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43호를 내며
이번 호에 모두 아홉 편의 글을 실었다.
스탈린주의의 기다란 그림자’는 근래에 영국에서 스탈린주의가 부활한 배경을 분석한다. 에번스는 영국의 특수한 상황 — 제러미 코빈으로 대표된 좌파 개혁주의 프로젝트의 실패 — 과 더 일반적인 배경 — 소련이 붕괴한 지 시간이 많이 흘러 스탈린 체제의 참상이 더 역사적인 사건이 됐고, 그 사이에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 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인 것에 대한 반감이 광범하다는 점 — 이 함께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스탈린주의 문제는 결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즉 사회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쟁취할 것이냐는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에번스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냉전 이래 스탈린주의를 둘러싸고 좌파들이 벌인 논쟁을 짚어 본다 —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28년 스탈린 반혁명의 관계, 레닌이 스탈린을 낳았다는 신화, 스탈린 체제의 성격, 국제 혁명들에 대한 스탈린의 반혁명적 노선, 소련이 반제국주의 세력이었다는 환상, 중국 사회의 성격 등.
토마시-텡글리 에번스의 ‘카우츠키의 민주사회주의, 재생할 만한가?’는 한국에서 카우츠키의 저작을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긴 하지만 카우츠키의 사상을 들여다보면 일부 급진좌파의 입장을 분석하는 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결코 카우츠키의 말을 인용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 선거 정치의 구실, 소비에트형 권력에 대한 태도,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 건설하고자 하는 정당의 성격 등 핵심 전략 문제에서 카우츠키의 민주사회주의와 닮은 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카우츠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김인식의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본 한국의 인종차별’은 이주 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한국 경제의 필요에 맞게 이주민을 관리할 필요를 느낀 한국 정부가 관리 수단의 하나로 인종차별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용허가제, 결혼 이주 여성, 난민, 이슬람 혐오 등에서 인종차별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 중국 동포의 제도적 처지가 2010년대를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설명한다. 끝으로, 인종차별에 맞서는 해법으로 제시되는 정체성 정치, 거버넌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평가한다.
임준형의 ‘헨릭 그로스만과 자본주의 붕괴 논쟁’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자본주의 붕괴 경향을 설명한 그로스만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에 기여한 공헌을 살펴본다. 그로스만이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을 제2인터내셔널의 개혁주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했을 뿐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왜곡에서도 지켜 줬으며, 데이비드 하비 같은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조차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경제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그로스만의 이론은 새겨볼 만하다고 이정구는 평가한다.
이정구의 ‘국가: 스베르들로프대학교에서 한 강연’은 국가에 관한 레닌의 주장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 글은 레닌이 1919년 7월 11일 모스크바에 있는 스베르들로프대학교에서 한 강연을 기록한 것이다. 스베르들로프대학교는 1919년 6월 1일 개교한 최초의 당 학교였다. 레닌은 이 대학을 조직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며 첫 교안 작성에 참여했다. 한국어로 처음 번역 출판되는 글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이론 비평: 젠더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지난해 말 EBS의 주디스 버틀러 강연 방영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화두 삼아 버틀러의 젠더 이론을 소개하고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논평한다. 버틀러는 젠더가 생물학적 특성과 상관없이 사회적·문화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는데(사회구성주의), ‘섹스는 이미 젠더’라는 버틀러의 견해는 섹스와 젠더의 상호작용을 역사유물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담론에 절대적 우위를 부여하는 관념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성지현은 주장한다.
성지현의 ‘사회주의자를 위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 개혁주의 비판’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존 해리슨(2007년 작고)이 1975년에 옥스퍼드대학교 근처의 한 퍼브(술집)에서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해리슨은 마르크스가 당시 노동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던 프루동주의와의 논쟁을 중시했고 이 점이 마르크스의 경제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이번 호에는 이 책의 5장 초기 자본주의를 번역해 싣는다. 이 장에서는 자본주의의 등장이 어떤 점에서 역사적으로 진보적이었는지를 살펴보고, 이런 분석의 정치적 함의를 이끌어 낸다.
‘제국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예리하게 관찰하다’는 레닌이 쓴 《제국주의론》을 서평한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의 주요 사상가들이 쓴 가장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의 아홉 번째 편이다. 박혜신은 레닌의 경제적 분석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 점들도 꽤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오늘날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통찰을 주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박혜신의 ‘반자본주의적이지만 이론적 결함도 많다’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쓴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를 비평한 것이다. 이 책에는 자본주의가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게 할 유용한 사례들이 많지만, 자본주의적 축적에서 생산이 아닌 유통을 강조하고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기각하며 혁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등 하비의 원인 진단과 대안이 모호하고 빗나가 있다고 김어진은 지적한다.
김어진의 ‘[독자에게 알림]
이번 호부터 《마르크스21》은 격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뀝니다. 심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 글들을 더 많이 싣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