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를 위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개혁주의 비판
2부 자본주의와 생산력: 사회민주주의 비판
7장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자본주의 *
이 장에서는 최근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1절에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룩된 생산력의 상당한 발전과 그것이 사회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2절에서는 이 시기를 무너뜨린 공황을 간략히 분석한다. 이 공황의 주요 요인을 파악하는 것은 그것이 개혁주의에 미친 영향을 아는 데서 사활적으로 중요한데, 이는 마지막 절에서 다룬다.
생명 연장
제2차세계대전으로 자본주의 세계는 혼돈에 빠졌다. 인명 손실과 노동 수단의 파괴가 경제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손상은 엄청나게 컸다.
패전국 열강의 1945년 여름 생산 수준은 전쟁 이전의 절반(프랑스)에서 10분의 1(일본) 정도로 붕괴해 있었다. 많은 나라들에서 옛 국가기구가 와해됐다. 그런 나라들의 정부는 외국 군대와 국내 저항 운동에 의해 전복됐다. 무장한 노동자 조직들이 공장과 광산을 통제했고 그중 일부는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했다. 이 노동자 조직들과 군대가 불안한 상태로 대치했다. 양쪽 다 무장한 상태였다.
양측 어디에 속했든지 간에 노동자들은 전쟁이라면 진절머리를 냈고, 부르주아지는 군대의 규율이 유지될지 확신하지 못했다. 전장에 가지 않은 노동자들은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그들은 장시간 일했다. 물자가 부족했고 생활수준이 떨어졌다. 상대적 휴지기가 지나자 노동쟁의가 불붙었다.
당시 대다수 관찰자들은 자본주의의 확장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예측은 비관적인 전망에서부터 파국적인 전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1950년대 초에서 1960년대 말까지 [자본주의는] 팽창했다. 요즘은 이 시기를 거의 일반적으로 장기 호황이라고 일컫는데, 단지 상대적인 평화기이자 번영기일뿐 아니라 생산력의 중대한 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안정을 되찾고 뒤이어 장기 호황을 누린 이유를 두고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이 문제는 중요하지만, 여기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절에서는 그 호황의 수준을 살펴보고 그 호황이 개혁주의에 미친 영향을 검토할 것이다.
1 오늘날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사용가치의 절반은 이 전후 16년 동안의 생산력 발전에서 비롯한다는 뜻이다. 이는 인상 깊은 성취이다.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성장이 그처럼 빠르고 지속적인 시기는 어느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호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952년과 1968년 사이에 세계 자본주의의 생산은 두 배가 됐다.게다가 이 과정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놀랍게도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는 듯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산출량은 그 1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증가했다.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보면 전체 인구 중 고용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퍼센트포인트 이상 떨어진 적이 없었다. 생산력은 활용도가 높고 빠르게 발전했다. 자본주의는 두 번째 유년기를 맞이한 듯했다.
이 호황 덕분에 자본주의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생명도 연장됐다. 이는 놀랍지 않다. 개혁주의는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시기에 번창하곤 한다. 그런 발전은 개혁이 성취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축적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그 외 경제적 개혁이 가능해진다. 완전고용과 생활수준 향상이 가져온 사회 안정은 정치 개혁을 가능케 하는 경향이 있다. 안정적이고 성장하는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전체주의적 통치 형태를 취할 필요를 덜 느낀다.
또, 그런 시기에 노동운동의 대부분은 개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혁명적 전망에서는 불가피한 불안정과 폭력 없이도 뚜렷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1950~1960년대 노동자 정당들 내에서 사회민주주의 사상과 그 지지자들이 새로운 활기를 얻었다.
앤서니 크로스랜드가 1956년에 쓴 《사회주의의 미래》가 전후의 사회민주주의 세계관을 가장 일관되게 표현했고, 그런 세계관이 형성되는 데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이 책의 제목은 적절하지 않은데, 크로스랜드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크로스랜드의 견해는 어느 정도는 베른슈타인의 것을 반복하며 전개한 것이다. 둘 사이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많다. 협동조합 운동의 중요성과 상품 물신성의 덫에 빠지는 경향과 관련해 크로스랜드는 베른슈타인의 관점을 공유한다. 크로스랜드의 경우에, 후자의 약점은 소외를 현대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관계의 산물이 아니라 현대 기술 자체의 산물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드러난다. 이렇게 눈에 딱 보이는 공통점 이면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2 알려진 사상체계로의 전환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하나는 자본주의가 심각한 공황을 겪지 않으면서 생산력을 영원히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다. 크로스랜드의 이런 입장은 베른슈타인처럼 주로 바로 직전 몇 년의 경험에 근거한다. 그런 경험이 예측 가능한 미래에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를 가져오려면 요정이 필요했다. 베른슈타인은 카르텔이 그 구실을 한다고 봤고 크로스랜드는 국가라고 봤다. 크로스랜드는 정부들이 이제는 공황의 발생을 막을 지식과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크로스랜드는 부르주아 학문의 견해 변화, 즉 케인스주의로비록 케인스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야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그 사상의 핵심은 1930년대 불황기에 발전했다. 당시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은 노동조합이 임금 하락을 막고 있기 때문에 불황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금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윤이, 따라서 생산과 고용이 낮은 수준에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임금을 삭감하면 소비가 더 줄어서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며 반대했다. 케인스주의자들이 볼 때 해결책은 정부가 도로 건설 같은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이었다. 공공사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임금을 소비하면 시장이 성장할 것이다. 이것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투자하고 노동자를 재고용하도록 할 것이다.
이런 제안을 뒷받침하는 이론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미하우 칼레츠키이다. 매우 간단하게 얘기하면, 모든 소득은 임금 아니면 이윤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윤은 다시 회사들이 보유하는 것[유보 이익]과 주주들에게 배당한 것으로 나뉜다. 임금은 모두 소비재 구입에 쓰이고, 유보 이익은 모두 투자된다. 유보 이익으로 모자라는 투자금은 대출로 조달된다. 배당된 이윤은 저축된다. 배당된 이윤이 대출액보다 많으면 소비가 부족해진다. 그 결과인 시장의 축소는 불황으로 이어진다. 이윤이 줄고 그에 따라 투자 유인이 줄어들면서 그 패턴은 영속되는 경향이 있다. 국가는 초기 단계에 개입해서 불황이 시작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대출과 저축의 차이만큼의 지출을 통해 언제든지 불황을 탈출할 수 있다.
재생산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하려면 자본가들이 스스로 모든 잉여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이 이론에 담긴 기본적 통찰임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3장을 보라). 칼레츠키는 이런 일반적인 사실을 특정 모델을 들어 설명한다. 그는 자본가를 고위 경영인과 대주주라는 두 집단으로 나눈다. 고위 경영인이 모든 투자를 결정한다. 고위 경영인이 투자를 위한 차입을 주주들이 저축하는 것보다 적게 하기로 결정한다면 가치의 실현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케인스주의자들이 이끌어 낸 실천적 결론, 즉 국가가 소비의 부족을 메우면 불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그런 결론은 공황이 불가피하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전복하는 듯했다. 그래서 크로스랜드는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케인스주의적 정책을 실행하면 공황에 빠지지 않으면서 생산력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로스랜드와 베른슈타인의 또 다른 핵심적 공통점은 의회 민주주의를 거의 절대적으로 신봉했다는 점이다. 크로스랜드는 베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의회 민주주의로 향하는 발전은 중간에 되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삶의 모든 측면을 민주화하고 사회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순탄할 거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영국 지배계급이 어떤 조건에서는 비민주적 통치 형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딴 세상 얘기”라며 크로스랜드는 조롱했다.
예측 가능한 미래까지는 생산력이 공황을 겪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은 사회민주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크로스랜드의 분석과 정책은 여러 면에서 베른슈타인을 넘어선다. 분석 면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크로스랜드는 선진국에서는 생산력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여긴다. “대중적 풍요의 문턱”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둘째, 베른슈타인과 달리 크로스랜드는 현대[20세기] 세계를 자본주의 세계로 보지 않았다. 크로스랜드는 오늘날과 19세기 사이의 많은 차이(일부는 실질적이지만, 일부는 허구적인 차이)를 지목하고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기준(생산수단에 대한 계급적 소유)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적 소유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하는 사회의 특징들은, 어떻게 조직하든 간에 대규모 생산에서는 불가피하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크로스랜드와 견해가 비슷한 많은 개혁주의자들도 방금 말한 두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 주장들은 전후 사회민주주의의 본질적 특징으로 볼 수 없다.
크로스랜드의 정책은 두 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베른슈타인의 정책보다 진보한 것이었다. 첫째, 크로스랜드의 강령은 형편이 좋은 노동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개혁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크로스랜드는 베른슈타인보다 더 일관된 개혁주의자였다. 둘째, 크로스랜드는 베른슈타인에 비해 민주적 제도들을 확장하는 것에는 관심을 덜 쏟았고, 그런 제도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투쟁해서 이루려는 정책들에 더 관심을 쏟았다. 이렇게 강조점이 달랐다고 해서 크로스랜드가 민주주의에 관심이 덜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민주적 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성인에게 보통 선거권이 보장되는 의회 민주주의가 많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성취됐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였다.
크로스랜드 정책의 핵심 요지는 부자들에게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것을 초석으로 운동을 벌여야 하고, 권력을 잡으면 국가 기관을 이용해 그런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부자는 빈자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그 돈은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예컨대 교육과 의료)나 보조금 지급(사회안전망과 노령 연금 등의 형태로 더 곤궁한 사람들을 보조하는 것)을 위한 재원으로 쓰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물질적 복지의 최저 수준을 보장할 수 있고, 불평등을 줄이는 동시에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하에서 근본적인 불평등은 노동 과정 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있고 다른 불평등은 여기서 파생된다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전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생활수준의 불평등에 주목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를 생산력 발전으로 보고 자본주의가 그런 발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던 시기는 진즉에 끝났다고 여기지만, 크로스랜드와 그 지지자들은 이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며 재화와 서비스의 분배에 관심을 쏟았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 시스템의 산물이며 국가 형태는 때에 따라 민주적으로 되기도 하고 전체주의적으로 되기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크로스랜드는 국가를 경제적 안정과 소득의 재분배를 동시에 보장해 주는 보편적 수단으로 여겼다.
크로스랜드의 사상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비판은 지난 10년간의 사태 전개를 분석하는 것이다. 다음 절에서 다룰 분석은 호황기 동안 일어난 일들이 어떻게 체제를 유지시키는 과정 자체에서 체제를 약화시켰는지를 들춰낸다.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은 이제 겉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자본주의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날이 나빠짐에 따라 지난 20년간의 급속한 팽창이 부과한 부담은 더 분명히 보일 것이다.
현재의 위기
이 절을 5~6년 전에 썼다면 경제 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경제 위기를 안다. 최근까지도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혁명가들에게는 지나친 요란법석으로 여겨질 기사를 자주 싣는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위기를 누구나 알지만, 그 위기의 성격과 원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정부와 언론들은 각각의 경제 문제들을 따로 떼어내 다룬다. 하나씩 따로따로 치중하면서 하나의 문제가 위기 자체인 양 설명한다. 몇 년 동안에만 “달러 위기”이니 “인플레이션 위기”이니 “석유 위기”이니 “스털링 위기”이니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시각은 자본주의를 위해 기능한다. 이런저런 문제들은 서로 관련이 없고 각각의 심각성도 제한적이라고 암시한다. 그 정치적 함의는 체제를 아주 조금만 손보면 된다는 것이다. 제도를 조금만 수정하면, 노동조합의 협조를 조금만 더 이끌어 내면, 중동에 미국 해병대를 조금 더 투입하면, 충분히 안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근본적 결함이 없기 때문에 근본적 변화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사실, 각각의 문제들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것들은 단 하나의 과정, 즉 장기 호황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중단되고 종전 후 가장 심각한 위기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양상들이다.
위기의 근원은 자본의 과잉 축적이다. 다양한 징후들이 모두 과잉 축적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징후들의 전개와 의미는 주로 과잉 축적에 의해 구조화된다. 이런 연결성은 마르크스가 경제와 다른 사회 양상들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한 은유의 용어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축적은 토대이고 국제 통화 이동과 주식 거래 등이 경제적 상부구조를 이룬다. 토대가 궁극적인 결정 요인이지만,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사이에 1대 1 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호황의 근저에 있는 높은 축적률은 많은 수의 노동 인구를 흡수했다. 1950년대 말까지 미국을 제외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산업예비군이 소진됐다. 1960년대 동안 축적은 농민과 장인의 감소, 여성 고용의 증가, 대규모 이민으로 생겨난 새로운 노동 인구의 공급에 의지했다. 이민 증가가 특히 중요했는데, 그 비율은 전례 없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표1). 표1 노동 인구에서 실업자의 비율
1950년 | 1960년 | 1970년 | |
독일 | 8.0 | 1.0 | 0.6 |
이탈리아 | 0.7(1954년) | 3.9 | 3.1 |
프랑스 | 1.6(1954년) | 1.2 | 1.7 |
영국 | 1.3 | 1.3 | 2.2 |
미국 | 5.1 | 5.3 | 4.8 |
1950년 | 1960년 | 1970년 | |
독일 | 30.8 | 22.3 | 16.9 |
일본 | 57.0(1953년) | 46.6 | 35.0 |
이탈리아 | 45.3(1954년) | 41.6 | 31.7 |
프랑스 | 35.7(1954년) | 30.5 | 22.2 |
영국 | 8.2 | 7.4 | 7.8 |
미국 | 20.3 | 16.1 | 10.2 |
1960년 | 1970년 | |
독일 | 43.7 | 45.9 |
프랑스 | 42.0 | 47.0 |
영국 | 41.5 | 49.3 |
미국 | 40.4 | 48.0 |
1958년 | 1965년 | 1970년 | |
영국 | 41.5 | 48.9 | 47.7 |
독일 | 54.6 | 524.9 | 713.9 |
프랑스 | 146.3 | 283.6 | 309.3 |
미국 | 4439 | 독일 | 3014 |
프랑스 | 2497 | 영국 | 140 |
이와 같은 추가적인 노동 인구의 공급 덕분에 몇 년간은 높은 축적률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노동 부족이 충분히 완화하지는 못했다. 임금이 오르고, 착취율이 잠식되고, 잉여가치가 줄었다. 이윤율이 하락했다(표2(a)). 표2 (a)산출량 대비 이윤율
1951 | 1960 | 1970 | 1973 | 1974 | 1975 | |
미국 | 25.9 | 19.6 | 15.2 | 17.7 | 14.1 | 15.6 |
일본 | 31.8 | 39.2 | 34.4 | 26 | 17 | ━ |
영국 | 30.8 | 27.4 | 16.1 | 17.7 | 9.7 | 6.9 |
이탈리아 | 24.2 | 16.5 | 11.0 | 3.6 | 3.4 | ━ |
독일 | 34.4 | 29.3 | 23.5 | 20 | 18 | 18 |
미국 | 7.9 | 5.3 | 5.4 | ━ | ━ |
영국 | 8.3 | 3.7 | 3.9 | 3.5 | 3 |
프랑스 | 8.3 | 7.9 | 7.1 | 5.0 | 1.4 |
미국 | 일본 | 프랑스 | 독일 | 이탈리아 | 영국 | 유럽 | |
1951~1959 | 2.5 | 11.8 | ━ | ━ | ━ | ━ | 7.0 |
1959~1964 | 3.5 | 19.2 | ━ | ━ | ━ | ━ | 8.4 |
1964~1969 | 4.6 | 14.2 | ━ | ━ | ━ | ━ | 4.8 |
1969~1973 | 5.4 | 11.6 | ━ | ━ | ━ | ━ | 4.9 |
1973~1976 | 0.7 | -7.4 | 0 | -1.8 | -2.4 | -4.8 | ━ |
이는 유럽과 일본에서 축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미국의 투자가 증가한 덕분에 상당한 정도로 상쇄됐다(표2(c)).
1970년대 초에 과잉 축적은 심각한 불황을 초래했다. 1974년 중반부터 글을 쓰고 있는 1977년 7월까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대략 15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기계의 25퍼센트가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이런 엄청난 자원 낭비의 직접적 원인은 투자가 붕괴하고 그에 따라 물건이 팔리지 않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표2(c)).
그러면 사태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 말이다. 왜 정부들은 자본가들의 투자 기피에서 비롯한 지출 부족을 메우지 않았을까? 왜 케인스주의적 조처들이 불황을 저지하는 데 쓰이지 않았을까?
사실 케인스주의 정책들은 1970년대 초에 시행됐다. 1969년 중반에 경제성장이 상당히 둔화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971년 중반까지 세계 자본주의 산출량의 성장률은 연평균 1퍼센트 아래였다. 주요국 정부들은 모두 1971년 여름에 케인스주의적 수단으로 대응했다. 그 뒤 18개월 동안 매우 극적인 호황이 찾아 왔다. 산출량이 연평균 9퍼센트씩 성장했다.
그러나 이 호황은 단명했다. 수요가 늘어나자 자본가들은 유휴 기계를 다시 가동시켰고 단기간에 빠르게 생산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생산 시설을 늘리는 데 투자하지는 않았다(표2(c)). 그들은 사무실 건물이나 아직 수확하지 않은 코코아를 구매하고 가격이 오르면 재빨리 처분하는 걸 선호했다. 따라서 “짧은 호황”은 광란의 투기 판을 일으켰을 뿐 생산력을 확대시키지는 못했다. 이 호황은 1973년 말에 급작스레 끝났고 케인스주의 정책들은 폐기됐다.
시장 확대는 불충분한 유인책임이 드러났다. 자본가들은 축적을 할 태세가 아니었다. [생산 능력을 늘려] 상품을 더 생산해도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비관적 전망은 타당했다. 판매 기회가 증가했는데도 이윤은 회복되지 않았다. 많은 나라들에서 이윤은 더욱 줄어들었다(표2(b)).
이 경험은 케인스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케인스주의는 잉여가치 실현의 어려움은 완화할 수 있을지라도 잉여가치 창출의 문제는 완화할 수 없다. 현재 위기에서는 과잉 축적이 야기한 이윤율 하락이 투자 부족의 근본 요인이다. 케인스주의 정책은 생산과 고용을 증가시킨 결과로 실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심화시킨다. 이런 분석은 지난 몇 년간 지속되는 불황을 알기 쉽게 해 준다. 경제 확장을 위해 기획된 정책의 실행이 자본가 계급에게 꼭 득인 것은 아니다. 호황은 자본가 계급에게 어느 정도 유리한 면이 있다. 시장이 성장할 테고, 그러면 유휴 기계가 다시 가동돼 단기적으로는 전체 이윤이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단점은 고용이 증가해 잉여가치율에 가해지는 압박이 더 심해져서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이윤율이 상승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황이 질질 끌리거나 심화하는 것 또한 자본에게는 모순적 효과를 낸다. 그 결과로 생기는 실업 탓에 임금이 하락하면 착취율을 높이는 데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성장]이 제약돼 [잉여가치] 실현을 위한 조건이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임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생계수단을 생산하는 자본가들은 투자할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상품] 가격을 인하하지 않는다면 생산 능력을 늘려 봐야 판매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자본가들도 이 생계수단을 생산하는 자본가들을 상대로 한 판매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생산 능력을 확대할 유인이 사라질 것이다.
자본가 계급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한 듯하다.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득이 되는 조건을 재창출하려면 잉여가치의 창출과 실현 둘 다에서 전망이 개성돼야 한다. 한 가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운용된 정책은 동시에 다른 문제를 악화시키는 구실을 한다. 자본가 계급 전체로 보면 정말 그렇다.
그러나 개별 자본가에게는 그런 모순이 없다. 한 자본가가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면 잉여가치 실현의 조건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잉여가치 창출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그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의 지출이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 자본가는 비용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면 [상품] 가격을 낮추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경쟁사들을 희생시켜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각각의 자본가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되도록 낮기를 바랄 것이고(비용 최소화를 위해), 경쟁사 노동자들의 임금은 되도록 높기를 바랄 것이다(시장 최대화를 위해).
국제적 규모에서 보면, 한 나라의 자본가 계급은 이 점에서 개별 자본가와 비슷하다. 외국 경쟁자들보다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해외 시장은 생산 확대가 득이 되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임금을 억제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자국 국가에 압력을 넣는 것이 각국 자본가 계급의 관심사이다. 그런 요구 중에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뒤집은 것도 있다. 즉, 국가 지출을 줄여 실업을 양산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유럽·북미·일본의 자본가들이 대체로 채택한 입장이다.
물론 권투 경기 출전자들이 모두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현실에서 모든 국가의 자본가 계급이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도 자본가들은 그런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국제 무역과 결제 시스템이 교란되고, 세계적 불황이 지속되며, 각국에서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 거듭된다.
경제 위기 시기의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의 운명은 자본주의의 운명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축적이 순조로울 때는 사회민주주의적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듯하고 노동자 정당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지지자가 늘어난다. 반대로 경제 위기 시기에는 사회민주주의의 예측이 사태 변화에 뒤처져 낡은 것이 되고 그 정책은 쓸모가 없어진다. 평당원 사이에서 이견이 많아지고 노동계급의 지지는 줄어든다.
전후 호황기에는 생산력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완전고용, 소득 증가, 사회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호황 덕분에, 케인스주의가 위기 없는 경제 성장을 보장해 준다는 믿음이 증명되고 그에 따라 사회민주주의가 생산물 분배에 주력하는 것이 타당한 듯했다. 자본주의는 재화를 제공할 능력이 있고 사회민주주의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적응할 능력이 있는 듯하자 노동계급의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 크로스랜드의 요정은 명백히 실패했다. 불황은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보다 더 효과적으로 노동자들로 하여금 케인스주의의 한계를 깨닫게 했다. 불황은 생산력의 효과적인 이용과 발전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무능함이 분배의 불평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줬다.
14 호황기 동안 생산력 발전의 효과는 재분배의 효과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영국에서 전체 산출량 중 노동계급이 소비한 몫은 1955년 69.3퍼센트에서 1972년 73.7퍼센트로 늘어났다. 역사적으로 상당한 부의 재분배였다. 같은 기간 생산은 51.8퍼센트 늘어났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62.8퍼센트 향상했는데, 그중 11퍼센트포인트는 생산물 분배의 변화 덕분이었고, 51.8퍼센트포인트는 산출량 증가 덕분이었다.불황이 닥치자 생산력은 유휴화됐다. 이 글을 쓰는 시점(1977년 7월)에 영국에서 유휴 기계와 유휴 노동력이 가동된다면 산출량이 거의 20퍼센트 증가할 정도다. 다른 한편 부자들의 사치품 소비는 기껏해야 전체 생산의 5퍼센트를 차지한다. 따라서 오늘날 존재하는 생산력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재분배를 확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다.
15 이것들 중 택일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동시에 이룰 수 있다.
그렇게 산출량이 증가하면, (미래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산업 투자를 50퍼센트 이상 늘리며, 주택을 두 배로 늘리고, 의료·교육 복지를 10퍼센트 늘리고, 연금 등 복지 수당을 50퍼센트 늘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최저임금을 주당 70파운드로 올리고,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5퍼센트 더 향상시킬 수 있다.위에서 열거한 것들은 실업의 비용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다. 즉, 이미 낡어버린 체제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오늘날 노동계급이 치르고 있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그것도 협소하게 경제적으로만 최소한으로 추정한 것이다.
불황이 닥치자 전후 사회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 파산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호황기 동안에 구축해놓은 지지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이제 노동자 정당들이 많은 나라들에서 단독으로 또는 연합해 집권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곤혹스럽게 됐다. 야당이라면 경제적 난국이 과장됐다거나 무능한 정부 탓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실행의 부담을 지지 않고도 호황기에 수립된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을 계속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집권하면 냉엄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경제 위기는 개혁주의 정당이 입장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한다. 근본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최근 몇 년간 개혁주의 정당은 거의 모두 두 방식 다 만지작거렸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를 두고 내분을 겪으며 많은 정당들이 심각하게 약화했다.
하나는 자본가들의 전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생활수준을 즉각 향상시킨다는 전망을 포기하고 생활수준을 악화시킬 정책들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 행보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자본가 계급이 내놓은 것과 근본에서 같다. 즉, 그래야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고 수출을 늘려서 지속적 축적을 위한 조건을 재확립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래의 개혁을 위한 기반을 닦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들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편의상 우파 개혁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개혁 없는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는 1974년 중반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영국] 노동당 정부가 실시한 정책이 잘 보여 준다. 사회서비스 지출을 냉혹하게 삭감하고,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소득 정책을 수립했다. 그 기간 내내 노동당 정부는 곧 “수출 주도 호황”이 찾아올 것이라며 그 정책들을 정당화했다.
16 2년 동안 임금이 이렇게나 삭감된 적은 20세기 들어 처음이다. 이로써 크로스랜드가 말한 “대중적 풍요의 문턱”은 한 발짝 더 멀어졌다.
그 정책들 탓에 20만 명이 실직했고 지난 2년간 평균적인 육체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16퍼센트 또는 주당 10파운드 삭감됐다.그런 정책을 채택한 정당의 지도부가 노동계급의 지지를 잃게 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 증거는 노동당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노동당 의원들이 노동당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기권하고 지역구에서는 우파 개혁주의 의원들이 밀려났다. 노동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 감소는 보궐 선거 결과나 정부의 소득 정책에 대한 노동조합원들의 반감이 증대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개혁주의 정당에 열려 있는 다른 선택지는 노동자들의 즉각적 이익을 방어할 수 있는 정책을 계속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서비스 지출 삭감을 반대하고, 실업 감소 계획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그런 정책들을 실시하면 자본주의가 다시 안정화되거나 점진적으로 사회주의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편의상 좌파 개혁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
좌파 개혁주의의 관점은 노동당의 1973년 강령과 1974년의 두 차례 선거 공약에 담겨 있다. 노동당 정부가 우경화하자 토니 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트리뷴〉 신문을 중심으로 모인 그룹이 이런 입장을 견지했다.
경제 상태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생활수준이 계속 떨어지면서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있다.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우파 개혁주의자들보다 더 급진적인 강령을 내놓기 때문에 특히 정치적으로 선진적인 노동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다. 따라서 좌파 개혁주의가 노동운동에 제시하는 전망을 검토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제부터 설명할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 비판의 정신이 우파 개혁주의를 대할 때의 정신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의 동기를 무시하고 보면, 우파 개혁주의는 직접적으로 반反노동계급적인 정책을 체현하는 반면 좌파 개혁주의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방어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결국에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만). 무릇 사회주의자라면 우파 개혁주의에 철저하게 반대해야겠지만 좌파 개혁주의는 가감 없이 비판할 때도 동지라는 생각으로 대해야 한다. 그런 비판을 삼가면 마르크스주의자와 많은 좌파 개혁주의자들이 공유하는 사활적으로 중요한 목표, 즉 노동운동의 정치적 발전의 중요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어떤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케인스주의의 언어로 주장한다. 그들은 정부 지출과 실질임금을 삭감하면 전체 지출이 감소해서 시장의 문제가 더 악화되고 따라서 회복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분석은 우파 개혁주의자나 자본가들의 주장과는 동전의 앞뒷면 관계다.
양측 모두 자본주의가 직면한 어려움의 한쪽 면을 강조한다. 우파 개혁주의자들은 잉여가치의 창출 문제에 주목하는 반면 케인스주의에 기대는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잉여가치의 실현 문제만 본다. 그래도 우파 개혁주의는 적어도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다(대체로는 수출 확대를 말한다). 케인스주의는 이윤율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좌파 개혁주의자들이 모두 케인스주의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수준 높은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더 급진적인 분석과 강령을 내놓는다. 노동운동에서 널리 지지받는 “대안경제전략”은 스튜어트 홀랜드가 《사회주의를 위한 전략》과 《사회주의적 도전》에서 가장 솜씨 좋게 주장했다.
홀랜드의 사고방식은 앞 세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상당히 다르다. 홀랜드가 적대 계급 간 이해관계의 적대성을 더 철저히 파악한 것이 한 이유다. 그러나 경제 환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른슈타인과 크로스랜드는 자본주의가 안정적인 시기에 글을 썼다. 그들에게 우선순위는 위기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비판하고 그들이 보기로는 위기 없는 새 시대에 적합한 정치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홀랜드는 경제 위기 와중에 글을 썼기 때문에 다른 과제에 직면했다. 따라서 홀랜드는 마르크스보다 크로스랜드를 더 비판했다.
홀랜드는 크로스랜드가 재분배를 강조한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다. 홀랜드는 분배의 불평등이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작동에 필수적인 권력 구조와 소득 불평등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케인스주의에 대해서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의 이런 비판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분석의 핵심으로 다가가게 된다.
베른슈타인과 크로스랜드는 둘 다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새로운 발전 덕분에 앞으로는 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홀랜드는 이런 사회민주주의적 분석의 표준적 패턴을 뒤엎는다. 그는 최근[1970년대]의 불안정성은 자본주의가 도달한 새로운 단계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견 베른슈타인이나 크로스랜드보다 레닌과 더 가까워 보인다.
공통점은 더 있다. 레닌이 그랬듯이 홀랜드도 불안정의 원인이 자본의 집적과 집중에 있다고 본다.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산업을 지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홀랜드는 주장한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들은 매우 강력해서 가치법칙이 가하는 압력도, 케인스주의에 따라 경제를 조절하려는 국가의 시도도 모두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이 수많은 소기업들에 의해 이뤄지는 곳에서는 각각의 기업이 전체 산출량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만하다. 예를 들어 1000개 기업이 각각 일주일에 신발 10 켤레씩 생산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기업이 산출량을 두 배로 늘리더라도 전체 공급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전반적 균형에 달려 있고, 기업들이 이 산업 저 산업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평균 이윤율을 확보하는 수준에 안착하는 경향이 있다(이 잡지 41호에 실린 본서의 3장을 보라).
반면 기업 5곳이 각각 신발 2000켤레씩 생산하는 상황에서는 한 기업이 전체 공급, 그에 따라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기업이 산출량을 두 배로 늘리기만 해도 전체 공급은 20퍼센트 증가해 가격이 떨어진다. 일부 자본이 그 산업을 포기할 때까지 가격은 떨어진다.
다국적 기업들은 과잉 생산과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 경쟁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홀랜드는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이를 피하려 한다. 그들은 생산을 빠르게 증가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산출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술 혁신의 도입을 주저한다. 한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다른 기업들도 가격을 올린다. 새로운 자본이 그 산업으로 들어오면 이 신규 시장 진출 기업을 몰아낼 때까지 가격은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카르텔을 맺는다는 명백한 공모가 없더라도, 가치법칙의 정상적인 작동이 방해받고 그에 따라 축적 압력도 덜해진다. 생산력이 정체한다.
홀랜드가 보기로, 국가가 케인스주의적 수단들을 통해 이런 기업들의 행위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기업들이 거대하고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내 시장이 커진다고 해서 그 나라 내에서 생산이 꼭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생산 비용이 가장 싼 곳에서 생산한다. 케인스주의를 따라 지출이 증대하더라도 그 나라의 상대적 생산 비용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다국적 기업은 그 나라 안에서 투자를 늘리기보다 그 나라로의 수출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석을 보면, 호황기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오늘날의 우파 개혁주의자들이 내놓는 것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강령이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제안은 대규모 국유화, 의무적인 계획 협약, 수입 통제 등이다.
국가는 각 산업에서 주도적인 기업을 적어도 한 곳씩을 인수할 것이다. 국유화된 기업들은 효과적인 경쟁을 재확립하기 위해 수립된 정책들을 실행할 것이다. 가격은 다른 기업들이 책정한 선을 그저 따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혁신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고, 경쟁자들도 따라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요컨대, 국유 기업들은 가치법칙을 다시 정상 작동시켜 축적을 자극하도록 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국유화가 더 진척될 수 있다는 위협을 받는 다른 대기업들은 계획 협약(생산, 투자, 가격 책정 등을 정부와 협상하는 계획)에 동참하도록 설득될 것이다. 계획 협약은 축적 압력을 다시 구축하고, 자본주의 생산의 난맥상이 야기하는 혼란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계획 협약은 중앙의 계획과 규제받지 않는 시장의 힘 사이에 있는 중간 지점을 나타낸다. 기업들은 대부분 민간 소유로 남아 있지만 정부의 정책을 따르도록 강요된다.
수입은 계획 협약을 둘러싼 협상 기간에 취득된, 기업들의 국내·해외 지사들 간 무역 정보에 따라 선별적으로 제한될 것이다. 이런 통제는 기업들이 해외 지사들을 이용해 정부 정책을 방해하거나 ‘진정한’ 국제 경쟁으로 인해 정부 정책이 필요 이상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국내에서는 경쟁이 증가해 가치법칙이 작동하게 되지만, 국가 경제는 가치법칙의 국제적 작동으로부터는 보호받게 된다.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이 강령을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의 해법으로 제안한다. 그래야 노동계급을 경제 위기에서 보호할 수 있고 동시에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틀렸다.
이런 정책들을 사회주의로 향하는 발걸음이라고 보는 견해는 의회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혁명에 한몫할 수 있다고 보는 잘못된 평가를 내포한다. 홀랜드는 이런 평가를 핵심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는 국유화를 확대하고 계획 협약을 엄수하면 자본가 계급에게서 권력을 점진적으로 빼앗아 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본가들이 완만한 안락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생산을 중단하고 자산을 해외로 유출하고 모든 힘을 동원해 정부 정책에 훼방을 놓을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혼돈이 벌어지면서 정치적 반동과 노동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1973년 칠레 쿠데타, 즉 홀랜드가 내놓은 것과 비슷한 강령을 실시하려던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린 쿠데타는 피비린내 나는 실제 사례다.
좌파 개혁주의의 이런 점은 노동운동에 커다란 위험을 안겨 준다. 사회주의를 이런 식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좌파 개혁주의는 산업 투쟁을 의회 내 투쟁에 종속시키도록 노동자들을 부추긴다.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조합(가장 강력한 노동계급 조직)이 약화되면 전체주의로 향하는 움직임을 자초하게 된다.
좌파 개혁주의의 또 다른 근본적 오류는 경제 위기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점을 정확히 알면 좌파 개혁주의의 강령이 왜 일자리와 생활수준을 지킬 수 없는지 알 수 있다.
위기에 대한 홀랜드의 분석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영국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다른 곳보다 비용(무엇보다 임금과 세율)이 더 높아서라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영국의 임금 수준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축이고 자본에 대한 세금보다 자본에 주는 보조금이 더 많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기업이 어디에 투자하는지를 알아 낸다고 해서 전 세계적인 경기 폭락을 설명할 수는 없다.
홀랜드의 분석에서 빠진 중요한 요소는 이윤율이다. 홀랜드는 자신의 책에서 이윤 감소를 인정하지만 그 규모와 중요성은 축소한다. 축약판에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 주장의 전체 취지는 다국적기업들이 이윤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그는 가치법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을 강조하면서 가치법칙의 작동이 야기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 즉 과잉 축적의 문제는 이불 밑으로 치워 버린다.
이처럼 홀랜드의 분석은 케인스주의의 근본 특징을 공유한다. 둘 모두 불황의 원인은 자본가들이 투자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둘 다 그 이면에 이윤율 저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홀랜드는 이윤율 문제를 등한시함으로써 케인스주의자들과 함께 일자리, 생활수준, 노동 조건을 공격하지 않고도 자본주의의 안정이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근본 문제는 가치법칙과 축적 압력의 정상 작동을 방해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부상이다. 그가 내놓은 정책들이 실시되면 그런 압력들이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결단력 있는 국가가 나서면 불황을 끝낼 수 있고 앞으로는 위기가 없는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행운의 요정이 되살아날 것이다. 마법의 지팡이만 공공사업에서 계획 협약으로 바꾼다면 말이다
이런 치명적인 약점들, 즉 의회 민주주의가 사회주의를 가져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본주의가 국가의 도움을 약간 받거나 또는 받지 않아도 생산력을 무한히 발전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좌파 개혁주의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약점들은 베른슈타인, 크로스랜드, 홀랜드의 사상을 연결시키는 한편 이 셋과 마르크스주의를 구분시키는 핵심 줄기이다. 좌파 개혁주의는 아무리 급진적으로 말하고 자기 이론의 선구자들을 적대하더라도 사회민주주의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 때문에 좌파 개혁주의는 노동계급이 실행할 만한 전략을 제공할 수 없다.
경제 위기는 개혁주의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위기는 크로스랜드와 그 지지자들의 이론적 파산을 드러냈고 그 계승자들에게는 풀 수 없는 난제를 제기했다. 개혁주의 운동은 분석과 정책을 놓고 견해가 나뉘게 됐고 조직적 분열이 뒤따를지도 모른다. 어느 측도 노동계급의 필요를 충족할 강령을 제시할 수 없다.
이것은 거대한 가능성을 연다. 지금의 불황은 경제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예측력을 확인시켜 줬다.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개혁주의의 무능은 노동계급에 대한 개혁주의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왔다. 어쩌면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망이 노동운동 내 다수의 지지를 얻을 기회가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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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arrison, John 1978, Marxist Economics for Socialists: A Critique of Reformism, Pluto Press 중 7장 ‘Capitalism Since the War’.
↩
- 자본주의 세계의 수치들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것이다. OECD는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을 모두 포함한 24개국[2021년 5월 기준으로는 38개국]으로 이뤄져 있다. ↩
- 케인스주의라는 용어는 케인스를 지나치게 추어올리는 말이다. 케인스 사상의 많은 것들은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녹아 있으며, 케인스 사상과 유사한 사상을 케인스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더 우월한 형태로 발전시킨 인물은 미하우 칼레츠키다. ↩
- 크로스랜드는 이 새로운 가공의 비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만족할 만한 명칭을 고안하지 못했다. 그는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었는데, 왜냐하면 베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사회 유형이 아니라 단지 운동의 정책이나 이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 크로스랜드의 책은 1929년 이후 성인에게 보통 선거권이 보장된 영국만을 다룬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전체로 보아 보통 선거권 보장은 더 나중에야 불완전하게 성취된 승리였는데, 프랑스·이탈리아·일본에서는 보통 선거권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처음 도입됐다. ↩
- OECD Labour Force Statistics의 관련 통계에서 입수했다. ↩
- 민간부문 고용에서 자영업의 비율. 출처는 각주 5. ↩
- Towards full employment and price stability, OECD 1977. ↩
- Bohning, 표 3.2, 3.3, 3.4, 3.8. ↩
- 같은 책. ↩
- 제조업에서 산출량 대비 이윤. 각 나라의 국민계정에서 가져왔다. 나라별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수치들을 서로 비교할 수는 없다. ↩
- 산업·상업 기업들의 투입된 자본 대비 세후 이윤 비율. 수치는 Brookings Papers 1974 No.1(미국), I.N.S.E.E.(프랑스), Bank of England Quarterly Bulletin, 1976년 3월(영국)에서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나라 간 수치들을 서로 비교할 수는 없다. ↩
- 주택을 제외한 민간 투자. OECD의 ‘국민계정과 경제 전망’에서 가져왔다. ↩
- [역주] 존 해리슨은 임금 상승으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윤율 하락의 원인을 임금 몫의 증가에서 찾는 것은 잘못됐다. 많은 나라들에서 지난 수십 년간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었지만 이윤율도 떨어져 왔다. 장기적인 이윤율 저하의 원인은 실제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기계 등 불변자본에 투자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 것(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에 있는데, 이와 관련한 자세한 설명은 《왜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에 빠지는가?》(크리스 하먼, 책갈피)를 참고하라. ↩
- 산출량 중 노동계급이 소비한 몫은 세후 임금 더하기 정부 지출 중 노동자들이 소비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 수치들은 Glyn(1975)에서 가져왔다. 이 책은 이런 계산을 위한 가정들과 계산 방법을 충분히 설명한다. 산출량의 증가 수치는 영국의 국민계정에서 가져왔다. ↩
- 이 계산은 Glyn(1977)에서 가져 왔다. 이 책에 계산을 위한 가정들과 계산 방식에 대한 설명이 있다. ↩
- 출처: Incomes Data Services. 10파운드라는 수치는 경상가격이다. ↩
참고 문헌
Bohning, W. The Migration of Workers in the UK and the European Community, Oxford: 1972년 10월.
Glyn, A.(1975) ‘Notes on the profits squeeze’, Bulletin of the Conference of Socialist Economists, 1975년 2월.
Glyn, A.(1977) Capitalist Crisis; ‘Alternative Strategy’: Socialist Plan, (가제), London: Militant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