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한국 경제 ①
한국 경제 불안정한 회복의 이면
자본가들에게는 이윤을 얻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공장과 기계, 노동력에 투자한 돈의 양과 이윤량의 비율, 즉 이윤율도 중요하다. 다른 자본가들의 이윤율이 10퍼센트일 때 이윤율이 5퍼센트밖에 안 되는 자본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는 다른 자본가들보다 더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채택하려고 애쓴다.
보통, 생산 방식이 더 효율적이 되면 노동자 한 사람이 사용하는 설비와 기계가 더 많아진다. 신기술을 처음 도입한 자본가는 다른 자본가보다 싸게 생산해서 많이 판매해 이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경쟁 때문에 다른 자본가들도 신기술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 전체에서 공장·기계 투자가 노동자(이윤의 원천) 고용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한다. 따라서 이윤율은 하락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윤율이 떨어져 자본가들이 투자를 줄이면 생산된 상품이 소비되지 못하면서 경제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자본을 더 빨리 확대하려고 경쟁하는 과정이 오히려 자본의 확대를 막는 것이다. 자본 축적 자체가 자본 축적의 장애물이 되는 상황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윤을 충분히 얻을 듯하면 기업들은 최대한 빨리 생산을 늘린다. 그러나 이윤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자본가는 생산을 늘리는 데 투자하지 않고 그 돈을 은행에 맡길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자본가들이 돈을 새로 투자하지 않고 은행에 맡길 것이다. 돈을 대출받아 투자하려는 자본가보다 돈을 쌓아 두는 자본가가 많아지면 생산한 상품을 모두 판매하지 못하는 자본가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생산과 투자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상품을 팔지 못하게 돼 부도가 나거나 파산하면서 경제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물론 자본가들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돈이 점차 많아지면, 그 돈은 여전히 수요가 안정적인 듯한 상품에 몰릴 수 있다. 그 상품은 곡물일 수도 있고 석유나 주식이나 금이나 주택이나 튤립일 수도 있다. 특정 상품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상품을 사두려 할 것이고 그러면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면, 가격이 더 오르리라 기대하면서 그 상품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빌려서라도 그 상품을 사려고 나설 것이다. 조금만 지나면 그 상품의 가격이 올라 빌린 돈을 갚고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29년 대공황 직전에 사람들은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너도나도 투자회사를 차리고 돈을 끌어모아 주식을 샀다. 돈을 빌려 투자회사에 투자했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려고 돈을 빌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자신보다 더 멍청한 바보가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팽배했다. 주식시장에서 한몫 잡은 사람들이 돈을 쓰자 다른 상품들의 판매도 늘었고 결국 기업들도 호황을 누렸다. 1920년대에 미국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일이 2000년대에는 미국 주택시장에서 일어났다. 위기가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MBS(주택 저당 증권)니 CDO(부채 담보부 증권)니 하는 파생금융상품은 사실 그걸 취급하는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모를 정도로 복잡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작동 원리는 1920년대와 마찬가지였다. 집값이 오르자 금융업자들은 그 전까지는 소득이 적거나 불안정해서 신용 대출을 거부당한 사람들에게 집을 사라고 부추기며 대출을 해 줬다. 집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모기지 업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로 손실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출받은 사람들이 이자를 갚지 못하더라도 주택을 압류해서 경매 처분하면 충분히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금융업자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대출 채권을 파생금융상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파생금융상품을 구입한 금융업자는 그것을 다시 다른 금융업자에게 판매하고 다른 파생금융상품을 구입했다. 이런 식으로 부실 채권은 금융계 전반에 퍼지게 됐다. 주택 시장이 호황이었고 사람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상품을 구입하면서 경제 전체의 호황이 지속됐다.
2006년 미국에서 실업률이 조금 오르고 물가가 상승하자 이에 대처하려고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렸다. 그러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자를 갚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압류와 경매 처분에 들어가는 주택이 많아지면서 2006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파생금융상품이 부실하다는 점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모기지 업체들이 하나둘 파산했고, 파생금융상품을 취급하던 헤지펀드들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파산하기 시작했다. 이제 은행들은 모두 다른 은행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신용경색이 심해져 2008년 3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파산 위기에 빠지자 위기가 금융 시스템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고 누구보다 우파적이고 신자유주의를 가장 열렬히 주창해 온 부시 정부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내팽개치고 구제금융을 대거 투입하기 시작했다.
2008년 9월에 벌어진 사태는 최근 위기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대형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2천억 달러를 지원받고 결국 국유화됐고, 파생금융상품에서 손실이 나면 보전해 주는 보험을 팔던 대형 보험회사 AIG도 국유화됐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지키고자 부시 정부가 일종의 시범 케이스로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도록 놔두자 금융과 실물 부문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고 위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 정부를 포함한 세계 각국 정부들은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으려고 거듭거듭 지원을 늘렸다.
국가 개입과 경기부양의 성격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급락하던 세계경제가 2009년 2분기부터 하락세를 멈췄다. 한국도 2008년 4분기부터 환율이 급등하고 수출이 급감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으나 2009년 2분기쯤부터 경제가 하락을 멈추고 상승하기 시작해, 2009년 경제 성장률은 0.2퍼센트를 기록했다.
우선,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과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유럽의 정부들이 금융기관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금융 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뒤 전 세계 금융권이 위기에 처하자 EU는 2조 달러, 미국은 7천억 달러 등 막대한 자금을 금융권에 투입했다. 미국 정부는 2천억 달러를 투입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했고, AIG와 대형 은행인 씨티그룹을 국유화했다. 유럽 각국 정부도 노던록(영국),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영국), 로이즈(영국), 코메르츠(독일), 히포그룹알페아드리아HGAA(오스트리아) 등을 국유화했다.
기업 국유화와 대규모 구제금융 투입 조처는 수십 년간 주류 정치인과 언론 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신자유주의 교리를 스스로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각국 지배자들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부자들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정부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국유화로 모기지 시장을 계속 지원해, 차입자들이 이자를 계속 갚을 수 있도록 하고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지는 것을 막아, 대형 은행들이 보유한 금융상품 가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 줬다. 또, 미국 정부의 AIG 국유화 덕분에 대형 은행인 골드만삭스는 AIG한테서 보험금 1백29억 달러를 받아낼 수 있었다. 프랑스의 대형 은행 소시에떼제네랄도 국유화된 AIG한테서 1백10억 달러를 받았는데 이 돈도 골드만삭스로 흘러갔다. 만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AIG를 파산하도록 놔뒀다면 골드만삭스를 포함한 많은 금융기관들도 파산했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한 덕택에 골드만삭스는 2009년에 1백34억 달러라는 막대한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금융 공황 전인 2007년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2008년의 갑절로 뛰었다. 지난 연말 골드만삭스는 임직원에게 총 2백30억 달러를 현금 보너스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역사상 최고 액수였을 뿐 아니라,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에 지급한 2백2억 달러보다 많은 것이었다. 이를 두고 비난이 쏟아지자 골드만삭스는 액수를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1백60억 달러를 보너스로 지급했다. 2007년에는 7천만 달러 가까이 보너스를 받았고 이번에는 1억 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소문이 돌던 골드만삭스의 CEO 블랭크페인은 주식 9백만 달러어치만 받기로 ‘양보’했다!
파생상품 시장에서 도박을 일삼고 엄청난 부채를 거래해 얻은 막대한 부로 호화 사치 생활을 즐기던 자들이 국유화와 대규모 구제금융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국 정부의 금융기관 국유화를 두고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고 비꼬는 것이다.
2 2009년 3분기에 집값이 모기지 대출금의 75퍼센트 이하인 주택 소유자가 4백50만 명이었는데, 이들은 곧 집을 비우든지 대출금보다 싼 값에 집을 모기지 업체에 되팔아야 한다. 집은 집대로 잃고 빚은 빚대로 갚아야 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2009년에만 2백82만 가구가 주택을 압류당해 집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주택 압류는 2010년에 3백만 건까지 올라갈 듯하다.둘째, 각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쓴 것도 경기 하강의 낙폭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1분기까지 세계 50개 국가가 경기부양에 쓴 돈을 모두 합하면 무려 3조 달러에 이른다. 물론 이 중에는 2010년 이후에 투입할 금액을 포함한 경우도 있어, 실제로 2009년에 투입한 금액은 이보다는 적다. IMF 조사 결과를 보면, G20 국가가 2009년에 경기부양으로 투입한 재정지출 규모는 평균 GDP의 2퍼센트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경기부양에 지출한 비율이 더 높다.
중국 정부는 2010년까지 경기부양책으로 4조 위안(약 661조 원)을 사용하기로 했고, 중국 은행들은 2009년에 9조 5천억 위안 이상의 자금을 신규 대출했다. 이 대출 규모는 2008년 규모의 갑절이 넘는다. 그리고 대출 금액의 95퍼센트 이상이 부동산·에너지·인프라 등에 투자하는 국영기업 등 대기업으로 흘러 들어간 듯하다. 이처럼 투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중국의 2009년 GDP 성장률은 8.7퍼센트에 달했다.
또, 중국 정부는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구입할 때 보조금을 주는 자덴샤샹家電下鄕·치처샤샹汽車下鄕 같은 정책으로 소비를 촉진해 기업들을 지원했다. 다른 나라 정부들도 자동차와 주택 구입 때 세금 감면으로 기업 매출을 늘려주는 방식의 경기부양책을 썼다.
3 조성 등으로 이번 경제 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조선·해운·건설업을 지원했다. 또, 미분양 주택 구입자 양도세 감면, 자동차 구입시 세금 감면 등으로 건설사와 자동차 기업의 이윤을 지원했다. 덕분에 2009년 한국 자동차 내수 판매는 2008년보다 20퍼센트 정도 증가했다. 4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4대강 사업, 보금자리주택 건설, 선박펀드이처럼 사회기반시설에 대규모로 투자하거나 보조금으로 내수를 늘리는 방식의 경기부양책은 국민 세금으로 기업 이윤을 지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각국 정부가 시행하는 경기부양책의 본질은 기업 이윤 지키기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수만 명씩 해고돼 실업률이 10퍼센트 가까이 오르고 실질임금이 삭감됐다. 물론 중국처럼 상대적 고성장을 경험하는 곳에서는 고용과 임금 사정이 위기 전보다 나빠졌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실업률은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실질임금은 삭감됐다.
이처럼 각국 정부가 기업 지원을 최우선으로 삼는 이유는 복지 확대나 임금 인상이 이윤의 일부를 노동자들에게 이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정부처럼 국가 부채가 적을 때는 국가가 빚을 내 임금을 지원하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 누가 국가 부채를 갚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곧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윤에 매기는 세금, 즉 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해 국가 부채를 갚으려 한다면 마찬가지로 이윤에 타격을 주게 된다.
각국 정부는 부유층에 부과하는 세금이나 임금이 인상돼 이윤이 줄면 더 많은 기업이 위기에 빠지고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거나 다른 나라로 옮겨가 경제가 더 큰 위기로 빠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대규모 국가 개입의 결과 1 – 국가 부채 급증과 경제 위기 고통 전가
국가가 대대적으로 개입해 급락하던 경제가 일단 진정되기는 했지만, 위기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미뤄진 것이고, 오히려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첫째, 각국이 대규모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으로 기업들을 돕고 경기 하락을 막았지만, 그 결과 국가 부채가 급증하면서 위기는 국가 부도 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2009년 미국, 유로화 사용 지역, 영국, 일본이 발행한 국채는 총 3조 9천4백5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규모는 1년 전보다 86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국채 발행 규모가 가장 많이 늘어난 나라는 미국으로 2조 1천1백억 달러어치를 발행했다. 이는 2008년에 발행한 8천8백60억 달러의 갑절이 넘는 수준이다. 유로화 사용 지역도 2009년 들어 1조 3천5백억 달러어치 국채를 발행했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미국 주정부 등이 발행한 3조 달러어치 지방채는 파산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2백60억 달러 적자가 발생해 2009년 7월에 재정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급증하는 국가 부채 때문에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미국이나 영국조차 몇 년 안에 현재의 최고 신용 등급이 박탈될 수 있다고 경고할 정도다.
주요 경제 대국 중에는 일본의 국가 부채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특히 2009년에는 1946년 이후 63년 만에 처음으로 국채 발행량(53조 엔, 약 660조 원)이 세수(36조 9천억 엔)를 초과했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 국가 부채는 2009년에 GDP 대비 218.6퍼센트까지 올라갈 듯하다. 국채 이자만 해도 10조 2천억 엔에 이르러 세수의 26.2퍼센트를 차지할 전망이다.
미국·영국·일본 등은 국가 부채가 어마어마해도 버틸 여력이 어느 정도 있지만, 국가 부채 비율이 높은 다른 나라들은 부도 위험이 훨씬 큰 듯하다. 2009년 9월 두바이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을 때 국가 부도 위험이 크게 부각됐고, 최근에는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의 부도 위험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 중 이탈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이번 위기에 대응해 금융권에 구제금융을 대거 투입하면서 국가 부채가 크게 증가했다.
한국도 경기부양책을 대거 시행하면서 국가 채무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 채무는 2010년에 사상 처음으로 4백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GDP의 40퍼센트 정도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어서 아직 정부가 더 개입할 여력이 있기는 하다.)
국가 부채가 급증하자 그것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도 커졌다. 특히 국가 지원을 많이 받은 은행가와 기업주 들이 국가 부채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계 각국의 지배자들은 국가 부채 문제 해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고 공무원 임금, 교육 예산, 연금을 삭감하는 등 공공부문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담뱃세·탄소세·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인상하고 있다.
5 교육 예산은 37조 7천7백57억 원으로 2009년 추경(39조 2천억 원)보다 1조 4천억 원이나 줄었다. 6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탄압으로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하고, 공적 보험료를 인상하고, 연금을 삭감하고, 2010년 예산에서 복지·교육 예산을 삭감했다. 2010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7조 2천9백29억 원으로 2009년 추경예산(7조 9천7천30억 원)보다 6천8백2억 원 줄었고,따라서 올해 2월 그리스 노동자들이 공무원 임금 삭감, 연금 삭감, 간접세 인상 등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해 총파업을 벌였듯이, 앞으로도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공산이 크다.
세계 각국의 지배자들은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경기부양책을 사용하며 경제에 적극 개입하면서도, 전부터 추진하던 ‘균형 재정’, 사유화, 구조조정, 노동 유연화, ‘작은 정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이들도 경제 위기 전만큼 신자유주의 정책을 확신하는 것 같지는 않다.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나오는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 지배자들은 이미 1970년대 위기 때 실패로 끝난 국가 개입 정책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속 추진하려고 한다. 게다가 이들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지워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기에 더더욱 국가 개입 강화가 공식 이데올로기처럼 되는 것에 반대한다. 국가 개입이 당연시되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생활 수준을 정부가 나서서 지키라고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을 고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각국의 국가 부채가 늘수록 위기 극복 비용을 다른 국가와 다른 나라 자본가들에게 떠넘기려는 경향도 강해질 것이다. 위안화 절상을 둘러싸고 중국이 미국·EU와 갈등을 빚고, 국가들이 서로 반덤핑 조처를 취하고, WTO에 제소하고,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이 느는 것을 보면 이런 경향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 국가는 자신의 힘을 과시해야 할 필요가 더더욱 커졌다. 오바마가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을 계승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황을 역전시킬 방안을 여러모로 모색하며 공세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1930년대처럼 국가 간 긴장이 증가하면 경기 회복 노력이 실패하고 결국 끔찍한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지배자들도 잘 알기 때문에 당분간은 경제 위기에 협력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그런 협력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가 보여 주었듯이 말이다.
대규모 국가 개입의 결과 2 – 위기 지속
마르크스가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이윤율 저하 경향을 지적했을 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위기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방법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첫째 방법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노동자 해고와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가치 중 더 많은 부분을 이윤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생산수단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투자금 중에서 기계와 원자재 등 생산수단에 투입되는 돈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이윤율 저하 경향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생산수단의 가치를 낮추면 이윤율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위기는 가치를 대거 파괴한다. 폐업한 기업의 공장에 있는 기계들은 녹슬어 쓸모 없게 되고 결국 사회 전체에서 생산수단의 가치가 파괴된다. 위기에서 살아남은 자본가들이 공장, 설비, 원자재를 헐값에 사들이면서 이윤율이 회복될 수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연간 3백만 달러의 이윤을 벌 수 있고 투자 자본이 1억 달러라면 이 기업의 이윤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에 새로운 소유주가 자본 가치 파괴 덕분에 그 기업을 1억 달러가 아니라 단돈 1천만 달러에 인수한다면 그 기업의 이윤율은 30퍼센트로 아주 양호해진다. 이 같은 메커니즘은 새로운 호황을 불러오는 강력한 동력이다.
경제 위기가 살아남은 자본가들의 이윤율을 회복시켜 주고 그들이 새로운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경제 위기를 거쳐 축적이 회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여전히 일하고 싶어하고, 사용할 기계와 원자재도 그대로 있고, 그 제품이 필요한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데, 많은 생산 영역이 갑자기 폐쇄되는 위기를 거쳐야만 생산이 다시 재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이해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물론 일부 우파 경제학자들은 위기가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위기의 결과가 대중에게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이니 그냥 감내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이에크는 국가가 개입해 시장을 왜곡하거나 임금 하락을 방해하지 않으면 위기는 저절로 해소된다고 주장했다. 정치인과 기업주 들도 이런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2008년 10월 부시 정부가 금융권에 7천억 달러를 투입하려고 했을 때 같은 공화당 의원 일부가 이런 논리를 펴며 정부 개입에 반대했다. 유명한 투기꾼 짐 로저스도 미국 정부가 AIG를 국유화하기로 했을 때 “미국 경제 전체가 파산하는 것보다 AIG를 파산시켜 2~3년간 고생하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시장의 문제 해결 능력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경향도 보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나이를 먹을수록 비교적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중요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라고 했다. 위기를 거칠 때마다 집중과 집적 경향은 강화된다. 일부 기업들이 다른 기업들을 인수하고 합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기업이 파산할 때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도 커진다. 거대 기업 하나가 파산하면 그 기업과 거래하던 다른 수많은 기업들도 위태로워져, 이들이 회생하기는커녕 경제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빠지게 된다. 1929년 대공황 때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 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이 다른 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을 부르자 위기가 저절로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했다. 결국 각국 정부들은 경제에 대규모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위기도 미국 정부가 리먼브러더스 같은 대형 은행이 파산하도록 놔뒀을 때 경제 전체가 파국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 줬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기업들을 지원해 대규모 파산과 경기 급락을 막는다. 그러나 이는 자본의 파괴를 막는 것이기도 하므로, 이윤율 회복이 힘들어져서 흔히 경제 위기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최근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된 금융 부실은 여전히 널리 퍼져 있고 심지어 커지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이제 프라임 모기지로 전이되고 있다. 2009년 3분기에 60일 이상 프라임 모기지를 연체한 경우가 83만 8천 건인데 이는 2008년 3분기보다 1백18퍼센트나 급증한 것이었다. 그래서 2009년 12월 미국 정부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지원 한도(각각 2천억 달러)를 없애고 무제한 지원하기로 했다. 또, 미국에서는 주택 시장을 넘어 상업용 부동산(호텔, 병원, 빌딩, 쇼핑몰 등) 부실도 크게 증가했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2007년 정점에 달했을 때보다 2009년 10월 44퍼센트 이상 하락해 주택 시장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상업용 모기지 관련 채권 총액은 3조 4천8백억 달러(주택 모기지의 3분의 1)인데, 2009년 들어 연체율(7.91퍼센트)이 여섯 곱절로 급등했다. 상업용 모기지는 2005년 무렵부터 대폭 증가해, 2010년부터 대출을 상환하거나 새롭게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말미암아 그동안 상업용 모기지에 투자를 집중한 중소 규모 은행들이 연쇄 파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파산한 미국 은행은 이미 1백30개를 넘어섰는데,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이미 2009년 12월에 “은행 파산은 내년[2010년]에도 계속 가속될 것”이라며 FDIC 예산을 50퍼센트 증액했다.
유럽 은행들은 최근 위기로 미국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고, 자본을 더 많이 확충해야 하는 상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EU 지역 국가들은 이미 미국(7천억 달러)보다 많은 2조 달러를 금융권에 투입한 상태다. 특히, 서유럽 은행들은 동유럽으로 대출을 많이 해 줘서 큰 부실을 안고 있다. 서유럽 은행들이 동유럽에 대출한 액수는 총 1조 5천억 달러(2008년 말)로 동유럽 전체 차입액(1조 7천억 달러) 중 91퍼센트를 차지한다. 동유럽 국가들의 부도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서유럽 은행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독일·프랑스 은행들은 국가 부채 급증으로 국가 부도 위험이 커지고 있는 스페인과 그리스에 대출을 많이 해 줬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2010년에 유럽발 2차 금융 공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요컨대 2008년 말 이후 대규모 국가 개입은 경제가 파국으로 빠지는 것만 막으면서, 위기를 낳은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하고 그저 지연시키고 있을 뿐이다.
투자 부진과 실업률 증가
이렇게 위기가 질질 끌며 계속되고 있으므로 세계 주요국에서 투자 부진으로 실업률이 계속 오르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가동률은 2006년 12월에 80.9퍼센트까지 올라갔지만, 위기가 시작되면서 떨어지기 시작해 2009년 6월에는 65.1퍼센트까지 떨어졌다가 12월에는 약간 올라 68.6퍼센트가 됐다. 수요가 늘어나더라도 가동률을 올려 대응할 수 있으므로 당분간 신규 투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11 2010년에도 세계 각국에서 실업률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2009년 일본 실업률은 1953년 이후 최대인 5.7퍼센트를 기록했고, 민간 기계수주액은 2008년보다 32퍼센트 하락했다. 일본은 기업 투자가 줄면서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
미국과 유로화 사용 지역의 공식 실업률은 10퍼센트 정도인데, 2007년 12월부터 미국에서만 총 7백3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2009년 11월 〈뉴욕타임스〉는 “구직 활동을 포기한 사람과 파트타임 근무자를 포함하면 미국의 10월 실질실업률은 17.5퍼센트”라고 보도했다.한국에서도 2009년 1∼9월 실질 설비투자액은 60조 5백29억 원으로, 2008년 같은 기간(71조 3백56억 원)보다 15.5퍼센트나 줄었다. 이는 “IMF 위기” 때인 1998년(-44.9퍼센트) 이후 최대 감소율이다. 그런데 2009년 말 한국 기업들의 예금은행 총저축은 2백15조 7백97억 원으로 2008년 1백77조 3천3백64억 원보다 21.3퍼센트, 즉 37조 7천4백33억 원 늘었다. 이는 2000년(26.9퍼센트) 이후 최대 증가율이며 증가 금액은 사상 최고다. 특히, 기업들의 1년 이상 저축성 예금은 1백49조 1천9백98억 원에서 1백83조 4천3백43억 원으로 22.9퍼센트 증가했다.
한편, 세계 경제 성장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에서는,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은행의 대출 증가로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거품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9년 11월 중국 도시 70곳의 부동산 가격은 2008년보다 5.7퍼센트 상승해 2008년 7월 7퍼센트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최대 폭으로 뛰었다. 2009년 2~3분기에 2천억 달러 정도 유입된 핫머니(투기성 단기자금)도 자산 가격 상승과 과잉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 성장과 자산 가격 상승은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내수 기반은 매우 취약해서 경기부양책이 줄어들면 큰 위기가 닥칠 공산이 크다. 중국의 내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밖에 안 된다. 미국의 내수 비중이 GDP의 3분의 2이고 전 세계 평균이 GDP의 2분의 1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내수 비중은 매우 낮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부동산 신규 대출을 제한하고 부동산 거래세를 강화하는 등 부동산 거품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철강·자동차·조선·비철금속·건자재 등 과잉 투자된 산업의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경제를 붕괴시킬 수도 있어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강력하게 쓰지도 못한다.
한국 경제 상황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큰 경제답게 최근 위기 때 경기가 가장 많이 하락하다가 세계경제가 진정되자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특징을 보였다. 금융 공황 이후 한국 경제가 보인 특징은 첫째, 다른 나라들과 달리 환율 변동이 극심했다. 2008년 4분기부터 급락하기 시작한 한국 경제는 2008년 9월과 2009년 3월에 ‘위기설’이 퍼졌다. 특히, 전 세계적 금융 위기와 무역수지 적자, 대규모 단기 외채, 외국인 자금 회수로 외환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컸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외국인”(실제로는 한국인 자본인 경우도 적지 않다)이 자금을 회수했는데 2008년에 주식을 33조 원 순매도하며 외환 위기 재발 가능성을 높였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외국인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 자금이 한 번에 빠져나가면 환율이 급등하기 쉽다. 그러나 세계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2009년 들어 외국인들은 31조 6천억 원을 순매수해 2008년 매도분을 거의 다 사들였다. 한국 채권도 50조 원 이상 사들였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빨리 줄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증대하고(5백61억 달러), 외국인 투자가 증가해 환율은 다시 금융 공황 전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12월 말 외환보유액은 2천7백억 달러이고 유동외채는 1천8백57억 달러로, 2008년보다 외환보유액은 7백억 달러 정도 늘고 유동외채는 1백억 달러 정도 줄어 2009년 초보다 나아진 상태다. 물론 한국 정부도 이 과정에 깊이 개입했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권에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미국·일본·중국 등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안정을 되찾았다. 특히, 미국에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주지 않으면 외환보유액 2천억 달러를 회수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 세계 금융 위기가 재발하면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가 환율이 급등하는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2009년 초에도 그랬듯이 환율 급등은 석유·가스·곡물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가 오를 것이다.
둘째, 중국 경제의 고성장(GDP 8.7퍼센트 성장)으로 중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아시아 나라들의 경제 상황이 다른 지역보다 더 나았고, 한국도 같은 혜택을 봤다. 2009년 2∼3분기 평균 성장률은 대만 2퍼센트, 한국 2.8퍼센트, 싱가포르 4.2퍼센트 등으로 미국 0.3퍼센트, EU 0.1퍼센트보다 꽤 높았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중 자본재가 55퍼센트, 원자재가 39퍼센트, 소비재가 6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중국이 투자를 대폭 늘린 것이 한국의 수출에 큰 도움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또, 중국 정부가 시행한 자덴샤샹·치처샤샹 같은 내구재 소비 촉진 정책도 한국 기업들의 수출 감소를 줄여 줬다. 2008년 대비 2009년 한국의 전체 수출액이 14퍼센트 감소하는 동안 대중국 수출액은 5퍼센트 감소에 그쳐, 다른 지역 수출 감소율을 부분적으로 상쇄했다.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덕분에 한국의 주요 수출 부문인 부품·소재산업, 자동차, 통신기기, 철강, 기계, 디스플레이 패널, 반도체에서 수출이 덜 줄어들 수 있었다.
2009년 상반기 한국 수출은 2008년 상반기보다 22.8퍼센트 줄었으나 하반기에는 2008년 하반기보다 5.1퍼센트 줄어, 2009년 연간 수출은 14퍼센트 줄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2008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급감했으므로 2009년 하반기 수출 실적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수출이 줄어든 것은 2001년 이후 8년 만이지만, 2009년 초에 수출이 30퍼센트 급감한 것과 비교하면 감소폭은 줄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패널, 휴대폰 등 IT 부문 수출은 약 7퍼센트, 자동차 수출은 21퍼센트 감소했다.
13 특히, 상위 대기업들이 더 큰 혜택을 봤는데, 삼성전자의 2009년 순이익은 2008년보다 80퍼센트 가량 늘어 10조 원에 이를 듯하다. 포스코(3조 3천86억 원), 현대차(2조 8천4백억 원), LG전자(2조 1천5백67억 원)도 순익을 수조 원씩 낼 듯하다. 현대중공업·LG화학·LG·현대모비스·SK텔레콤도 2009년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이 이미 조 단위를 넘어섰고, 기아차·KT·현대제철·SK에너지도 2009년 순이익이 1조 원이 넘을 듯하다. 경제 위기에도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의 실적은 꽤 좋았다.
셋째, 2009년 3월 외환 위기 재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천5백70원까지 급등하기도 했는데, 그 덕분에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큰 혜택을 봤다. 가격 경쟁력이 강화돼 수출이 덜 줄었을 뿐 아니라 원화 수익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장기업 1천5백4개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은 각각 18조 3천억 원과 18조 원으로 2008년 3분기보다 27.9퍼센트(4조 원), 2백84.3퍼센트(13조 3천억 원) 급증했다. 상장사들의 부채 비율도 2008년 9월 1백1퍼센트에서 2009년 9월 98퍼센트로 줄었다.넷째, 그러나 조선·해운·건설업의 상황은 매우 나빠졌고 2010년 전망도 좋지 않다. 미분양이 늘어 건설업체들은 여전히 고전 중이고, 조선·해운업은 세계 교역량 감소에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해운업계 1위인 한진해운의 2009년 영업적자는 1조 원에 육박할 듯하다. 중소 해운업체들의 부도는 이미 시작됐는데, 1백80여 해운사 중 이미 스물 두 곳이 폐업했고 워크아웃 절차를 밟는 업체가 네 곳이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은 2008년에 총 4백억 달러가 넘는 물량을 수주했지만 2009년에는 간신히 40억 달러를 넘겼다. 규모가 제법 큰 중소 조선사 여덟 곳 중 여섯 곳이 긴급 지원, 워크아웃, 채권단 공동관리 상태다.
조선·해운·건설업체들의 부도 위기는 금융권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조선업 관련 대출, 보증, 유가증권 매입 등에 들어간 은행권 자금이 70조 원이고, 해운업에는 50조 원 이상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을 기준으로 금융권이 건설 기업에 대출한 돈은 82조 4천2백56억 원으로 2008년 12월 말보다 고작 7천1백19억 원 줄었다. 게다가 대출을 담보로 발행한 어음 잔액도 2008년 말 16조 9천억 원에서 2009년 11월 말 18조 1천억 원으로 1조 2천억 원 늘었다.
금융권의 위기는 순식간에 경제 전체로 확산되므로 이명박 정부는 이를 막고자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보금자리주택을 건설하고, 선박펀드를 조성해 조선·해운·건설업을 지원하는 한편, 중소 규모 해운·조선 업체들을 통·폐합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수출도 43.5퍼센트 감소하고 내수 판매도 9.6퍼센트 감소한 GM대우는 GM 본사나 산업은행이 지원하지 않으면 2010년에 부도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동부·유진·두산·애경·금호 등 위기 직전에 대규모로 투자한 기업들도 부도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2010년에는 조선·해운·건설업과 부도 위험이 높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 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
다섯째, 기업들의 실적이 나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가 단기이긴 하지만 ‘희망근로’ 25만 개를 포함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33만 2천 개 늘린 덕택에 실업률(2009년 12월 말 3.7퍼센트)이 크게 늘지 않았다. 2009년에 실업률이 증가한 이유는 주로 자영업 종사자들이 실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생각만큼 많이 일자리를 잃지는 않았다. 물론 실질임금은 삭감됐지만 말이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실업률이 1997년보다 4.4퍼센트포인트 급등하며 7퍼센트를 기록하고, 월평균 취업자 수(전년 동월 대비)도 1백27만 6천 명이나 줄었던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경기가 좀 나아졌을 때 기업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는 2010년에 산업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노동자 해고가 급증하고 노동자들의 저항도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맺으며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세계경제는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각국 정부가 적극 개입해 대부분 경기 하강이 멈춘 상태다. 각국 지배자들은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을 사용해 막대한 부채를 지며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해고, 임금 삭감, 연금 삭감,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추진해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 경제도 2009년 2분기부터 소비, 투자, 수출, 광공업 생산이 상승해 3분기 들어 플러스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금융 지원, 수출의 선방(특히 대중국 수출)이 큰 구실을 했다. 이 덕분에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대체로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정부와 친기업적 경제 연구소들은 2010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4∼5퍼센트대로 전망한다. 이는 2008년 금융 공황 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은 2009년의 선방이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책 덕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동안 위축된 경제가 2010년에는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IMF나 OECD도 2010년에 미국 경제가 2퍼센트 내외로 성장하는 등 세계경제가 3퍼센트 성장해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출구 전략’(금융 공황으로 내렸던 금리를 인상하고 금융권에 대출해 준 돈을 회수하는 등 긴급 대책을 종료하는 것) 시행을 미뤄야 한다며 곳곳에 널린 부실 폭탄을 걱정한다. 〈중앙일보〉도 “[한국의] ‘5퍼센트 성장’은 그저 전망일 뿐이다. 97~99년에 그랬듯이 경제 위기 때의 전망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 지난달 KDI가 5.5퍼센트 전망을 내놓은 직후 두바이 사태가 터진 데서 알 수 있듯 세계경제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며 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없다고 했다.
대외의존도(GDP 대비 수출입 비중)가 80퍼센트가 넘는 특성상 한국 경제는 2010년에도 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 등 주요국 경제 상황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 봤듯이, 세계경제에는 지뢰가 많이 깔려 있기 때문에 2010년에 경제가 다시 한 번 하락할 수도 있다. 국가 부채가 급증하며 생기는 세계 각국의 국가 부도 위기, 미국·유럽연합의 금융 부실, 일본의 디플레이션, 중국의 거품 위기는 매우 큰 위험 요인이다. 이 중 하나라도 폭발하면 한국의 수출이 증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2009년에 한국의 수출을 떠받쳐 준 중국마저 타격을 입는다면 수출이 급락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다른 나라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위험 산업에 지원을 늘리면서 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한편, 급증하는 재정 지출을 줄이려고 공공부문을 공격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 공공부문에서 여러 투쟁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또 건설·해운·조선업이나 GM대우처럼 위기에 빠진 산업과 대기업들에서 대량 해고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리 되면 노동자 투쟁이 2009년보다 격렬하게 벌어질 수 있다.
세계 지배자들의 경제 위기 대응 전략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부자들의 사회주의”다. 그러나 자신의 노동으로 사회를 떠받쳐 온 평범한 사람들이, 자본가들이 집단으로 야기한 위기의 대가를 치를 이유는 전혀 없다. 자본가들의 경제 위기 책임 전가에 맞서 곳곳에서 벌어질 투쟁에 연대하고 서로 다른 투쟁들을 단결시키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생활 수준을 지키는 요구를 더 많이 쟁취할 수 있고, 결국 생산과 소비가 이윤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를 위해 결정되는 사회를 위해 노동계급이 투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
- 이윤율이 떨어지면서 막대한 자금이 미국 주택시장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 쏠리게 된 좀더 자세한 과정은 정성진 엮음,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 2009를 참조하시오. ↩
- 권다희, ‘美 올해 주택압류 300만~350만 예상’, 〈머니투데이〉(2010.1.14). ↩
- 산업은행, 캠코(자산관리공사)가 자금을 대고 민간 자금도 모아 해운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 선박펀드는 해운사들의 배를 구입한 후 다시 빌려 주는 형식Sale&Lease back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해운사들에게 이자를 받는다. ↩
-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자동차통계월보〉(2010년 1월). ↩
- 범현주, ‘서민 위한 예산 대폭 삭감됐다’, 〈내일신문〉(2009.11.13). ↩
- 이정희, ‘교육예산 헐어 4대강 살리기라니’, 〈미디어오늘〉(2009.10.7). ↩
- 조셉 추나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 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마르크스21》 4호(2009년 가을), 36쪽에서 재인용. ↩
- 김지훈, ‘짐 로저스, “AIG 망하게 둬라”’, 〈연합뉴스〉(2009.3.4). ↩
- 정남구, ‘미 재무부, 페니메이·프레디맥 무제한 지원’, 〈한겨레〉(2009.12.28). ↩
- 공수민, ‘FDIC, “美 은행 파산 최악 아직 안 지나”’, 〈아시아경제〉(2009.12.15).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를 보면, FDIC는 2010년 예산을 26억 달러에서 40억 달러로 늘리고 이 중 25억 달러를 파산 은행 자산 인수에 투입하기로 했다. ↩
- David Leonhardt, “Broader Measure of U.S. Unemployment Stands at 17.5%”, New York Times (2009.11.6). ↩
- 배수연, ‘美, 한국과 통화스와프 체결한 진짜 속내는’, 〈연합인포맥스〉 (2008.10.30).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는 “미국이 달러화와 원화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않으면 외화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나라는 보유중인 TB(Treasury Bond)[미국 국채]를 내다 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고 한다. ↩
- 이한나, ‘금융 위기 이후 상장기업 차입금 의존도·현금 선호 여전’, 〈매일경제〉(2009.12.11). ↩
- 표준화물선 환산톤수(Compensated Gross Tonnage). 실질적 공사량을 나타낼 수 있는 톤수로 조선업계에서 많이 사용한다. ↩
- 고현곤, ‘[데스크의 현장] ‘내년 5% 성장’ 너무 믿지 말자’, 〈중앙일보〉 (2009.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