에게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예를 들자면 생산 과정의 혁신으로 닭이 도축되는 연령은 60일에서 40일로 낮아졌다. … 대량 살처분을 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궤적이 나타난다. 3
다른 한 측면은 이런 생산방식이 ‘미개척지’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숲의 복잡성은 “야생” 병원균을 억눌러 준다. 그런데 벌목과 채굴과 집약적 농업은 복잡한 자연을 급격히 단순화시킨다.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많은 병원균들은 결과적으로 숙주들과 함께 소멸하는 반면에, 숲에서 사라진 것 같았던 하위유형들이 예측하지 못할 방식으로 숙주를 얻고 감염에 취약한 집단을 만나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 … 에볼라가 그런 예다. 4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전자의 사례이고 코로나19는 후자의 사례다. 그런데 왜 이 두 가지 사건이 모두 중국 남부에서 벌어졌을까?
중국의 경제 개방과 농업 ‘개혁’이 촉진한 진화
중국 남부, 특히 광둥성과 그 서쪽에 있는 윈난성은 오늘날 세계 축산업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1980년대 이후 덩샤오핑 하의 중국은 홍콩에서 가까운 광둥성과 대만을 마주한 푸젠성 등을 국제 시장에 개방했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뿐 아니라 농축산업에도 해외 자본이 대량 유입됐고,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농축산업 생산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중국 정부의 ‘농업 현대화’는 외국인 직접투자, 민영화, 토지 매각 등을 뜻했다.
1997년 홍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H5N1)가 처음 발생했을 때 과학자들은 이 새로운 바이러스가 바다 건너편에 있는 용광로, 즉 광둥성에서 생겨난 것임을 밝혀냈다. “가게의 앞면이 홍콩이라면 뒤쪽은 광둥이었다.”
광둥성은 중국에서 가금류를 세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다. 닭 7억 마리가 광둥성에 있었다. 닭을 1만 마리 이상 키우는 대농장의 14퍼센트가 광둥성에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도시로 대규모 인구가 유입됐고, 중국의 가금류 생산은 1985년 160만 톤에서 2000년 1300만 톤으로 급증했다. 이런 사회생태적 조건에서 최초의 병원균인 고병원성H5N1이 나타났다.”
거대 농장의 발달은 동시에 주변 생태 환경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이 지역의 습지가 파괴됐고, 습지를 찾던 철새들과 방목되는 오리들은 먹이가 부족해진 원래 서식지가 아니라 가까운 농장을 찾아 먹이 활동을 하며 농장에서 사육되는 가금류와 접촉하게 됐다.
지금까지 이뤄진 유전지리학적 조사에 따르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가장 가까운 조상은 후베이성이 아니라 그보다 상당히 남서쪽에 있는 윈난성에 살던 말레이 말발굽 박쥐에서 발견됐다. 이 박쥐에게 있었던 바이러스가 어떻게 인간에게 감염됐을까?
5 도시화가 진행되고 농지가 숲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한편, 기존 농지의 집약도가 크게 높아진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박쥐의 서식지가 파괴되는 동시에 서식지를 잃은 박쥐들이 인간이 기르는 가축 또는 빈번하게 접촉하는 동물과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가장 유력하게 지목된 동물은 천산갑이다.
아래 그림은 광둥성 서쪽의 윈난성 쿤밍시市의 뎬츠호 주변의 변화를 표시한 것이다.윈난성은 말레이 천산갑 유통의 요충지다. 중국에서 천산갑은 약재와 고급 음식으로 인기 있는 동물인데, 중국 정부는 천산갑뿐 아니라 다양한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정책을 지원해 왔다. 농업 개방으로 열악해진 소농 등 지역 경제를 진작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천산갑은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될 만큼 개체수가 적은데 번식이 어려워 중국 정부의 공식 지원에도 불구하고 천산갑을 가축화하려는 시도는 좌절돼 왔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사냥과 밀렵이 크게 늘었다.
2014년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3년 윈난성에서 말레이 천산갑 259마리, 비늘 2592kg이 압수됐다. 윈난성은 남쪽으로 버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버마의 남쪽 국경은 말레이시아와 연결돼 있다. 윈난성에서 발견된 말레이 천산갑은 버마에서 온 것이거나 버마를 통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의 한 보고서에는 중국에서 천산갑 비늘(한약재로 쓰인다) 유통이 크게 늘었고, 55퍼센트 가까이가 윈난성과 그 동쪽에 인접한 광시자치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2015년 10월에 광둥성 세관 공무원들이 압수한 상자 414개에 냉동된 천산갑 2764마리가 들어 있었다고 보고했다. ‘우한 폐렴’이 보고되기 몇 달 전인 2019년 3월 광둥성에서 밀매되던 말레이 천산갑이 구조됐는데, 죽은 천산갑을 부검한 결과 중국 남부 지역에 서식하는 다양한 박쥐에게서 볼 수 있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1) 균주가 발견됐다.
요컨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장소와 시점이 어찌 됐든 간에, 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중국 정부의 폐쇄적 태도와 정보 은폐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연구소 발 바이러스 유출’을 의심하기도 한다. 물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에서 생물학연구소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나, 주한미군의 탄저균 한국 유입 사건 등에서 보듯 제국주의적 경쟁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생물학 무기를 실험하고 있다.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의 생물학연구소에서 브루셀라균이 실수로 유출된 사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실험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독성 병원균이 흘러나오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제기된 연구소 기원설은 대체로 전문가들의 반론에 부딪히고 있다. 가장 최근에 제기된 것은 한 석사학위 논문을 인용한 것인데, 2013년 무렵 일부 광원들이 사스와 비슷한 폐렴을 앓았고 그 바이러스를 우한 소재 생물학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바이러스가 현재 퍼져 있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와 같거나 혹은 가장 가까운 직계 조상이라고 볼 만한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방역, 물리적 거리두기, ‘로크 다운’
인류 역사상 가장 발달한 교통·운송 체계와 활발한 인구 이동은 신종 바이러스가 반년도 안 돼 70억 명의 숙주 사이를 파죽지세로 파고들 수 있게 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감염병은 두 달 만에 아시아 전역으로, 석 달째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확산됐다. 지금은 미국·인도·브라질이 세계적 대유행의 중심지가 됐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계적 규모에서 보면 코로나19는 아직 재확산이 아니라 여전히 1차 확산중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 사례가 경고하듯이,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시 ‘스페인 독감’은 1차 확산이 휩쓸고 지나간 뒤, 변이를 일으켜 독성이 한층 강해진 바이러스가 이듬해 2차 확산하면서 진정한 재난을 낳았다.
주요 선진국 지배자들은 중국의 봉쇄 조처가 낳은 효과(세계적 생산의 연쇄 마비)를 보며 전율했지만 이내 자신들도 비슷한 조처를 실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윤의 원천, 즉 노동계급이 노동할 능력을 잃도록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스웨덴 정부는 청년층의 치명률이 낮다는 사실에 착안해 악명 높은 ‘집단면역’ 정책을 취하려 했다. 이윤 창출에 도움이 안 되는 일부 노인들을 희생시켜서라도 경제가 마비되는 봉쇄를 피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으로 판명 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봉쇄 조처는 불가피한 면이 크다. 봉쇄는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는 것인데, 특히 코로나19처럼 감염 경로나 치명률, 후유증 등을 알지 못하는 감염병의 경우 이런 조처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영어로는 모두 ‘로크 다운Lock down’으로 표현되는 각 나라의 봉쇄 조처는 실제 내용이 다르다.
중국의 경우 극도로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봉쇄 조처를 시행했다. 우한은 1월 23일 항공기와 기차 등의 운행을 중단해 도시 안팎의 출입을 전면 차단했다. 도시 내부에서도 버스·지하철·택시는 물론 자가용 운행까지 금지했다. 2월 중순에는 집밖 외출을 전면 금지했다. 집밖을 나와 주택 단지 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금지했다. 무장한 공안 경찰이 곳곳에 배치됐다. 식료품은 배달돼 오는 것에 의존해야 했다.
그렇게 76일 동안 서울 면적의 열네 배나 되는 도시가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다. 그 뒤에도 확진자가 나타난 도시들에 대해 중국 정부는 어김없이 비슷한 조처를 취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거대 도시의 경우 봉쇄 구역이 상대적으로 좁게 정해졌지만 강도는 매우 높았다.
중국 정부는 마침내 9월 8일 사실상 코로나 종식 선언을 했다. 바이러스는 유령이 아니라 물리적 실체를 가진 존재이므로 이 정도면 사람 간 감염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조처가 필요에 적합한 것이었는지, 국가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지, 충분한 지원을 통해 유도한 것이었는지 등이 중요하다. 강제 조처가 적절한 대상에게 취해졌는지도 중요하다.
우한이 봉쇄됐을 때 주민들은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주민위원회를 통해 식량을 구했는데, 닭 수천 마리가 쓰레기차에 실려 와 주민들이 항의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는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은폐돼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쇼핑몰 등 상업 시설 운영 제한 조처가 주민들에 대한 외출금지령보다 먼저 해제되기도 했다. 이런 조처에 항의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실종됐다. 소수 사람이 당국의 억압을 해외 언론에 증언해 봉쇄 지역 안에서 벌어진 일을 얼핏 짐작할 수 있게 해 줬다.
게다가 중국발 여행자 중에 코로나19 감염자가 계속 발견되고 중국 정부가 무증상 감염자를 확진자 통계에서 제외해 온 것을 고려하면 실제로 중국 내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무증상 감염자를 제외하는 것은 감염 가능성이 있는 확진자의 접촉자들을 일일이 추적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확진자가 나타나면 해당 ‘지역’을 2주간 봉쇄해 폭발적 확산을 차단해 온 듯하다. 따라서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확진자가 꾸준히 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국 정부의 이런 조처가 불가피하거나 효과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없다.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유럽 선진국들과 미국 뉴욕에서도 감염자가 급증하자 정부가 필수 분야 산업을 정하고 해당 분야의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외출을 제한하는 조처를 내렸다. 학교는 폐쇄됐다. 외출하거나 이동하는 사람들은 그 필요를 증명해야 했다. 도시 간 이동이 제한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중국에 비해 강압 정도나 통제 범위가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식료품 구입이나 운동을 위한 외출이 어느 정도 허용됐고 ‘필수 분야’의 범위도 나라마다 다소 차이가 있었다. 중국은 우한에서 수도·전기·인터넷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정지시켰다.
오히려 이런 나라들에서는 정부가 너무 늦게까지 비필수 분야의 운영을 중단하지 않아 대중의 항의를 받았다. 노동자들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비필수 분야의 공장과 사무실을 가동하는 조처들에 항의하고, 노동자들을 일터로 불러내기 위해 정부가 학교와 공공시설 등을 계속 운영하는 것에도 항의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초기에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이 중국발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 국경 봉쇄 문제가 쟁점이 됐다. 한국에서도 우파 야당이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며 입국을 금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보건의료 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면 감염병을 막겠다며 국경을 봉쇄하는 조처를 지지할 수 없다. 국내의 이동제한령이나 외출제한령 등과 달리 국경 봉쇄는 국가들 간 합리적 조율이나 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출입국을 금지당한 사람들이 필요를 충족시킬 마땅한 대안을 찾기 훨씬 어렵다. 최악의 경우 추방당하면 아예 갈 곳을 잃기 쉽다. 방역 문제로 보자면, 밀입국 등을 강행하게 돼 오히려 감염병 관리에 허점만 생길 가능성이 크다.
또 잘못 알려진 상식들과 달리 대부분의 감염병에 대한 인종 간, 민족 간 반응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보다는 같은 인종이나 민족, 국가 내부에서 계급에 따른 차이가 훨씬 두드러진다. 평소 영양 상태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감염병에 걸릴 확률과 회복 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흑인과 무슬림, 히스패닉에게서 희생자가 더 많이 나온 이유는 그들의 피부색이 짙어서가 아니라 인종차별 탓에 다수가 하층 계급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 봉쇄는 감염병 예방 효과는 별로 없는 반면,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을 부추겨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내기 쉽다. 특히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자국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국가들 간의 경쟁도 심화하므로 국경 봉쇄를 그 경쟁의 일환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K-방역?
그러면 한국 정부의 K-방역은 다른 나라 정부들의 방역과 어떻게 달랐는가?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나 시진핑과는 달리 정말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은 결과를 낳았을까?
확진자·사망자 수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는 한국의 상황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처는 모순적이었고, 그 밑바탕에는 안전보다는 자본의 이익을 우선 반영하는 조처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K-방역의 실체를 알고 나면 그게 실제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초기에 비교적 신속히 환자 발생 사실과 이동 경로 등을 공개하며 접촉자 관리를 엄격히 한 것은 확실히 이후 확산을 통제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는 방역당국이 2015년 메르스 감염 경험에서 배운 바가 컸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정보를 은폐하고 우왕좌왕하다가 큰 반발을 샀다. 박근혜 지지율은 2주 만에 40퍼센트에서 29퍼센트로 폭락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의 기능을 강화하고 몇 가지 신종 감염병 발생 대비책을 계획했다. 국가 지정 음압병상이 200여 개로 늘어난 것도 이때다. 신종 감염병 발생을 염두에 둔 매뉴얼 작성과 진단키트 개발과 신속허가 조처도 도입됐다.
그 덕분에 문재인 정부는 1~2월에 ‘진단→접촉자 추적→격리’로 이어지는 능동감시 체계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이 K-방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스템은 감염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확산되면 작동하기 어렵다. 산불에 비유하면, 소방관들은 불길을 잡기 위해 불이 난 지점과 그 주변에 물을 뿌리기도 하지만,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맞불을 놓거나 숲을 제거하는 선제 조처를 취하기도 한다. 전자가 한국 정부 방식이라면 ‘물리적 거리두기’와 봉쇄는 후자 방식이다.
그런데 이미 2~3차 감염 등 지역적 확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을 때도 정부는 봉쇄 정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기업주의 이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서였다. 오히려 정부는 경제 활동이 둔화돼서는 안 된다며 경계심을 낮추려 애썼다.
2월 중순 이후 대구·경북 지역에서 집단 감염이 확산되자 ‘진단→추적→격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정부는 기존 방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즉 봉쇄 조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건·공공 인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거리두기를 강요했다. 마스크 착용과 공급을 둘러싼 혼란도 벌어졌다.
급증하는 환자와 그 몇 배나 되는 접촉자들을 추적·검사하는 데에는 엄청난 인력이 필요했지만, 공공의료 강화를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동안 준비해 둔 게 거의 없었다. 심지어 보호장구도 충분히 지급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보호장구를 요구하자, 보건복지부 장관 박능후는 병원 노동자들이 보호장구를 쌓아 두려 한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노동자들은 정부가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정부는 신천지 교회를 마녀사냥해 정부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감염병 환자는 가해자와 다름없이 취급하겠다는 것을 보여 줬다. 신천지 교회가 협조하지 않는다며, 영장도 없이 행정명령만으로 압수, 휴대전화 접속 기록 조회, 신용카드 사용 기록 조회, CCTV 조회 등을 거의 제한 없이 집행했고 그 뒤로도 이런 조처를 당연하다는 듯이 애용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벌어진 집단 감염 사건의 결과는 어떤 의미에서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상황을 ‘의료 붕괴’라고 규정한다. 십여 명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렴이 악화돼 사망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지만 폐렴 증세를 앓던 청소년이 입원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곧이어 이탈리아·영국·미국 등 선진국에서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자 갑자기 외국 언론들이 한국 정부가 대단한 성적이라도 거둔 것처럼 칭찬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보고 놀란 사람들은 자구적 노력을 강화했고, 여러 여론 조사들에서 사람들이 ‘아플까 봐’가 아니라 가해자로 낙인 찍힐까 봐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한다는 대답이 더 많았다. 길거리나 공공장소,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둘러싸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2~3월의 대구·경북, 5월 이태원, 6월 쿠팡 물류센터, 8월 제일사랑교회 등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 사태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같이 정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조처나 메시지를 발표한 직후에 발생했다.
3월 이후로도 병상이나 인력은 늘지 않았고, K-방역을 자랑하며 공장과 사무실에 대한 방역 조처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책임을 전가하고 별 근거도 없는 권위주의적 조처들을 늘렸다. 정부는 10월 11일 거리두기 단계를 1단계로 완화하면서 (감염자 수가 급증하자 11월 중순에 수도권 거리두기 단계를 1.5단계로 격상시켰다), 도심 집회와 100인 이상 집회는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별 근거가 없는 조처인데, 우파들의 집회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항의도 입막음하려는 조처다. 정부는 경제 상황 악화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선제 조처로 짐작된다.
사실 8.15 집회 참가자들 관련 통계는 의문점이 적지 않다. 일부 참가자들이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밀접 접촉하거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면 감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길거리가 아니라 함께 탄 버스 안, 식당, 집회 전후 다른 장소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정부도 그런 환경이 더 감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광화문 일대가 넓은데 확진자들 감염 경로도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 시간대에 광화문에 머문 사람들이 검사를 받으러 가도 일선 선별진료소는 그냥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8.15 집회 확진자가 1000여 명이라고 발표한 뒤 집회 자체를 금지하니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환자실과 인력 부족 등 근본적인 취약성이 여전하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므로 한국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의료 붕괴’ 상황을 맞을 위험성은 상존한다. 8~9월의 위기 상황은 그 문턱까지 다녀온 것이지만 정부는 더 근본적인 조처들 — 공공병상 확충, 인력 확보 — 을 여전히 미루고 있다.
계급 사회의 속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그 개체 하나로 보면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비말에 섞여 날리며 공기의 흐름에 따라 이러저리 떠다닌다. 공기 중에서 오래 살아남지도 못한다.
그러나 바이러스 종 전체는 숙주 등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증식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향해 진화한다. 이런 상호작용을 ‘진화압’이라고 부르는데, 주변 환경이 그 바이러스로 하여금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압력처럼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집단 전체로 보면 자신에게 유리한 게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물론 이는 성공적으로 진화한 경우만 두고서 그런 것이다. 멍청하게 멸종을 향해 달려간 바이러스들이 훨씬 더 많다.)
박쥐에서 천산갑을 거쳐 인간에게까지 이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의인화하자면) 매우 낯선 환경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을 것이다. 숙주를 어디서 찾는 게 장기적으로 생존에 유리할까? 어떤 속도로 개체수를 늘려가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바이러스는 처음에 비해 속도를 크게 올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유행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는 GH형으로 불리는 것으로, 2~3월 대구에서 유행하던 것과는 다른 특징을 지녔다. 좀더 감염력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8 면역력이 취약한 경우가 일차적 대상이 될 것이다. 노인들이 모여 있는 요양원에서 집단 감염이 우후죽순 생긴 이유다. 저소득층에게서 감염 비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둘 모두에 해당하는 다수의 요양보호사(간병인)들은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에 노인들과 자기 몸을 돌보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숙주 문제로 보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보다 사회적 특성이 더 중요하다. 영양 등 개체 자체의 상태가 좋지 않아 비특이적공장형 축산처럼, 인간이 오랫동안 밀집해 있으면서 이탈하기 어려운 곳이 증식에 유리할 것이다. 콜센터와 좁아터진 다세대 주택 등에서 집단 감염이 빈발하는 이유다. 이런 환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노동자들의 일터와 주거지다. 역설이게도 ‘공장형’ 환경에 더 먼저 더 자주 놓인 것은 가축이 아니라 노동자였다.
물론 노동계급이 자본가들과 다른 유전적·생물학적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앞으로도 바이러스는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 같은 지배자들도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큰 불편 없이 나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봉쇄나 물리적 거리두기도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개인주의적 라이프 스타일을 누릴 자원이 있다.
반면,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한 조처들은 노동자들에게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작업 환경을 선택할 수 없음은 물론 콩나물시루 같은 출퇴근 대중교통도 피하기 어렵다. 결정권을 가진 기업주들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노동자들에게만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니 매우 낮은 수준의 조처도 엄청난 물리적·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이런 조처들은 그동안 이 사회가 얼마나 노동자들에게 위태롭고 가혹한 환경을 강요해 왔는지 만천하에 드러냈다.
거리두기로 상점 등이 문을 닫거나 영업을 단축하자 영세자영업자들이 고통을 받았고,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대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항공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무급휴직을 강요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났다. 이스타항공의 매각 무산은 자본가들에게는 손실을 우려한 투자 철회였을 뿐이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 말고는 생계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거리두기를 지킨다며(사실은 흉내만 내는 곳이 많다) 식사와 휴식 시간이 단축됐고, 후미진 곳의 흡연 공간이나 계단 밑 창고에서 쉬던 노동자들은 쉴 곳도 사라졌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겪은 일이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고질적인 저임금 탓에 두세 개의 일자리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투잡)으로 흔히 내몰린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콜센터나 학교 돌봄 노동자로 일했고, 감염 확산으로 물류센터가 폐쇄되자 이 시설들도 운영이 중단됐다.
학교와 보육 시설도 운영이 중단됐지만 처지가 다 똑같지는 않았다. 고급 사립학교와 보육 시설은 학급별 학생 수가 적어서 거리두기가 상향 조정돼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애당초 교사 수가 부족해 교육 여건이 안 좋던 보통의 학교들은 여지없이 폐쇄됐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지금 아이들의 교육 수준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방치돼 있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교육과 사회화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가정 폭력과 학대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과후 교사들은 기약도 없이 정부가 주는 쥐꼬리만한 지원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가뜩이나 열악한 처지에 있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학교가 문을 닫을 때마다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시달려야 했다.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한쪽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한다.
병원 노동자들은 이전에도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호소해 왔는데, 이제는 더한층의 ‘헌신’을 강요당하고 있다.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덕분에’라며 자기들을 돋보이게 하는 사진을 찍어대더니 정작 제대로 된 보상이나 인력 충원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택배 등 물류 운송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 때문에 과로사가 잇따른다. 노동자들이 인력을 충원하라고 요구하지만, 고용주들은 오히려 그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정부는 이런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에는 인색하면서도 기업주들에게는 투자 촉진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자금을 제공했다. 하지만 정작 이 돈은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쏠리고 있다. 덕분에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코로나19 와중에 집값 폭등까지 감당해야 한다.
위기의 대안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로 인해 노동계급이 겪고 있는 고통은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경제 위기는 물론이고 감염병의 발생, 그 피해의 양상도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방식 자체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은 자원 투자의 우선 순위와 방식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구현된다. 따라서 매순간 이를 선택하고 실행한 자본가들과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배자들은 어떻게든 감염병과 경제 위기가 자신들이 지키려 하는 체제나 자신들의 결정과는 관계없는 불가항력적 현상으로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해야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그 원인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오히려 이익을 얻고 있다. 스위스계 은행 UBS에 따르면 세계 최대 부호들의 재산은 위기가 가장 고조되던 4~7월에 27.5퍼센트나 늘었다. 이들은 세계 주식시장이 ‘절벽’으로 떨어지던 3월에 헐값으로 주식을 사들인 뒤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때이른 경제 활동 재개에 힘입어 주가가 오르자 엄청난 차익을 거뒀다. 그 대가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또다시 노동계급에게 전가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위기의 책임을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것을 저지할 만큼 투쟁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 노동자들이 경제 위기로 인해 고용 불안을 느껴 행동에 나설 자신감이 충만하지 않다.
그런데 노동계 지도자들의 부적절한 대응이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는 측면도 크다. 노동계의 대표적 세 조직인 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 지도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정부의 대책을 폭로·비판하기보다 정부에 협조적이었다. 코로나19 위기의 원인과 성격에 대한 진단이 모호하다 보니 정부의 대응을 냉철하게 평가하지 못했던 듯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K-방역이 외신에서 국제적으로 칭찬을 받자 더 그랬던 것 같다.
민주노총 김명환 전前 집행부는 코로나19 위기 전부터 추진하던 사회적 대화 노선을 유지했다. 작년 초 대의원대회에서 좌절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코로나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재시도해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참여했다. 이런 태도는 노동자들의 투쟁 태세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내는 것이었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할 생각이 한치도 없었다는 사실은 사회적 대화 테이블의 잠정합의문에서 드러났다. 잠정합의문에는 노동자들의 양보와 협조가 명시됐지만 사용자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뚜렷하게 명문화된 것이 없었다.
다행히 잠정합의문은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그러나 잠정합의문에 반대한 노조 지도자들도 사회적 대화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비판하지 않았고 대안적 투쟁 노선을 제시하지 않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코로나19 사태 초기 당시 정의당 대표)은 정부의 신천지 마녀사냥을 편들었고, 집회 금지 조처도 받아들였다. 진보당도 집회 금지 조처를 용인했을 뿐 아니라 정당연설회도 자진 취소했다.
물론 정의당이 총선 직전에 노동계급에 필요한 요구들을 내놓으며 정부와 차별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그런 요구들을 내걸고 투쟁 구축을 강조하기보다 선거 결과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정의당의 선거 성적은 정의당 지도부의 기대에 많이 어긋났다. 민주당과 공조해 선거법을 개정하려다 민주당의 배신으로 보잘것없는 개정에 그친데다 그나마 (더 정확하게 말해, 정의당이 합의한 개정 선거법의 허점을 이용해)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급조해 출마시키자 정의당은 현상유지에 그친 성적표를 받았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조건을 방어하려면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감염병과 경제 위기, 또는 이에 대처하기 위한 투쟁조차 리더십의 위기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을 냉정히 이해하면서도 불필요한 비관에 빠지지 말고 미래를 준비해 나아가야 한다. 행동이 충분치는 않지만 노동자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또 적지 않은 청년들은 체제의 위기를 보며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좌절하기보다 제대로 된 대안을 만나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제다.
주
- 월러스 2020a, pp36~37. ↩
- 《마르크스의 생태학》(존 벨라미 포스터, 인간사랑)은 마르크스가 생태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잘 보여 준다. 마르크스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여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조류독감》(마이크 데이비스, 돌베개),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롭 월러스, 너머북스)은 2000년대 이후 빈발하는 팬데믹의 기원과 해법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
- 월러스 2020a, pp75~76. ↩
- 위의 책, p23. ↩
- Examining Land-Use/Land-Cover Change in the Lake Dianchi Watershed of the Yunnan-Guizhou Plateau of Southwest China with Remote Sensing and GIS Techniques: 1974–2008, December 2012,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9(11):3843-65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원본에 포함된 컬러 이미지를 보면 시기에 따른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
- Wallace 2020b. ↩
- Wallace 2020c. ↩
- 비특이적 면역이란 선천면역이라고도 불리는데 침입한 병원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작동하는 면역 반응을 가리킨다. 반대로 특이적 면역이란 후천면역이라고도 불리고 우리가 살면서 면역력을 획득하는 다양한 병원체 각각에 대해 형성되는 면역 반응을 뜻한다. 코로나19의 경우 후천면역은 아무에게도 없었고 지금도 대부분 없다. ↩
참고 문헌
월러스, 롭 2020a,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너머북스.
마이크 데이비스 외 2020,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 책갈피.
김하영·최일붕 2020, ‘코로나바이러스·경제 위기와 계급투쟁’, <노동자 연대> 317호
포스터, 존 벨라미 2020, ‘감염병 대유행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와 생태학’, <노동자 연대> 320호
Wallace, Rob 2020b, Dead Epidemiologists – On the origins of COVID-19, Monthly Review Press
Wallace, Rob 2020c, ‘The blind weaponmaker’,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