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한국 경제 ②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
〈시리즈 기획 한국 경제〉는 한국 경제의 쟁점들을 네 번에 걸쳐 다루는 기획이다. 5호에 실린 ‘한국 경제 불안정한 회복의 이면’ 에 이어, 이번 호에는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 를 싣는다. 다음 호에서는 한국 경제 대안을 둘러싼 논의를 비판 적으로 검토할 것이고,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는 박정희 개발독재 를 다룰 것이다.
1997년 위기의 충격으로 한국 경제는 그 전과 달리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다.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며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임금도 꾸준히 상승하던 상황(특히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은 1997년 경제 위기와 함께 끝나 버렸다.
1997 년 위기 전 막대한 차입과 투자 증대로 생산을 확대하던 한보·기아·대우 같은 대기업들이 부도를 맞았고, 여기서 발생한 막대한 부실 채권 때문에 그동안 사실상의 준국가기구로 여겨지던 은행들이 인가 취소나 합병 등으로 사라졌다. 이제 경제에서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1 이것은 2000년 국내총생산(이하 GDP)의 32.6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다. 결국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위기에 책임이 있는 기업과 금융기관을 구제해 준 것이었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해 이들을 구제했는데, 2001년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액은 모두 1백55조 원에 이르렀다.2 1997~2001년 전체 금융기관 종사자 수는 31만 7천여 명에서 21만 8천여 명으로 31.1퍼센트 줄었다. 3 공식 실업률은 곧 낮아졌지만, 구직 포기자나 취업 준비생이 증가하면서 체감 실업률은 올라갔고,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이들의 처우가 더욱 나빠지면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그 대가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대규모로 구조조정되면서 1998년에만 실업자가 92만 명 늘어 실업률은 공식 수치로도 7퍼센트(1백49만 명)까지 치솟았다. 예를 들어, 1997년 말 11만 4천여 명에 이르던 일반은행의 임직원 수는 2004년 6월 말 6만 8천여 명으로 40퍼센트나 줄었다.표1. GDP와 주요 지출 부문별 연평균 증가율 추이(단위: 퍼센트)
GDP | 설 비투자 | 건설투자 | 민 간소비 | 수출 | |
1972~1979 년 | 8.8 | 23.3 | 16.9 | 7.0 | 20.0 |
1980~1989 년 | 8.7 | 11.4 | 10.6 | 7.8 | 11.6 |
1990~1997 년 | 7.2 | 7.8 | 7.1 | 7.0 | 15.6 |
1998~2007 년 | 4.7 | 5.4 | 0.7 | 3.8 | 11.1 |
자료: 한국은행, ECOS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수출을 제외한 경제 전반의 상황이 악화했다. 1970년대 이래로 연평균 7~8퍼센트이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97년 위기 이후 5퍼센트 수준으로 하락했다. 민간소비 증가율도 떨어졌고, 설비투자는 감소한 데다가 급등락하면서 불안정성이 커졌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한국 지배자들이 내놓은 해법은 경제 성장률 높이기였다. 성장률이 높아지면 고용과 임금이 늘어 대중의 삶도 나아진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고, 이명박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친기업’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경제성장이 없으면 분배를 지속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성장 전략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전략들은 더는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자본주의와 공존하며 악화한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고 내놓은 해법이었다.
이 글에서는 경제성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저축과 투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1997년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의 투자 부진이 금융화 때문이라는 금융화론의 약점과 ‘성장과 복지의 동반 성장’이라는 개혁주의 전략의 한계도 살펴볼 것이다.
저축과 투자의 불균형
그림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총투자율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1990년대 초반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GDP의 35퍼센트를 넘던 총투자율은 위기를 거치며 1998년에 25퍼센트까지 떨어진 뒤, 약간 회복해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전까지 30퍼센트 전후를 기록했다. 총저축률도 하락했지만 총투자율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저축과 투자의 괴리는 생산물이 국내에서는 생산된 만큼 팔리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 러나 경제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생산물이 모두 팔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생산물을 판매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노동자를 해고할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격차가 지속되면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자는 더 늘어나 경제는 불황에 빠질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을 모두 소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체 생산물 중 일부는 자본가들의 몫인 이윤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과 소비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으려면 자본가들이 벌어들인 이윤을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
4 1997년 위기 뒤에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서 저축과 투자의 괴리를 메울 수 있었다. 위기 직후부터 2000년까지는 미국의 IT 호황에 따른 대미 수출 증가 덕분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IT 거품이 꺼진 2001년 뒤에는 대중국 수출이 급증한 덕분이었다. 그 결과, 2000년에 전체 수출의 21.8퍼센트를 차지하던 대미 수출은 2007년에 12.3퍼센트까지 떨어졌지만, 대중국 수출은 2000년 10.7퍼센트에서 2007년 22.1퍼센트로 올라갔다.
물 론 한 국가 수준에서 보면 생산과 소비 사이의 격차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수입보다 더 많이 수출하는 것이다.소 비 감소의 상당 부분이 순수출로 메워지면서 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02년 36.6퍼센트에서 2007년 47.7퍼센트까지 치솟았고, 그 결과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5 중국은 중요한 예외다. 2000년부터 중국에서는 투자율이 계속 상승해 GDP의 45퍼센트라는 엄청난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럼에도 총투자는 총저축에 못 미쳐, 해마다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그 런데 그림2를 보면 투자율의 감소가 단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00년대에 주요 산업국들의 투자율은 대체로 1990년대보다 감소했다.한국·중국·일본·독일처럼 몇몇 나라들은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모든 나라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나라가 수출을 수입보다 더 많이 하려면 다른 나라는 그만큼 소비해야 한다.
2000 년대에 이런 소비 시장 구실을 한 곳이 바로 미국이었다. 2000~01년 IT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의 투자율은 하락하는 듯하다가 다시 상승해 2000년대에도 1990년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낮았고,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 해마다 GDP의 5퍼센트 정도인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봤다. 결국 미국의 소비자들이 자기 소득보다 더 많이 소비해서 전 세계 주요국에서 벌어진 저축과 투자의 괴리를 메워 준 것이다.
이 런 ‘세계적 불균형’이 한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 경제들, 특히 일본·중국·한국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해마다 수천억 달러씩 미국 재무부와 은행들에 빌려 줬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 경제 위기를 겪으며 채무자보다 채권자인 편이 더 낫다는 점을 명심하게 됐다. 또, 미국에 계속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해 수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이 렇게 미국으로 흘러간 돈은 다시 은행 융자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덕분에 미국 소비자들은 중국 기업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수입한 기계와 설비로 만든 제품을 계속 구매할 수 있었고, 미국 기업들도 투자와 판매를 늘리며 득을 볼 수 있었다.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간 돈의 일부는 2001년에 IT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는 주식 시장으로 몰렸고, 주식 시장이 붕괴한 뒤에는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 처음에는 주식 시장에서, 나중에는 부동산 시장에서 돈을 번(또는 벌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자 세계경제는 잘 돌아가는 듯했다.
그 러나 소득을 넘어서는 소비를 유지하며 굴러가는 부채 경제가 무한정 유지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늘어나는 대출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에서 거품이 터지면서 2008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폭발했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 불균형’ 덕분에 세계경제 불황의 도래가 지연됐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과정에서 한국도 수출을 크게 늘려 소비 감소분을 메우면서 세계적인 거품 형성에 한몫했다.
기업 저축 증가 여기서 우리가 더 살펴봐야 할 점은 총저축의 구성이다. 그림3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997년 위기 이후 한국의 저축에서 기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이것도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이런 과잉 저축의 진정한 주범은 기업 부문이다. 2000~04년에 G6[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영국, 이탈리아]의 민간 기업들은 1조 달러 이상을 덜 투자했고, 이 때문에 기업 부문 순 저축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뀌었다. … 기업 저축의 증가세는 진정 세계적인 현상으로서 3대 경제권인 북미, 유럽, 일본을 포괄하고 있다.
그 림1과 그림3을 함께 보면, 한국에서 기업 저축은 늘었지만 투자는 줄었다는 것, 다시 말해 기업들이 과거에 벌어들인 이윤을 이전만큼 재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는 기업의 부채비율(표2)을 봐도 알 수 있는데, 1997년 경제 위기 전까지 한국 기업들은 벌어들인 이윤을 계속 투자에 사용해 부채비율이 4백 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런데 위기 이후 IMF의 권고 기준인 2백 퍼센트 이하로 떨어졌고, 2007년에는 1백 퍼센트 정도로 급감했다. 경제 위기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중소기업들조차 부채 비율을 꾸준히 낮췄는데, 미국과 일본 제조업체들의 부채비율 1백40퍼센트보다도 낮았다. 위기 이후 기업들은 빚을 갚는 데 집중한 것이다.
표2.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단위: 퍼센트)
1997 | 1999 | 2001 | 2003 | 2005 | 2007 | |
전 산업 | 424.64 | 235.13 | 195.58 | 131.31 | 110.86 | 106.47 |
제조업 | 396.25 | 214.66 | 182.20 | 123.39 | 100.90 | 97.83 |
(중소기업) | 418.40 | 232.38 | 144.74 | 147.57 | 140.90 | 129.08 |
△자료: 한국은행, ECOS
표3. 은행의 가계 대출과 기업 대출(단위: 조 원)
년 도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가 계 | 75.1 | 105.2 | 154.3 | 217.1 | 247.6 | 272.0 | 300.5 | 340.8 | 358.4 |
(비 중) | 0.41 | 0.50 | 0.74 | 0.89 | 0.89 | 0.96 | 1.00 | 1.00 | 0.84 |
기 업 | 182.6 | 210.3 | 208.3 | 242.7 | 278.1 | 282.6 | 299.6 | 341.5 | 424.8 |
중 소 기업 | 78.6 | 130.2 | 145.0 | 184.7 | 237.7 | 243.7 | 255.8 | 300.9 | 368.9 |
△자료: 금융감독원, 은행경영통계
그 러면 기업들은 왜 저축은 늘리고 빚은 갚으면서 투자를 늘리지 않는 것인가?
한 국 진보진영의 일부는 단기 수익성만 추구하는 경제의 금융화로 은행의 자금 중계 기능(기업 대출)이 무너졌고, 기업들은 주주의 요구에 따라 배당을 확대했고, 단기 수익만 추구하면서 투자를 줄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 금융화론자들이 은행의 자금 중계가 잘 되는 나라로 지목하는 독일조차 그림2에서 살펴봤듯이 투자가 감소했다.
은 행들의 기업 대출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표3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997년 위기 이후에도 기업 대출은 꾸준히 증가했다. 물론 가계 대출이 더 빨리 늘면서 2005년에는 가계 대출이 기업 대출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그 뒤 기업 대출이 더 빨리 늘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게다가 중소기업도 충분히 대출 받고 있었다. 1999년에는 기업 대출의 43퍼센트를 차지한 중소기업 대출이 2007년에는 87퍼센트까지 올라가 기업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림4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업 설비투자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약 3퍼센트로 떨어졌다가 1997년 위기 뒤에 오히려 올라 2007년에는 약 7퍼센트를 기록하면서 1990년대 초반과 비슷해졌다.
9 그림5를 보면, 1997년 위기 이후 기업들의 배당금 지급이 늘어 영업잉여의 15퍼센트 수준까지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화’ 이전 시기라고 볼 수 있는 1970년대에는 못 미친다. 게다가 배당금과 이자 지급을 합한 금융지출을 보면 그 비중은 1997년 위기 이후 급격히 하락해 영업잉여의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배 당을 늘리라는 주주의 압박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꺼린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금 융지출이 줄어든 것은 표2에서 본 것처럼 부채비율을 낮춘 결과인데, 기업들은 줄어든 이자 비용으로 배당금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배당금 지급이 늘어난 것은 주가를 올려서 주주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있고, 경영자들도 스스로 스톡옵션이나 배당 등으로 한몫 챙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가를 높게 유지해 두면 기업에 자금이 필요할 때 더 유리한 조건에서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했을 것이다.
아 무튼 영업잉여 대비 금융지출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기업들이 전보다 투자를 줄이는 이유가 금융자본의 입김 때문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 준다. 한편, 일부 금융화론자들은 한국에서 금융자본이 주로 외국자본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배당이나 이자로 지급된 돈이 국외로 유출되면서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림6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997년 위기 이후 배당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서 2007년에는 배당수지만으로 54억 달러가 국외로 유출됐다. 그러나 2008년에는 한국 자본들이 외국에서 배당금을 많이 받으면서 배당수지 적자가 16억 달러로 크게 감소했다. 이자수지는 이미 2001년부터 흑자였고, 이자와 배당을 포함한 소득수지는 2002년부터 흑자였다. 이는 한국 자본의 해외 투자가 늘어난 결과다. 이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생산한 부를 외국 금융자본에 단순히 빼앗기기만 해서 투자 재원이 부족하다는 일부 금융화론자들의 ‘국부 유출’ 주장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지 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봤듯이 금융화론의 핵심 약점은 은행들이 왜 주로 단기 수익성을 추구하는지, 기업들이 왜 투자를 늘리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금융화론자인 장하준 교수는 모든 규제를 완화하라고 요구하는 우파들을 “돈 벌 일이 적어지니까 규제도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것”이라고
이 주장을 그대로 장하준 교수에게 되돌릴 수 있다. 즉, 금융자본이든 산업자본이든 이윤을 충분히 벌 수 있는 사업 분야가 많다면 투자를 꺼리고 단기 수익성이나 안정성만 추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수익성 있는 사업이 점점 줄어 은행들은 기업 대출을 줄이고 기업들은 이윤을 투자하지 않고 쌓아두면서 금융부문이 점점 비대해지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즉, 2000년대 한국에서 기업 투자가 부진했던 진정한 이유는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총투자에 대한 이윤의 비율) 하락이었다.
12 그 후에도 이윤율이 크게 회복되지 않아 투자가 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2에서 봤듯이 주요 산업국들의 투자율이 떨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윤율은 1997년 경제 위기 전까지 하락했고 그 후에도 거의 회복하지 못했다.
실 제로 선진국 경제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평균이윤율이 하락했다.제조업 부문의 이윤율이 1970년대 초반 평균 16퍼센트에서 1980년대에는 평균 11퍼센트로, 1996년에는 평균 5.4퍼센트로 저하했[다.] … 이윤율은 1996년에 바닥을 친 다음, 1997년 위기 이후 회복되어 2000년에는 10퍼센트였다. 하지만 이윤율은 2001년 이후 다시 하락하여 2003년에도 8.3퍼센트로, 1970~2003년 동안 최고점인 1972년 19.5퍼센트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한 국에서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이윤율이 약간 상승한 것은 무엇보다도 총생산물에서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몫(마르크스의 용어로 착취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림7에서 보듯이 1996년 GDP의 63퍼센트까지 올라간 노동소득분배율은 경제 위기 후 대규모 해고와 임금 삭감 탓에 2000년에 58퍼센트로 급격히 떨어졌다. 전체 취업자 중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지는데도 말이다.
14 착취율 증가 덕분에 이윤율 하락세가 멈췄고 심지어 약간 회복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이 투자를 충분히 늘릴 만큼은 아니었다.
노동소득분배율보다 마르크스의 착취율 개념에 좀더 가깝게 계산한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여 준다. “1997년 위기 이후 경기 회복을 가능하게 한 이윤율의 상승은 전적으로 이윤 몫의 증가, 즉 착취율의 상승에 기초했”다.한 편, 착취율이 증가하면 전체 생산물에서 노동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몫이 줄어 민간소비가 감소한다. 그래서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키려면 투자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이 투자를 기피하면 침체 가능성이 커지는데, 금융 부문 등에서 거품이 형성되면 이런 위험을 가릴 수 있다.
한국의 부채 경제
앞에서 소비 확대와 부동산 거품 같은 미국의 부채 경제가 어떻게 전 세계의 ‘과잉 저축’을 흡수했는지를 간략히 살펴봤다. 한국 정부도 국내 차원에서는 투자 감소를 만회하려고 대출을 늘리는 부채 경제를 시행했다. 물론 미국의 부채 경제보다야 효과가 훨씬 작았지만 말이다.
1998 년 생산과 소비가 급감한 한국은 1999년부터 미국 IT 호황 덕분에 수출이 급증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면서 경기가 회복하기 시작했다. 1999년 들어 정부가 증시 부양책을 집중적으로 폈고 해외자본이 주식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주가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해, 1997년 2백80포인트 대까지 떨어졌던 종합주가지수는 1999년에 1천 포인트 대로 올랐다.
미 국 IT 열풍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벤처 붐이 일었다. 마땅한 자금 운용처를 찾지 못한 돈이 코스닥 시장에 몰렸다. 각종 투자펀드와 부자들이 앞다퉈 IT 벤처 기업 주식을 사들이자, 당시 아무런 이윤도 만들어내지 못하던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했다. 1998년 말 75.18포인트였던 코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292.52로 치솟았다.
그 러나 2000년 후반 미국에서 닷컴 기업과 첨단기술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한국의 코스닥 시장도 급락했다. 그런데 세계경제에 위기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한 2001년에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충격을 받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가계신용대출과 소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표4를 보면, 위기 이후에 개인대출이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민간소비를 늘리려고 카드 발급을 대폭 늘리고 특별소비세를 인하하는 등 소비 진작 정책을 썼다. 특히 신용카드·할부금융 회사와 같은 여신전문 기관의 대출이 급증했다. 현금서비스와 판매신용 등 여신전문 기관의 대출 총액은 1998년 24조 1천억 원에서 2002년에 1백2조 4천억 원으로 급증했다.
표4. 한국의 가계신용 추이(단위: 조 원)
년 도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총 가계신용 | 214.0 | 266.9 | 341.7 | 439.1 | 447.6 | 474.7 | 521.5 | 582.0 | 630.7 |
예 금은행 주택담보대출 | - | 54.2 | 86.5 | 132.0 | 152.5 | 169.2 | 190.2 | 217.1 | 221.6 |
여 신전문회사* | 32.1 | 55.2 | 78.7 | 102.4 | 63.1 | 51.2 | 51 | 55.8 | 65 |
△자료 : 한국은행, ECOS
* 여신전문회사(신용카드, 할부금융회사)는 대출과 판매신용의 합계
소비를 부추기는 대출이 급증하자, 그림3에서 봤듯이 총저축에서 개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까지 급감했다. 그러나 그림4에서 봤듯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몫은 늘지 않아 소비 진작을 위한 대출이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결국 2003년에만 여신전문 기관 대출이 40조 원 급감하고, 신용불량자가 3백50만 명으로 급증해 소비 붐은 끝날 수밖에 없었다.
15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한 편, 비슷한 시기부터 주택담보대출도 급증했는데,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2001년에 32조 원, 2002년에 45조 5천억 원, 2003년에 20조 5천억 원이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가계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은 꾸준히 늘었고, 2004년 10조 원 정도이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이 2008년 말까지 83조 원으로 급증하면서이 런 부채 경제는 크게 두 가지 영향을 미쳤다. 우선, 개인과 기업 들이 자신의 소득 이상으로 지출할 수 있게 됐다. 부채가 증가하면서 자본가들은 생산물을 더 많이 팔 수 있었고,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리며 사회적 부가 건설 사업에서 소비됐고 다시 전체 소비가 진작됐다. 그래서 경제가 불황에 빠지는 것을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 둘째, 금융기관들의 이윤이 늘어나면서 전체 이윤량이 다소 늘었다. 개인 대출이 늘어나는 시기에 금융기관들의 이윤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보면, 금융기관들이 노동자들의 소득 중 일부를 이자 수익으로 가져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채 경제는 이윤이 줄어들까 봐 임금을 올려줄 수도 없고, 투자와 소비가 줄어 생산과 불일치하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전 세계 지배자들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2008년에 미국에서 부채 경제가 끝났고, 한국에서도 부채에 의존한 소비 붐이 2002년에 단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부채 경제는 위기를 일시적으로 지연하는 효과밖에 낼 수 없었다.
현 재 한국 부동산 거품은 꺼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불안한 상태다. 단명했던 카드 부채 확대가 2003~04년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된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면 한국 경제는 더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맺으며
1997 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지배자들은 이윤율을 회복하려고 노동계급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이 공격이 어느 정도 성공해 이윤율이 약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투자를 충분히 확대할 만큼 이윤율이 회복되지는 못했고, 노동자들의 소득 몫이 줄어들어 민간소비도 위축될 지경이었다. 이에 대응해 지배자들은 대출 확대와 소비 붐으로 불황을 막으려 하고, 생산과 소비의 격차를 줄이려고 수출을 대폭 늘렸다. 이는 미국의 소비 확대와 부동산 시장 호황 덕분에 꽤 유지될 수 있었다.
그 러나 세계경제 위기가 시작된 지금 수출을 더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개인 저축이 급감해 이미 바닥에 이른 상황이고 부동산 거품도 커질 대로 커져, 다른 곳에서 거품을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투자를 확대하도록 해 불황을 극복하자거나, 임금 인상이나 복지 확대로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몽상에 가깝다.
이윤율 하락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강제로 늘리기도 어렵고, 설사 늘린다고 해도 1990년대 한국이나 일본이나 최근의 중국처럼 금융기관들이 거대한 부실을 떠안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런 금융권의 부실은 한국처럼 급격하게 터지거나 일본처럼 질질 끌며 경제를 하락시킬 것이다.
16 이는 이윤 몫의 일부를 노동자들에게 이전해야 실현 가능한 방안이어서 실제로는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임금을 인상하거나 복지를 확대하면 민간소비를 늘릴 수는 있겠지만, 이윤율에 심각한 타격을 줘 자본가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경제 전체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과 논평가들조차 ‘세계적 불균형’을 고치려면 아시아에서 소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따 라서 여러 형태로 제기되는 ‘성장과 복지의 동반 성장’이라는 개혁주의적 전략조차 자본가들의 반발을 누르지 못하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힘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주
- 홍영기, ‘위기 이후 금융시스템 전환의 성격과 한계’, 《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 풀빛, 2004, 314쪽. ↩
- 조복현, ‘외환위기 이후 금융제도의 변화와 경제적 효과’, 2004년 사회경제학계 공동 학술대회 자료. ↩
- 김형기, 《한국경제 제3의 길》, 한울, 2006, 18쪽. ↩
- ‘총생산(GDP) = 가계지출 + 정부지출 + 총투자 + 수출 – 수입’이다. 따라서, GDP – (가계지출 + 정부지출) = 총투자 + 수출 – 수입. ↩
- Marco Terrones and Roberto Cardarelli, ‘Global Imbalances: a saving and investment perspective’, World Economic Outlook(IMF), April 2005. ↩
- 2003~04년 G7의 기업 부문 과잉저축은 1조 3천억 달러로, 개발도상국 경상수지 흑자의 갑절이 넘었다. G7 국가들 중 투자가 기업 부문 저축을 넘은 곳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뿐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Roberto Cardarelli & Kenichi Ueda, ‘Awash with Cash: Why Are Corporate Savings So High?’, World Economic Outlook, IMF, April 2006을 참고하시오. ↩
- 크리스 하먼, ‘신용경색부터 세계 경제 위기의 공포까지’,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 2009, 131~132쪽에서 재인용. ↩
- 한국 진보진영에서 금융화론에 찬성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투자 부진 문제를 중소기업 투자 부진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정건화, ‘2000년대 한국경제의 쟁점과 민족경제론 - ‘외국자본 지배론’ 비판을 중심으로’, 《혁신과 통합의 한국 경제모델을 찾아서》, 함께읽는책, 2006을 참고하시오. ↩
- 이런 논자들 중에는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들어 배당 압력이 주로 외국 금융자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 그리고 배당·설비투자 사이에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빈기범·조성환, ‘외국인 주주가 배당 및 투자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분석’, 한국증권연구원(2005. 8), 양두용 외, ‘국내 기업 주주로서의 외국 자본: 주요 쟁점 검토’, 《오늘의 세계경제》(05-17호), 대외경제연구소(2005.5.17)를 참조하시오. ↩
- 예를 들어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한국에서 생산된 국부가 국민경제의 각 부분에 재투자되지 않고, 외국자본의 이윤 회수로 해외 송출”되면서 한국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시대의창, 2006, 51쪽. ↩
- 남상훈, ‘성장 둔화는 규제 탓 아니다’, 〈세계일보〉(2009.4.7). ↩
- 로버트 브레너, 《붐 앤 버블》, 아침이슬, 2002와 크리스 하먼 외,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 2009를 참조하시오. ↩
- 정성진, ‘한국 자본주의 축적의 장기 추세와 위기: 1970~2003’,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 1987~2003》, 한울, 2006, 20~21쪽. ↩
- 같은 글, 25쪽. ↩
- 서지우, 《공황전야: 한국경제의 파국을 대비하라》, 지안, 2009, 174쪽. ↩
- 마틴 울프, 《금융공황의 시대》, 바다,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