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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패배한 전쟁과 헤즈볼라 *

MARX21

주

  • 이 논문의 초고를 읽고 논평하고 사실관계 오류를 지적해 준 질베르 아슈카르, 앤 알렉산더, 시문 아사프, 린지 저먼, 가산 마카렘, 존 로즈, 새비 사갈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Chris Harman, ‘Hizbollah and the war Israel lost’, International Socialism, 112 (Autumn 2006).

    ↩
  1. S. Hersh, Watching Lebanon, New Yorker, 21 August 2006. ↩
  2. Washington Post, 4 August 2006. ↩
  3. H. Shukrallah, It Didn’t Work, August 2006, www.indymedia.ie/article/77854. ↩
  4. 위에서. ↩
  5. 위에서. ↩
  6. 헤즈볼라의 첫 승리는 물론 1990년에 이스라엘을 레바논에서 쫓아낸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승리는,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의 맹공격을 물리친 이번 승리만큼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극적이지 않았다. ↩
  7. 이스라엘이 1948~1949년에 승리할 수 있도록 미국과 소련(체코제 무기)이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이 상시적으로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
  8. 당시 토니 클리프가 쓴 분석 글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웹사이트 www.isj.org.uk/index.php.4?id=229 에서 확인할 수 있다[국역: ‘중동에서의 반제국주의 투쟁’, 《마르크스21》 23호(2018년 1~2월호)]. 이 밖에도 클리프는 여러 모임에서 (인쇄된 텍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와 관련된 주장을 펼쳤다. ↩
  9. N. Qassem, Hizbullah: The Story from Within (London 2005), p.68. ↩
  10. M. Williams, Counterpunch, 14 August 2006. ↩
  11. 이스라엘 국가는 먼 친척 중에 ‘유대인’이 있다는 식의 모호한 주장만으로도 옛 소련 출신 이민자들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 목적은 이스라엘과 점령지[서안지구·가자지구·동예루살렘] 내 팔레스타인인 인구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인구를 더 빨리 늘리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예시는 마크 로이터와 루시 애쉬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정책은 필리핀 등지에서 온 25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아랍 노동자들을 대체하는 정책과 연결된 정책이다. ↩
  12. 출처는 이스라엘 신문 〈하아레츠〉, www.haaretz.com/hasen/spages/743767.html ↩
  13. N. Qassem, 앞에서, p.69. ↩
  14. 앞에서, pp.72-73. ↩
  15. 토니 클리프가 1967년 이스라엘-아랍 전쟁에 관해 쓴 논문, 상동. ↩
  16. A.N. Hamzeh, In the Path of the Hizbullah (Syracuse University Press, 2004), p.13. ↩
  17. A.N. Hamzeh, 앞에서, p.11. ↩
  18. 앞에서, p.13. ‘박탈당한 자들의 운동’을 처음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무사 알 사드르(1978년 리비아 여행 중 실종)였지만,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면서 그 초기 성과가 무색해졌다. ↩
  19. 앞에서, p.87. ↩
  20. N. Qassem, 앞에서, p.74. ↩
  21. 앞에서, pp.74-75. ↩
  22. A.N. Hamzeh, 앞에서, p.89. ↩
  23. 앞에서, p.75. ↩
  24. 앞에서, p.77. ↩
  25. 앞에서, pp.50-55, 다양한 종류의 지출에 대한 수치를 제공하지만, 그 수치를 살펴보면 저자(또는 조판사)가 숫자 0을 몇 개 잘못된 곳에 넣은 것이 아닌가 싶다. ↩
  26. 앞에서, p.59. ↩
  27. 앞에서, p.67. ↩
  28. 이 문제에 대한 헤즈볼라의 방향 전환에 대한 긴 논의를 살펴보려면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Saad-Ghorayeb, Hizbu’llah, Politics and Religion (London 2002), pp.34-59. ↩
  29. N. Qassem, 앞에서, p.31. ↩
  30. A.N. Hamzeh, 앞에서, p.123. ↩
  31. A.N. Hamzeh(앞의 책, pp.105-108)의 설명을 따른 것이다. ↩
  32. 함제와 카셈 모두 이 분열에 대해서 다뤘지만, 서로 관점이 달랐다. ↩
  33. A.N. Hamzeh, 앞에서, p.126. ↩
  34. 2006년 9월 6일 〈소셜리스트 워커〉 레바논 베이루트 특파원 시문 아사프가 전한 내용이다. ↩
  35. A.N. Hamzeh, 앞에서, p.121. ↩
  36. G. Achcar in Lebanon: The 33-Day War and UNSC Resolution 1701, znetwork.org/znetarticle/lebanon-the-33-day-war-and-unsc-resolution-1701-by-gilbert-achcar. 이 기사는 결의안의 교묘한 문구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
  37. 2006년 9월 6일 시문 아사프가 베이루트에서 전한 내용. ↩
  38. N. Qassem, 앞에서, p.243. ↩
  39. 앞에서, p.240. ↩
  40. 앞에서, p.243. ↩
  41. 앞에서, p.244. ↩
  42. 앞에서, p.245. ↩
  43. 2006년 9월 6일 시문 아사프가 베이루트에서 전한 내용. ↩
  44. PLO와 파타가 결성된 것은 1950년대 중반이었지만, 그들이 팔레스타인 투쟁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1967년 전쟁 이후였다. ↩
  45. I. Ali, Palestine: Guerrilla Organisations, International Socialism 36 (first series) (April-May 1969). ↩
  46. 카라메 전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예컨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n.wikipedia.org/wiki/Karameh ↩
  47. Ali, 앞에서. ↩
  48. 1969년 8월 당시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의 논의에 대한 내 기억에 기반해 쓴 것이다. ↩
  49. 이 또한 1970년 검은 9월 내전 초기 암만에서 PLO의 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기억을 돌이켜 쓴 것이다. ↩
  50. N. Qassem, 앞에서, p.64. ↩
  51. 나와 대화하면서 질베르 아슈카르가 사용한 표현 ↩
  52. A.N. Hamzeh, 앞에서, p.135. ↩
  53. A.N. Hamzeh, 앞에서, p.123. ↩
  54. G. Monbiot, Guardian, 8 August 2006. ↩
  55. Centre pages, Scottish Socialist Voice, 21 July 2006 ↩
  56. 시온주의의 역사와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을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존 로즈의 훌륭한 책 Israel: The Hijack State (Bookmarks, London)[국역: 《강탈국가 이스라엘》, 책갈피, 2018]을 참고하라. 다음에서 디지털 형태로도 읽을 수 있다. www.marxists.de/middleast/rose/4-origin.htm ↩
  57. 1986년 1월 16일 <뉴욕리뷰오브북스>에 실린 해당 인구 조사의 타당성에 대한 로날드 샌더와 여호수아 포래스의 논의 참고. ↩
  58. Y. Porath, New York Review of Books, 앞에서. ↩
  59. 1968년 통계는 H. Hanegbi, M. Machover, A. Orr, The Class Nature of Israeli Society, New Left Review 65, January-February 1971, p.4 참고 ↩
  60. 앞의 책 p.5에서 인용. ↩
  61. Tony Cliff, 1967년 전쟁에 관한 앞의 글. ↩
  62. Ha’aretz, 30 September 1951, H. Hanegbi, M. Machover, A. Orr, 앞의 책, p.11에서 재인용. ↩
  63. 통계 출처는 Washington Report on Middle East Affairs, www.washington-report.org/html/us_aid_to_israel.htm ↩
  64. Economist Tallies Swelling Cost of Israel to US, Christian Science Monitor, 9 December 2002, www.csmonitor.com/2002/1209/p.16s01-wmgn.html ↩
  65. H. Hanegbi, M. Machover, A. Orr, 앞에서, p.9. ↩
  66. 앞에서, p.10. ↩
  67. American Jewish Yearbook, 1990, p.270. ↩
  68. BBC News, Sunday 5 January 2003, 02:23 GMT, news.bbc.co.uk/2/hi/business/2627561.stm ↩
  69. American Jewish Yearbook, 1990, p.270. ↩
  70. BBC News, Sunday 5 January 2003, 02:23 GMT, news.bbc.co.uk/2/hi/business/2627561.stm ↩
  71. H. Hanegbi, M. Machover, A. Orr, 앞에서, p.6. ↩
  72. 예를 들어, R. Cohen and Y. Shaul, Social Protection in Israel and Sixteen European Countries (Jerusalem 1998)를 보라. www.issa.int/pdf/jeru98/theme3/3-6d.pdf 그들의 결론에 따르면, 최근 확장 이전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비교해, ‘이스라엘은 출산 수당과 산재 수당에 있어서는 중간 정도에 속하지만 실업률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실업 중 복지 혜택은 전반적으로 프랑스와 독일보다는 적지만 영국과 비교해서는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
  73. H. Hanegbi, M. Machover, A. Orr, 앞에서, p.11. ↩
  74. 조지 갤러웨이가 “헤즈볼라의 승리가 중동을 완전히 바꿔 놨다”는 제목으로 〈가디언〉에 기고한 글. Guardian, 31 August 2006. ↩
  75. H. Hanegbi, M. Machover, A. Orr, 앞에서, p.11. ↩
  76. R. Lowe and C. Spencer, Iran, Its Neighbours and the Regional Crises (Chatham House, August 2006), p.6. www.chathamhouse.org.uk/pdf/research/mep/Iran0806.pdf ↩
  77. 앞에서. ↩
  78. 앞에서. ↩
  79. New York Times, 4 August 2006. ↩
  80. 이에 대한 나의 분석은 다음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Analysing Imperialism, in International Socialism 99 (Summer 2003)[국역: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 책갈피, 2009]. ↩
  81. R. Lowe and C. Spencer,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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