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51호를 내며
제인 하디와 케이티 콜스의 ‘팔레스타인 여성의 저항: 대봉기부터 1차 인티파다까지(1936~1993년)’는 2부작 중 첫째다. 1930년대 영국 신탁통치 시절 팔레스타인인들이 일으킨 대봉기 때부터 1993년 오슬로 협정 때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주체로 활약해 왔음을 보인다. 아래로부터 저항이 활발할 때 저항 운동 내 여성의 지위가 고양된 반면, 아래로부터 활력이 통제될 때는 여성에 대한 보수적 압력이 커져왔음을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상층 중간계급 여성들보다 조명을 적게 받은 평범한 농민과 노동자 여성들의 구실을 발굴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나디아 사예드의 ‘예언자와 프롤레타리아: 이슬람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은 좌파가 이슬람주의 운동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를 다루며 오늘날 팔레스타인 운동에서 제기되는 쟁점을 소개한다. 이슬람주의의 계급적 기반과 그로 인해 생기는 모순은 마르크스주의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에 《이슬람주의, 계급, 혁명》(책갈피)으로 소개된 크리스 하먼의 분석을 최근 사례와 함께 요약적으로 제시하는 글이다.
제인 바셋의 ‘진보적 교육학을 위하여: 우리에게 비고츠키가 필요한 이유’는 러시아 혁명 직후 활동한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사상을 살펴보는 글이다. 비고츠키와 러시아 혁명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개념 형성과 학습 방법, 상상과 놀이의 본질에 대한 비고츠키의 핵심 사상을 소개한다. 바셋은 비고츠키의 연구를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깊이 자리 잡은 권위적인 교수법·교육과정과 대조하며 비고츠키의 연구가 대안적인 사회주의 교육 시스템의 상을 명료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다.
정진희의 ‘저출생과 자본주의’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저출생 현상을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여성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와 관련지어 고찰하는 글이다. 필자는 저출생을 사회악으로 취급하는 주류 담론을 비판하며 지배계급의 저출생 대응에 담긴 모순을 여성 고용과 출산, 이민 문제를 통해 살펴본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함께 육아의 사회화가 필요하고, 좌파가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이주민을 환영하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정구의 ‘시진핑 체제의 불안한 미래’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다루는 글이다. 필자는 중국 경제가 부동산 시장의 불안, 지방 정부 부채 위험, 지정학적 긴장 격화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시진핑 정부는 미국과의 경쟁 격화 등에 대응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했는데, 이는 대중의 저항을 불러 시진핑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찰리 포스트의 ‘패배를 부른 미국 공산당의 민중전선 전략’은 2017년에 미국 민주사회당(DSA) 전국정치위원 조셉 슈워츠와 미국의 좌파 개혁주의 언론 《자코뱅》 편집자 바스카 순카라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쓴 글이다. 슈워츠와 순카라는 공산당의 민중전선 전략이 미국 좌파가 받아들여야 할 모델이라고 주장했는데, 포스트는 1930년대 말 미국 공산당의 민중전선 전략이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고 좌파에게도 재앙적 타격을 줬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다만, 포스트도 슈워츠·순카라와 같이 혁명적 정당보다 범좌파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보는 약점이 있다. 범좌파정당도 계급투쟁이 첨예해지고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쟁점이 핵심 문제로 떠오를 때 노동운동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약점이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조를 추구하는 흐름이 강화된 상황에서 이 글은 한국 좌파에게도 많은 교훈을 줄 것이다.
정기 발행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제서야 발행하게 된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 호부터는 정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르크스21》 편집팀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