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41호를 내며
이번 호에 모두 아홉 편의 글을 실었다.
‘성 차별, 사회주의, 국가: 동구권의 여성들’은 붕괴 전 동구권 여성들의 삶에 대한 중요한 물음에 답한다. 동구권 여성들의 삶이 서구 여성들보다 더 나았는가? 전반적으로는 아니어도 부분적으로 더 나은 점이 있었는가? 그랬다면 무엇인가? 그런데 왜 동구권에서의 여성 차별이 서구와 비슷했는가? 맥그리거는 토니 클리프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과 스탈린주의 러시아에서의 여성과 가정에 대한 레온 트로츠키의 고찰을 검토하면서 동유럽 여성들의 지위를 설명한다 — 노동계급 재생산 과정, 가족 내 여성의 구실, 가정·직장에서 여성의 종속적 구실, 낙태·피임·섹슈얼리티 등. 또, 유고슬라비아와 불가리아 등 남유럽 국가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슬림 여성이 겪었던 차별과 종교·이슬람에 대한 볼셰비키 고유의 접근법을 대비한다.
실라 맥그리거의‘라틴아메리카에서 ‘핑크 물결’이 다시 일고 있나?’는 장기적 위기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최근 정세를 분석한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우파 세력이 진을 치고(브라질·콜롬비아 등), 왼편에는 대중 저항이 존재한다(칠레·에콰도르·볼리비아·콜롬비아·페루·쿠바 등). 이런 상황 때문에 일각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의 ‘핑크 물결’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재현될지 주목한다. 김준효는 ‘핑크 물결’에서 제기됐던 좌파 개혁주의/민족주의 정부의 성격, 국가와 사회운동의 관계, 전략 등을 살펴보면서 현재 상황에 필요한 교훈을 끌어낸다.
김준효의‘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범죄에 대해 뭐라고 말했나?’는 범죄, 법, 경찰 등에 대한 마르크스·엥겔스의 접근법을 소개한다. 이런 문제들에서 마르크스·엥겔스 당대와 현재 상황이 똑같지 않고 더 복잡해진 측면도 있지만, 두 사람의 접근법을 분석의 출발점으로 참고할 수 있다고 양효영은 지적한다. 마르크스·엥겔스가 범죄에 대해 체계적인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여러 저작들에서 범죄를 언급하며 관심을 보였는데, 두 사람은 사회적 환경보다 범죄자 개인의 특성에 주목하는 당대의 실증주의 범죄학에 반대해 범죄의 사회적 근원에 주목했다. 즉,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착취로 인한 적대적 분배 관계가 그것이다.
양효영의‘탈북민의 삶과 현실을 알아보기’는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겪는 고단한 삶, 탈북민에 대한 편견, 탈북 여성들의 처지 등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들이 탈북 이후 겪는 삶의 현실을 들여다 본다. 또, 탈북민이 모두 우익(이거나 그 세력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님을 밝히고, 탈북민에 대한 역대 한국 정부들의 태도 변화, 탈북 사유의 변화, 탈북민 상당수의 ‘탈남’ 시도 등 지난 30년 동안 나타난 변화도 살펴본다.
임준형의‘사회주의자를 위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 개혁주의 비판’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존 해리슨(2007년 작고)이 1975년에 옥스퍼드대학교 근처의 한 퍼브(술집)에서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해리슨은 마르크스가 당시 노동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던 프루동주의와의 논쟁을 중시했고 이 점이 마르크스의 경제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이번 호에는 이 책의 3장 착취와 잉여가치를 번역해 싣는다. 저자는 프루동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해, 불평등과 경제적 강제에 의해 작동되는 체제를 놔둔 채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명쾌하게 정의하다’는 레닌이 쓴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을 서평한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의 주요 사상가들이 쓴 가장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의 일곱 번째 편이다. 김지윤은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독일 철학, 영국 정치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의 변증법적 종합이라고 일컬었다며,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타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헌신과 전망을 분리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김지윤의‘중국에 대한 환상과 진실’은 훙호펑이 쓴 《차이나 붐 -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글항아리)를 서평한 것이다. 훙호펑은 홍콩 태생으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학자며, 그의 저작이 한국어로도 여러 편 번역된 세계체계론 지지자다. 이정구는 훙호펑이 1978년 개혁·개방 이전과 이후의 중국 경제가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있고, 1990년대 이래 중국이 지구적 신자유주의 질서에 깊숙이 편입됐다는 점을 주장한 것은 장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중국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혼란, 중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지 않는 점, 중국 정부의 신뉴딜 정책(경기부양책)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이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이정구의‘시진핑 시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실상 들여다보기’는 박민희 〈한겨레〉 기자가 쓴 《중국 딜레마 -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한겨레출판)을 서평한 것이다. 박민희는 시진핑의 권력 집중을 중국공산당의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로 본다. 즉, 경제 성장이 오히려 불공정과 불평등을 심화시켜 대중의 분노가 커지자, 중국공산당이 개혁보다는 대중의 불만을 통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박민희는 시진핑이 구축한 ‘만리장성’에 도전해 균열을 내려는 사람들(신장위구르 소수민족, 중국의 전태일들, 성차별에 맞선 중국 여성들)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김영익의‘반독점 동맹이 민주적 계획 경제를 이룰 수 있을까?’는 그레이스 블레이클리가 쓴 《코로나 크래시 - 팬데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웠는가》(책세상)를 서평한 것이다. 블레이클리는 영국의 좌파 경제학자이자 코빈 지지자다. 블레이클리는 펜데믹의 영향으로 신자유주의가 끝나고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는데, 최영준은 그런 주장의 일면성을 비판한다. 또, 블레이클리가 민주적 계획경제를 말하지만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반독점 계급 동맹의 필요성을 시사한다며, 그런 주장의 맹점을 찌른다.
최영준의
김인식(편집팀을 대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