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대분열: 사회주의 운동과 제1차세계대전 *

MARX21

  • 출처: Blackledge, Paul 2014, The great schism: socialism and war in 1914, International Socialism 143(posted on 26th June)

  1. 이 초고는 Blackledge, 2014에 기초한 것이다. 초고를 읽고 논평해 준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커밀라 로일에게 감사를 표한다.
  2. Riddell, 1986, p88.
  3. Kirby, 1986, p30. 사회주의 언론들의 애국주의는 1914년에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Rosmer, 2000, pp40-41).
  4. Eley, 2002, p30; Nation, 2009, p22.
  5. Marx, 1974a; Fernbach, 1974, p17. 피터 그린은 최근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레프트유니티 건설을 옹호하면서 이 강령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마치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경험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말이다!
  6. Collins and Abramsky, 1965, pp32, 39.
  7. Johnson, 1980, p73; Fernbach, 1974, pp59, 63; Molyneux, 1986, p31.
  8. Liebman, 1964, p285; Day and Gaido, 2011.
  9. Lenin, 1960-70, volume 21, pp40, 241.
  10. Anderson, 1980, p101; Lih, 2011, pp158-165.
  11. Geras, 1976, Chapter 1; Luxemburg, 1970, 269. 룩셈부르크는 엥겔스가 한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근대 사회 전반이 파멸하지 않으려면, 생산과 분배 양식의 혁명, 계급 구분을 일소할 혁명이 벌어져야 한다.”(Engels, 1947, p194).
  12. Cliff, 1989, p139.
  13. Harding, 1983, p6.
  14. Kissin, 1988, p165.
  15. Salvadori 1979.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Blackledge, 2006a, pp56-59를 보라. 더 자세한 논의는 Blackledge, 2006b를 보라.
  16. Kissin, 1988, p166.
  17. Haupt, 1972, p235.
  18. Lenin quoted in Haupt, 1972, p228.
  19. Callahan, 2010, p300.
  20. Haupt, 1972, p223.
  21. 페르디난트 라살(1825~1864)은 국가를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라살의 국가주의가 신당에 미치는 영향을 강력하게 비판했다(Draper, 1990, pp41-71를 보시오).
  22. Harman, 1982, p16.
  23. Abendroth, 1972, pp51-68.
  24. Marx, 1974b, p355.
  25. Marx, 1974b, p339. Engels,1989, p71도 보라.
  26. Engels, 1991.
  27. Schorske, 1983, p3.
  28. Steger, 1996, p3.
  29. Engels, 1990, p225.
  30. Engels, 1990, p226.
  31. Engels, 1990, p227.
  32. Draper, 1986, p321.
  33. Engels, 1990, p227.
  34. Schorske, 1983, p6.
  35. Schorske, 1983, 12ff.
  36. Bernstein, 1993, pp79ff, 56ff.
  37. Kautsky, 1983.
  38. Schorske, 1983, pp16-24.
  39. 라살 지지자들은 “임금 철칙의 법칙”을 받아들였다. 이 법칙에 따르면 임금은 노동자들이 생존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조합의 임금 투쟁을 무익한 것으로 치부했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이런 견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Marx, 1974b).
  40. Steenson, 1981, chapter 3.
  41. Schorske, 1983, p49.
  42. Salvadori, 1979, p113.
  43. Schorske, 1983, p115, Salvadori, 1979, p113.
  44. Luxemburg, 1986, p80.
  45. Luxemburg, 1986, pp81, 87-88.
  46. Schorske, 1983, pp108, 127.
  47. Salvadori, 1979, p144.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개혁주의를 어떻게 다뤘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본지에 실린 글럭스틴의 글을 보라.[국역: 도니 글럭스틴,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개혁주의 문제”, 《마르크스21》 42호, https://marx21.or.kr/article/504]
  48. Gaido, 2003, pp109-110; Gaido, 2008.
  49. Salvadori, 1979, p162에서 인용한 카우츠키의 말. Schorske, 1983, pp182-183; Geary, 1987, pp75, 77; Geras, 1976, p159도 참고하라.
  50. Nettl, 1969, p285.
  51. Draper, 2005, pp15, 159.
  52. Haupt, 1972, p25. Day and Gaido, 2011, p35도 보라.
  53. Schorske, 1983, p246.
  54. Day and Gaido, 2011, p63; Salvadori, 1979, p174.
  55. Day and Gaido, 2011, p64.
  56. Kautsky, 2011, pp773-774.
  57. Draper, 2005, p11; Donald, 1993, pp189-190.
  58. Liebman, 1964, pp283, 285에서 인용한 카우츠키의 말.
  59. Luxemburg, 1986, p80. Harman, 1982, p20도 보라.
  60. Nation, 2009, p19.
  61. Kolakowski, 1978, volume 2, p111; Gay, 1962, pp159ff.
  62. Kautsky, 1996, p34.
  63. Kautsky, 1892.
  64. Colletti, 1972, p105. Timpanaro, 1975, p120도 보라. 노동자 운동이 이 층을 제쳐 버릴 수 있다는 룩셈부르크의 숙명론적 관점은 노동계급 개혁주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마르크스의 한계에서 비롯한다고 존 몰리뉴는 지적한다.(Molyneux 1986, p116).
  65. Bernstein, 1993, pp30-31.
  66. Bernstein, 1993, p189.
  67. Bernstein, 1993, p210.
  68. Bernstein, 1996, pp91, 94-95.
  69. 이 논쟁에 대한 개괄은 Blackledge, 2012, pp107-114을 보라.
  70. Lenin, 1960-1970, volume 38, p180; Anderson, 1995; James, 1980; Dunayevskaya, 1988; Löwy, 1993, pp77-90.
  71. Ilyenkov, 1982.
  72. Lenin, 1960-1970, volume 1, pp400-401.
  73. Lih, 2006, pp27; 615. 리는 레닌과 카우츠키의 핵심적 차이를 직관적으로 포착하지만 알지는 못한다. 리는 이렇게 주장한다. “레닌이 보기에 카우츠키의 행보는 ‘혁명적 말은 하지만, 혁명적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정의할 만한 일반적 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Lih, 2009, p5). 이것은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레닌은 “이론을 실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하면서”(Cliff, 2002, p141) 마르크스주의에 심오한 이론적·정치적 기여를 했다. 레닌이 “유달리 독창성이 없었다”는 리의 설명은 이 점을 흐린다.
  74. Lenin, 1960-1970, volume 5, pp515-516. 같은 전집의 volume 8, p150도 보시오. Harman, 1968/9는 이런 구분을 강조한다.
  75. Lenin, 1960-1970, volume 8, p152.
  76. James, 1980, p113.
  77. Trotsky, 1974, p129.
  78. Lukács, 1970, pp9, 11.
  79. Lih, 2006, pp474-475.
  80. Callinicos, 2009, p44.
  81. Lenin, 1960-1970, volume 25, pp383-492.
  82. Callinicos, 2009, p53; Harding, 1983, volume 2, pp140-141.
  83. Post, 2010, p7. 포스트의 분석은 이 잡지에서 처음 발전시킨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Cliff, 2003; Corr and Brown, 1993).
  84. Darlington, 2014.
  85. Lenin, 1960-1970, volume 38, pp217-218 (강조는 원문의 것).
  86. Kouvelakis, 2007, pp174, 186.
  87. Anderson, 1995, p113에서 인용한 리처드 데이의 말.
  88. Callinicos, 2007, p26.
  89. Holloway, 2002, p128.
  90. Rees, 1998, p191.
  91. Lenin, 1960-1970, volume 38, p274.
  92. Lukács, 1978, p162.
  93. Lukács, 1971, p38.
  94. Lukács, 2000, pp55-56.
  95. Lukács, 1971, pp296-299.
  96. Le Blanc, 1990, pp127-141.
  97. Molyneux, 1986, p93.
  98. Eagleton, 2007; Cliff, 1975, chapter 14.
  99. 행위에 관한 유물론적 이해와 관념론적 이해의 일면성을 극복하는 데서 레닌이 했던 심오한 기여에 비춰 보면, 레닌 사후 러시아 혁명이 타락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레닌주의’ 이데올로기(Le Blanc, 1990, pp-1-13)의 가장 정교한 표현이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 왜곡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관념론(스탈린의 선지자적 지도)과 유물론(생산력의 자동적 발전)의 일관성 없는 결합으로 전락시켰으니 말이다. Marcuse, 1958, pp121, 124; Harris, 1968, p156.
  100. Lih, 2011, pp125-131.
  101. Marx, 1975.
  102. Arthur, 1986, p145.
  103. Löwy, 1993, p71.
  104. Haupt, 1972, p223에서 인용한 레닌의 글.
  105. Callinicos, 2007, p25.
  106. Callahan, 2010, p300.
  107. Nation, 2009, p21.
  108. Hallas, 1985.
질문/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