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46호를 내며
이번 호에는 스탈린주의 역사와 관련 논쟁을 돌아보며 혁명가들이 이끌어내야 하는 교훈을 다룬 글들을 실었다.
인민전선에서 민주대연합으로’는 1985년 마거릿 대처의 강경 우익 정부에 맞서는 문제를 두고 영국 공산당 안에서 벌어진 논쟁에 비판적으로 개입한 글이다. 당시 영국에서 부상하던 유러코뮤니스트들은 《마르크시즘 투데이》를 중심으로 결집해, ‘광범한 연합’이 필요하며 노동계급이 전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산당 안팎에서 이런 흐름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그런 비판자들에게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고 캘리니코스는 지적한다. 바로 스탈린주의의 인민전선 전통을 긍정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어째서 오늘날 노동계급의 구실을 제대로 옹호하지 못하는 문제로 나타나는지를 논증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유러코뮤니즘의 죽음’은 1970년대에 서유럽 공산당들에서 유러코뮤니즘 경향이 등장하고 전성기를 누리다가 오래지 않아 위기에 빠지면서 실패한 과정을 다룬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전반에 서구에서 계급투쟁이 고양되자 서유럽 공산당들은 급진화에서 득을 보고자 소련과 거리를 두는 한편, 의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며 자국 지배계급과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70년대 중반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의 공산당은 당원 수와 득표가 빠르게 늘어 유러코뮤니즘은 전성기를 맞는 듯했지만, 몇 년 만에 전략과 정체성의 위기에 빠지며 실패하고 만다. 유러코뮤니즘은 사회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자신의 세력을 침체 또는 약화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팀 포터의 ‘스탈린주의 정당들’은 1951년에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을 다룬 것이다. 당시 소련은 제2차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이런 소련의 위상에 기대어 당시 서방의 공산당들은 노동운동 내 다른 정치 세력을 상대로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패권적이고 종파적으로 굴었고, 트로츠키주의 운동을 향해서는 (트로츠키 암살에서 보듯) 특히 그랬다. 이에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서방의 스탈린주의 운동도 노동운동의 일부라고 봐야 하는지가 논쟁이 됐다. 던컨 핼러스는 스탈린주의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스탈린주의 영향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과제이고 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던컨 핼러스의 ‘국제주의 관점에서 본 대만 문제’는 대만과 중국 사이의 양안 관계가 대만 정치에 끼치는 영향을 역사적으로 살피는 글이다. 전반부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만의 현대사와 민주화를 위한 대만인들의 운동을 소개하고,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대만 정치와 양안 관계를 다룬다. 과거 마오와 내전을 벌였던 장제스의 국민당이 오늘날 대만 정치에서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유화적이라는 아이러니를 보면 만만찮게 복잡한 역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한 편의 글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유익할 것이다. 이번 글은 대만의 구체적 역사에 집중한 만큼, 미·중 관계에 대한 설명은 많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 양안 관계의 큰 틀은 미·중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그 변천사가 익숙지 않은 독자들은 같은 필자가 본지 39호에 기고한 ‘중국과 제국주의’를 함께 읽으면 유익할 것이다.
이정구의 ‘세상 밖으로, 여성 레닌주의자들과 러시아 사회주의’는 여성 볼셰비키가 사회주의 운동과 볼셰비키당에 기여한 바를 안나 울리야노바, 마리아 울리야노바, 이네사 아르망,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글이다. 역사학계는 레닌과 가까웠던 이들 여성 사회주의자의 활동을 레닌의 조종을 받은 것으로 그리며 폄하했는데, 콕스는 이런 서술에 담긴 성차별주의를 꼬집으며 여성 볼셰비키가 사회주의 조직과 혁명적 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했음을 보여 준다.
주디 콕스의 ‘올해 상반기 프랑스에서는 대단한 투쟁이 잇따라 벌어져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상반기에 반복적으로 벌어졌고, 6월 말에는 경찰의 인종차별적 살해에 분노하는 청년들이 전투적으로 항의에 나섰다.
노동자들이 마크롱을 뒤흔들다’는 연금 개악 반대 투쟁이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둬 마크롱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과, 중요한 성과를 거두려면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뛰어넘을 아래로부터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그 글은 “연금 운동의 교착 상태로 … 당분간 사회적·정치적으로 게릴라 전술이 전개되는 것”을 전망했는데, 이후 벌어진 청년들의 소요가 정확히 그랬다.
드니 고다르의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의 급진좌파 상당수는 청년 반란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일부는 소요의 폭력성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급진 좌파들의 이런 오류가 어디서 생겨났는지 설명하고 제대로 된 개입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글들을 준비했다.
프랑스 소요 가담자 인터뷰 ― “인종차별적 경찰 놈들에게 되갚아 줬다”’는 이번에 경찰서 방화에 가담한 청년과 그 지지자를 인터뷰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아랍계 청년들이 겪는 인종차별의 심각성과 그 분노가 경찰을 향하는 이유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찰리 킴버의 ‘프랑스 소요의 뿌리’는 프랑스에서 인종차별이 뿌리내린 과정을 보이고, 그간 반복돼 온 급진좌파의 무능을 들춰낸다. 이 글은 2005년 청년 소요 때 쓰인 것이지만, 2023년에 벌어진 청년들의 정당한 항거와 급진좌파들의 문제적 태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피터 피쉬의 ‘
《마르크스21》 편집팀